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홀로 있어도 바르게 행하는 길
29. 홀로 있어도 바르게 행하는 길
  • 허만항 번역가
  • 승인 2020.07.28 10:36
  • 호수 15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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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문과 연각·제불보살은 삼세를 원만히 본다

허물 적길 바라면 제불이 내가 한 일을 알고 있다 두려워하라
허물 알면 고치고 정의를 보면 실천하며 홀로 있을 때 삼가고
언제나 공경심이 주가 되고 지성심 간직해 바른 지견 갖춰야
인광대사는 홀로 있을 때 더욱 삼가고 바르게 수행할 것을 당부했다. 부처님 역시 홀로 있을 때 더욱 더 철저하게 수행정진했다. 산청 정각사 벽화.
인광대사는 홀로 있을 때 더욱 삼가고 바르게 수행할 것을 당부했다. 부처님 역시 홀로 있을 때 더욱 더 철저하게 수행정진했다. 산청 정각사 벽화.

제131칙 : 홀로 있을 때 삼가하며 모든 것에 부끄러워할 줄 알라.

소인이 선한 일을 하면서 실제로는 악한 일을 하는 연유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모르는 것은 세간의 범부라 실상을 모를 뿐이다. 만약 득도한 성인이라면 또렷이 전부 안다. 천지귀신은 비록 득도하지 않았을지라도 과보로 타심통을 얻어 그들도 또렷이 전부 알거늘, 하물며 성문과 연각, 보살과 제불께서 타심통과 혜안이 있어 손바닥위에 올려놓고 보듯 삼세를 원만히 봄이겠는가? 

그래서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길 바라나, 오직 자신만 모를 뿐이다. 자신이 안다면 천지귀신 불보살 등도 전부 알고, 전부 보지 않음이 없다. 이러한 이치를 안다면 설령 사람이 보지 않는 어두운 곳일지라도 감히 게을리 하거나 소홀히 하지 않을 것이고, 감히 악한 생각을 품지 않을 것이다. 생각이 싹트기 시작할 때는 미미하지만, 죄와 복은 하늘 땅 만큼 차이가 커진다.  

그래서 자신의 허물이 적길 바란다면 먼저 귀신과 제불 등이 전부 내가 한 일을 알고 있다고 두려워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야 한다. 그래서 “성현의 가르침을 만나면 늘 생각하여 잊지 말고 홀로 있을 때 삼가하며, 자신의 그림자와 덮고 자는 이불에도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한다.” 이는 여전히 세상의 정견에 따라 평이하게 말한 것이다. 사실 우리의 마음과 시방법계가 하나로 들어맞지만, 내가 미혹한 연고로 아는 것이 자기 한 몸에 국한되어 있을 뿐이다. 

저 시방법계의 성인들은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법계를 두루 덮는 여래장심을 철저히 증득하여, 법계 속 모든 유정중생이 마음을 일으키고 생각을 움직임에 대해 몸소 알고 몸소 보지 않음이 없다. 왜 그러한가? 중생과 부처님은 진여자성을 함께 갖추고 있어 자신과 타인이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치를 안다면 저절로 두려워하고 조심하며 언제나 경계심을 유지하여 공경심이 주가 되고 지성심을 간직할 수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망념을 멈추길 노력하고, 오래되면 망념조차 얻을 수 없다, 악한 생각은 원래 망념에 속하여 비추어서 깨닫지 못하면 즉시 실제 악이 되고, 만약 비추어서 깨달을 수 있다면 망념이 사라지고 진심이 나타날 것이다. 

제132칙 : 허물을 알면 고치고 정의를 보면 실천하라.

염불하는 사람은 반드시 일마다 늘 충실하고 용서할 줄 알며, 마음마다 허물을 경계하여 허물을 알면 고치고, 정의를 보면 과감하게 뛰어 들어야 불도와 상응한다. 이러한 사람은 반드시 왕생한다. 이렇지 않으면 부처님과 상반되어 결코 감응하여 통하기 어렵다.  

제133칙 : 인과를 알고 홀로 있을 때 삼가라.

학불하는 사람은 먼저 인과를 알고, 홀로 있을 때 삼가함으로부터 시작한다. 이미 홀로 있을 때 삼갈 수 있는 이상 삿된 생각이 저절로 사라지니, 어떻게 여법하지 않은 부분이 생길 수 있겠는가? 만약 있다면 없애길 노력하여야 진실로 배운 것을 이행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배움은 한쪽에 있고 행위는 다른 한쪽에 있어 지견이 높아질수록 행위는 내려간다. 이는 오늘 학불하며 자칭 이치에 통달한 사람의 골수 깊숙이 파고든 암 덩어리이다. 다음에도 같은 잘못을 두 번 다시 저지르지 않기를 기약할 수 있다면 일분을 배워서 곧 일분의 실제 이익을 얻을 것이다.  

제134칙 : 언제 어디서나 공경심이 주가 되고 지성심을 간직하라.

여러 악과 온갖 선은 모두 마음 바탕에서 논해야지 구체적으로 행하는 일을 전적으로 가리키지 말아야 한다. 마음 바탕에서 완전히 악한 생각을 일으키지 않으면 전체 그대로 선이다. 이런 사람이 염불하면 그 공덕은 보통사람보다 백 천만 배나 뛰어나다. 마음바탕이 오직 선하고 악이 없고자 하려면 응당 언제 어디서나 공경심이 주가 되고 지성심을 간직하여야 한다. 마치 부처님을 마주하듯 하여야 비로소 희망이 있다. 마음을 방종하면 갖가지 여법하지 않은 생각이 이를 따라 일어난다.

제135칙 : 진실로 뉘우치고 바른 지견을 갖고 정업을 수습하라.

과거의 죄업이 비록 지극히 깊고 무거울지라도 마음과 뜻을 다해 참회하고, 과거의 악행을 고치고 미래의 선행을 닦으며, 바른 지견을 갖고 정업(淨業)을 수습하여 자신을 이롭게 하고 타인을 이롭게 하겠다는 뜻을 세우고 변하지 않으면 죄업의 장애가 안개 걷히듯이 사라지고, 본래성품의 하늘이 맑게 개일 것이다. 그래서 경전에서 말씀하시길 “세상에는 두 부류의 건강한 사람이 있으니, 한 부류는 스스로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이요, 다른 한 부류는 죄를 지으면 참회할 줄 아는 사람이다” 하셨다. 

뉘우침(悔)이란 글자는 마음으로부터 일어나야 한다. 마음을 다해 진실로 뉘우치지 아니하면, 아무리 입으로 말해도 이익이 없다. 비유컨대 처방전을 읽기만 하고 약을 복용하지 않으면, 결코 병이 나을 희망이 없다. 처방에 따라 약을 복용할 수 있으면 저절로 병이 낫고 몸이 편안할 수 있다. 그러나 세운 뜻이 견고하지 않아 하루는 뜨겁게 달아올랐다가 열흘은 차갑게 식어 버리면 쓸데없이 허망한 이름만 있고, 조금도 실익이 없을까봐 두려울 따름이다.

제136칙 : 겸허한 태도로 자신의 수양에 힘쓰고 일을 행함에 너그럽게 행하라.

성인의 도를 배우고 부처님의 도를 배움은 모두 인륜을 돈독히 하고 분분을 다하며, 삿된 마음을 막고 지성심을 간직하며 여러 악을 짓지 말고 온갖 선을 받들어 행함을 근본으로 삼으라. 또한 반드시 겸허한 태도를 유지하며 자신의 수양에 힘쓰고, 자신의 재능을 숨기고 인내하며 때를 기다리면서 위로 고인을 본받아 실천궁행하라. 이럴 수 있으면 그의 학문과 품성은 동료 무리에서 더욱 빼어날 것이다. 

그러나 총명한 사람은 모두 자신을 자랑하고 교만하게 굴며 성격이 신랄하고 매몰찬 부류에 속한다. 그의 마음에는 전혀 아량과 배려심이 없다. 이러한 사람은 종신토록 울퉁불퉁 살지 않으면 어릴 적에 요절한다. 무릇 마음먹고 일을 행함에 있어 한편으로는 너그럽게 행해야 한다. 후하면 복이 가득하고 박하면 복을 얻을 수 없다. 가혹하고 간사하면 산봉우리가 험준하여 비가 내리는 은혜조차도 입지 못하고, 풀 한포기 조차 자라지 못한다.

허만항 번역가 mhdv@naver.com

 

[1547호 / 2020년 7월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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