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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티베트 창극 아체라모

설화에 춤·노래·재담 더해진 ‘아체라모’, 탕돈게보의 문화포교 아이디어

안거해제 맞아 봉행되는 탕가의식 뒤 이어지는 여덟 마당 창극축제
홍법감화에 따른 수익은 취약지역 다리 건설 등 지역발전으로 회향
근래 중국 영향으로 매스게임 하듯 공연…문화는 왜곡없이 전승돼야

라싸의 냥러(娘热)에 있는 줴무룽(중국식으로는 藍面)극단의 시연 모습.

지구상 어느 곳, 어느 나라든 그들의 민간 설화가 있다. 서양에 신데렐라가 있다면 한국에는 콩쥐팥쥐가 있고, 인도에 라마와 시타가 있다면 한국에는 이도령과 성춘향이 있다. 이런 현상을 보면 인간이 느끼는 삶의 애환과 추구하는 이상향이 서로 비슷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이들의 공연 양상은 발레와 한국 춤과 같이 확연히 다른 모습으로 드러난다. 이는 기후와 생활환경에 기인한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유목이 주된 생활수단인 티베트와 정착 농경사회인 한국의 춤, 노래, 말씨의 친연성이 높은 점이 참 이상하지만, 거기에 불교가 있다면 “아하 맞네” 하게 된다.

우리나라 판소리가 현재는 춘향가, 적벽가, 심청가, 흥보가, 별주부전 다섯 마당이지만, 예전에는 장화홍련전, 배비장전, 장끼전, 변강쇠가, 무숙이타령, 옹고집전, 강릉매화타령을 포함하여 12마당이었다. 이외에도 숙영낭자전, 이춘풍전과 같은 여러 이야기가 있었다. 창(唱)이 전승되지 않는 이들을 보면 귀신, 증오, 성적 노골성, 해학 등 조선시대 사회적 덕목과 부합되지 못했던 데 비해 앞서 언급한 다섯 마당은 충·효·의 정신 및 사회적 이상향과 맞물려 인기를 누렸다.

한국에 판소리가 있듯이 티베트에는 아체라모가 있다. 선녀와 나무꾼과 같은 ‘선녀와 롭쌍 왕자의 사랑’, 보시 공덕을 주제로 하는 ‘치미갱등 태자의 보시행’, 모진 고생 끝에 어머니를 만나게 되는 ‘빼마원빠 소년의 모험’, 별주부전과 유사한 ‘돈둡과 돈위 형제의 우애’, 장화홍련을 연상시키는 ‘쯔와쌍모 선녀와 남매’, 농노를 주인공으로 하는 ‘찬란한 빛 속의 남싸 처녀’, 수지니마의 출가 수행기 ‘여승 수지니마의 일생’과 같은 설화적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하는 ‘문선공주의 출가’까지 여덟 마당이 있다.
 

2007년 쇼툰축제 때 라싸의 노블링카에서 공연하고 있는 아체라모. 가운데 탕돈게보의 탕카와 공양단이 차려져있다.

네팔과 서부 티베트의 갈림길인 라쩨 인근의 ‘충 리오치’에서 태어난 탕돈게보(1385~1464)  스님은 창딩사원의 니마쌍게 스승에게서 불학, 의술, 공예 등을 연마하였지만 훗날 불교창극 ‘아체라모’로 티베트 사람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대승보살이 되었다. 그는 민간 설화에 춤, 노래, 재담을 더한 아체라모를 각색하여 홍법감화의 흥행 대박에 막대한 수익을 올려 취약 지역 곳곳에 다리를 놓아 일거삼득의 쾌거를 이루었다. 요즈음도 티베트 사원에 가면 흰머리에 흰 수염을 한 탕돈게보가 없는 곳이 없고, 흰 가탁이 잔뜩 걸려있어 티베트 사람들에게서 탕돈게보의 위상을 실감하게 된다.

안거에 들었던 스님들이 해제를 맞아 공부의 증거로 탕카를 내어 거는 데뿡사원의 탕카의식이 본 순례기 제9회에서 소개된 바 있으나 탕카의식 후에 펼쳐지는 아체라모 창극축제에 대해서는 소개하지 못했다. 달라이라마가 티베트에 있던 당시에는 탕카의식 다음날 달라이라마의 여름궁전 노블링카 앞마당에서 달라이라마와 국가의 주요 인사들이 배석한 가운데 아체라모의 막이 열렸다. 첫날 첫 순서는 탕돈게보가 직접 창단한 총게마을의 극단이 공연하는데, 이 마을은 역대 달라이라마 중 가장 추앙받는 제5대 달라이라마의 고향인 데다 아체라모 명인을 가장 많이 배출해온 예향으로 유명하다. 이어 전국에서 온 각 마을의 극단이 한 달 내도록 공연을 펼쳤으나 요즘은 주인 없는 궁전 앞에서 하루 내지 며칠 소략하게 행해지고, 연극이 진행되는 내내 총을 울러 멘 공안이 무대 주변을 감시한다.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고수들.
남성이 추는 백면극단의 라모뒤까.

2007년 7월 초하루 이른 아침, 아체라모가 공연되는 노블링카 광장에 가보니 사방에 먹거리와 기념품을 파는 포장마차들이 즐비하였다. 가족 단위로 모여든 사람들은 대바구니에 먹을 것을 담아 와서 피크닉을 즐겼다. 아체라모는 마당 한가운데 천막을 치고 가운데에 탕돈게보 탕카를 걸고 그 주변에 배우들이 둘러서서 공연하고, 관중들은 무대를 둥그렇게 둘러앉아 구경을 한다. 라브랑시의 ‘참’ 의식에서 무승(舞僧)들의 동선과 같이 아체라모도 탕카, 배우, 관객이 삼원인 데다 공연의 전개도 ‘시작 판’ ‘이야기 판’ ‘끝판’의 3장 구성이라 티베트의 삼원(三圓) 꼬라를 연상시켰다. 여인을 뜻하는 ‘아체’와 선녀를 뜻하는 ‘라모’가 합쳐진 아체라모는 선녀의 역할이 중요하다. 예전에는 아체라모 극단이 모두 남성으로 구성되었으므로 선녀춤도 남성이 추었으나 요즈음은 전통을 고수하는 백면극단 외에서는 여성들이 맡고 있다. 

아체라모는 먼저 북과 롤모(바라)를 든 두 사람이 마당으로 나와 공연이 시작됨을 알린다. 이들은 배우의 등퇴장을 비롯해 창극 전반을 지휘하며 이끌어 간다. 서막에 해당하는 ‘자루와 온빠의 장’은 온빠뙨이 땅을 정화하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이는 ‘참’의식을 시작할 때 샤낙승들이 마당을 돌며 정화와 결계의 춤을 추는 것과 같다. 온빠뙨은 티베트에서 하층민에 속하는 신분이지만 아체라모에서는 선녀와 쌍벽을 이루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어 만민을 평등하게 여긴 탕돈게보의 정신이 느껴지기도 한다. 

아체라모의 시작과 종료까지 모든 부분이 불교의례로부터 아이디어를 차용하고 있다. 온빠뙨이 오색 천으로 엮은 자루로 마당을 쓸 듯이 빙빙 돌며 춤추고 나면 ‘자루첸비’가 등장하는데, 이 또한 참 의식과 연관이 있다. 중국령에 있던 라브랑시의 참에서는 이 부분이 생략되었지만 인도령에 있는 헤미스곰파와 캄파카곰파는 샤낙춤으로 도량을 정화한 뒤에 놋쇠 가면을 쓴 다키니가 축복의 춤을 추었다. 아체라모의 축복 순서인 자루첸비는 왕자 혹은 장로가 맡고 있어 민간 창극의 성격이 느껴진다. 자루첸비의 축사가 끝나면 오색 모자와 긴 드레스를 입은 선녀가 노래하며 춤추는데 이것을 ‘라모 뒤까’라고 한다.
 

2007년 공연에서 남면극단의 복색. 온빠뙨의 색동 문양이 우리네 전통 복색과 같다.

이어서 본 마당인 ‘슝’은 줄거리가 워낙 길어서 종일 이야기가 전개된다. 출연진을 보면 이야기 속 인물들과 더불어 야크를 비롯한 민속적 캐릭터들이 다양하다. 슝이 진행될 때 장면 전환이나 시공간을 건너뛸 때는 선녀와 온빠뙨이 백댄서처럼 둘러서서 내레이터 역할을 하기도 하고 춤을 추며 분위기를 돋우기도 한다. 한국의 판소리에 아니리가 있듯이 아체라모에도 배우들이 관객들과 재담을 주고받는 장면이 종종 연출된다. 아체라모가 티베트 사람들의 혼을 쏙 빼도록 재미있는 요인은 바로 이런 유희성에 있다.

끝판인 ‘따시텐진’은 축복과 회향의 마당이다. 예전 같았으면 달라이라마와 정부 각료와 고승들이 배우들에게 가탁을 걸어주었지만, 요즘은 지역 유지들이 대신하고 있다. 권주가와 함께 술잔을 받은 사람은 시주금을 내놓음으로 배우들은 객석 사이를 돌며 모금을 하였다. 술잔과 함께 끊임없이 가탁을 걸어주므로 배우들은 목에 가득한 가탁을 탕돈게보 탕카가 걸려있는 장대 앞에 내려놓고 다시 가탁을 받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총게마을 극단이 전국을 순회한 후 아체라모 극단이 방방곡곡에 생긴 것을 보면 탕돈게보의 문화포교 아이디어에 탄복을 금할 수가 없다.  

창극은 휴식 시간 없이 종일 계속되었는데, 오른손으로는 마니차, 왼손에는 염주를 돌리며 중얼중얼 염불을 외며 감상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관객들은 바구니에 들고 온 도시락과 차를 마시는 등 느슨한 분위기였지만 쉬는 시간이 없을 줄 모르고 아무런 준비를 못 한 필자는 카메라에 매달려 물 한 모금 못 마시는 신세가 되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사방에서 사탕도 주고, 견과도 줘서 주머니가 불룩해지더니 마침내 보리떡과 차까지 수북히 모였다. 어떤 사람은 차를 따라 고개를 끄덕이며 권하는 데 그 모습이 마치 우리네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와 같았다. 

그해 겨울, 라싸 대학의 게치 교수와 총게현 벤뒈마을의 빠샹(巴桑) 선생과 함께 각 지역의 창극단을 방문하였다. 그 가운데 네동현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루캉(르와데링)사원 마당에서 둥글게 원을 그리며 춤을 추었는데, 그 모습이 한국의 강강술래와 닮았다. 차이점이라면 한국은 뛰면서 원을 그리는데 티베트 사람들은 발끝으로 바닥을 치며 마치 탭댄스를 추는 듯하였다.
 

총게 마을 백면극단의 온빠뙨(사진 왼쪽). 네동현 황면극단의 온빠뙨(사진 오른쪽).

오늘날 티베트의 아체라모는 유네스코 지정 중국문화재로 등재되어 있다. 예전에는 극단 이름에 마을 명을 붙였지만, 요즘은 온빠뙨 가면의 색깔에 따라 백면, 황면, 남면극단으로 불리고 있어 티베트 사람들은 영 어색해하였다. 근래에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아체라모를 보니 ‘라모 뒤까’ 춤을 마치 매스게임을 하듯이 공연하는 것도 있었다. 정치와 행정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문화만은 왜곡 없이 전해지기를 바라지만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티베트의 모습에 가슴이 아려온다.

아체라모의 온빠뙨이 마당을 빙글빙글 돌며 춤추는 모습은 한국의 상모춤, 선녀들이 쓴 모자와 복색, 그들의 몸짓과 집집마다 꽂혀있는 오색 깃대는 한국의 무녀(巫女)와 무속 깃대, 우리네 어르신들의 혼수품으로 쓰였던 색동문양을 비롯하여 티베트어의 어순도 한국말과 같아서 금방 배울 정도였다. 그 외에도 아체라모의 공연 형태, 배우들의 창법과 몸짓이 중국 한족문화와는 확연히 다른데 비해 한국의 마당극이나 민간 풍속과 닮은 점이 많아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윤소희 음악인류학 박사·위덕대 연구교수 ysh3586@hanmail.net

 

[1547호 / 2020년 7월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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