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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사구게송의 탑(塔)

기자명 현진 스님

‘성인의 가르침’ 담긴 신성한 곳을 의미

탑묘, 범어 짜이뜨야의 번역어
재가불자 정신적 구심체 역할
자신 밝혀줄 게송이기에 추앙

제12 존중정교분에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지금 일러준 이 경전 전체나 심지어 그 가운데 사구게송 한 수 만이라도 잘 익혀서 남에게 설해주기만 한다면 가르침이 설해진 그곳은 온갖 무리들이 마치 부처님 공양하듯 모두 공양하는 탑묘(塔廟)와 같을 것이라 하셨다.

탑이 있는 사당이란 의미의 '탑묘'는 ‘금강경’에선 범어 짜이뜨야(caitya)에 대한 구마라집 스님의 번역어이다. 현장 스님은 영묘(靈廟, 신령을 모신 사당)라고 번역하였다. 본디 범어 ‘짜이뜨야’는 성인의 유체가 묻힌 묘소를 비롯하여 그 분의 유품이나 가르침의 상징물이 있는 곳을 통 털어 일컫는 말이었다. '짜이뜨야'는 인도에서 신앙적인 공경의 대상으로 고대부터 있어왔다.

성인이라 추앙 받는 이의 실제 유체가 반드시 아니더라도 유품이나 심지어 직접적인 상관이 전혀 없는 단순한 상징물로서 개천의 조약돌이라 하더라도 ‘짜이뜨야’를 건립하는 데 전혀 결격사유가 되지 않는다. 그러다 불교에서 부처님이나 그 제자의 무덤이 신앙의 대상으로 세워지며 묘소를 특별히 ‘스뚜빠(stūpa)’라 일컫게 되자, 그 외에 상징물로서 발우나 경전 등을 안치하여 공양을 올리는 곳을 특별히 ‘짜이뜨야’라 하여 구분하게 되었다. 한문인 ‘塔’은 범어 ‘stūpa’를 표기하기 위해 소리옮김으로 만든 글자이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자 인도 전통의 화장인 다비로 치러지는 장례식은 재가불자들이 주관하여 진행되었다고 한다. 다비를 마친 후에 유골인 사리(śarīra)의 분배에 참여한 것도 모두 재가불자집단이다. 아난존자나 목련존자가 일부나마 모셔간 것이 아니라 다비를 거행한 장소인 꾸시나가르의 말라족을 비롯하여 마가다국의 아사세왕과 부처님의 부족인 석가족 등 모두 8개 부족이 나누어 모셔갔다.

그리고 불교 이전부터 내려오던 전통과 별 다름없이 그들이 생활하는 번화한 곳에서 멀지 않아 오가며 늘 공양을 올릴 수 있는 곳에 ‘짜이뜨야(caitya)'를 세웠으니, 재가불자의 정신적 구심체 역할을 하는 불탑[佛塔, Buddhastūpa]이 건립된 것이다. 그것이 짜이뜨야건 스뚜빠건, 그 안에 모신 분이 쉬바신이건 부처님이건 아니면 예수님이건, 인도인들에게 모두 신성한 생활신앙의 대상인 동일한 탑묘일 뿐이다. 이 탑묘에서 대승불교의 기운이 싹텄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불가에 입문하는 이가 읽어야 하는 ‘치문경훈’에 수록된 글 가운데 글자를 아끼면 얻는 이익을 밝히는 글[明惜字之益]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송나라 왕기공(王沂公)의 아버지는 글자가 적힌 종이가 땅에 떨어진 것을 보면 반드시 거두어들여 향물로 씻은 다음에 그것을 불사르곤 하였다.

하루저녁의 꿈에 옛 성인께서 그의 등을 어루만지며 이르기를 “너는 내 글씨가 쓰인 종이를 공경하고 소중히 여김에 매우 부지런하구나. 한스러운 것은 네가 이미 늙었기에 이제 성취할 만한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다. 다른 날 증삼(曾參)과 같은 이가 너의 집안에 태어나도록 하여 문중을 크게 선양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하였다. 얼마지나지 않아 과연 한 아들을 낳으니 왕삼(王參)이라 이름 하였다. 왕삼은 약관에 장원으로 급제하니 곧 기공(沂公)이다. 이로써 추측해 보건대 글자가 있는 종이는 버리거나 던져놓아 밟게 해서는 안 된다.’

중국인들이 종이에 적힌 글자를 허투루 하지 않는 것처럼 인도 사람들은 알맞은 음률을 갖춘 한 수의 게송을 귀히 여기는 전통이 있다. 한문을 중심으로 한 시각문화(視覺文化)의 중국에서 종이 위의 문자를 중시하는 것과 범어를 중심으로 한 청각문화(聽覺文化)의 인도에서 음성에 담긴 게송을 중시하는 것은 결국 동일한 목표를 향하고 있으니, 다름 아닌 성인의 ‘가르침'이 그것이다. 자신을 이끌어줄 귀한 가르침이기에 그것이 적힌 종이를 귀하게 여겨 소중히 다루는 것이며, 자신을 밝혀줄 귀한 가르침이기에 그것이 담긴 음성을 정성을 다해 귀 기울여 듣는 것이다. 그래서 존중정교분에선 게송 한 수가 강설된 곳이 부처님의 탑묘와 같은 대접을 받을 것이라 말하고 있다.

현진 스님 봉선사 범어연구소장 sanskritsil@hotmail.com

 

[1548호 / 2020년 8월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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