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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김인관(金仁寬)의 유선도(柳蟬圖)

기자명 손태호

섬세한 필치서 묘한 생동감·청량감 느껴져

작은 매미에게도 의미 부여해 자신의 삶 돌아본 김인관
길고 긴 쓰라린 인고 세월 비해 짧게 생 마감한 매미 보며
자신의 존재 그 자체가 이미 빛나는 생임을 모두 깨닫길

김인관 作 ‘유선도’ ‘화훼초충화권축’ 중, 지본수묵담채, 1150x17cm, 국립중앙박물관.
김인관 作 ‘유선도’ ‘화훼초충화권축’ 중, 지본수묵담채, 1150x17cm, 국립중앙박물관.

아직 8월이라 여름이 한창이지만 절기상으로 입추(立秋)도, 처서(處暑)도 지났기에 이제 더위는 오래가지 않을 것입니다. 올해는 장마가 길어서 무더위도 예년보다는 조금 덜 한 것 같습니다. 열어놓은 창문 밖으로 들리던 우렁찬 매미소리도 이제 조금씩 잦아들고 있습니다. 더위에 창문을 열면 줄기차게 울어대는 매미소리에 잠을 설친 경험이 한두 번쯤 있을 것입니다. 매미는 수컷만 독특한 발음 기관을 가지고 있어 소리를 낼 수 있기에 들리는 모든 매미 소리는 수컷의 울부짖음입니다. 암컷은 아무런 소리를 내지 못합니다. 매미 소리가 줄어들고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코로나 전염병과 긴 장마가 한꺼번에 들이닥친 독했던 올해 여름도 가을에게 자리를 양보해야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또 여름을 헤쳐가고 있습니다. 

매미 소리를 듣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멋진 매미 그림들이 떠오릅니다. 겸재 정선의 ‘송림한선도(松林寒蟬圖)’, 현재 심사정의 ‘화훼초충도’, 김인관 ‘유선도’ 등이 유명한 매미 그림들입니다. 그중에서 오늘 17세기 후반에 활동했고 호가 월봉(月峰)이란 것 외에 별로 밝혀지지 않은 김인관(金仁寬, 1636~1706)의 ‘유선도(柳蟬圖)’를 감상해보겠습니다. 

그림 우측 아래에 고목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굵은 나무 둥치와 거친 표면으로 보아 나이가 제법 든 고목임을 알 수 있습니다. 둥치 위로는 두 개의 가는 줄기가 다시 솟아오르고 그중 왼쪽 가지가 대각선 방향으로 길게 뻗어 나오면서 그 아래로 어린 나뭇잎을 펼쳐놓고 있습니다. 나무 잎의 모양으로는 버드나무로 추측됩니다. 버드나무는 도연명(陶淵明, 365~427)이 고향에 은거하며 집 주위에 다섯 그루의 버들을 심고 스스로 오류(五柳)선생이라 부른 이래 군자와 인연이 깊은 나무입니다. 고목에서 나온 여린 가지와 잎의 대비는 매미의 탈바꿈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왼쪽 아래로 내려간 나무줄기와 잎 사이로 매미 한 마리가 매달려 있습니다. 보통 조선시대 그림에서 매미는 대부분 굵은 가지 중간쯤에 매달려 있는데 반해 김인관의 매미는 왼쪽 가는 가지에 매달려 있는 점이 크게 다른 점입니다. 어찌 보면 매미가 조금 불안한 위치에 매달려 있지만 구도 상으로는 오른쪽 굵은 나무 둥치의 무게를 분산하는 왼쪽에 진한 먹으로 그린 매미를 배치하여 안정감을 찾았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참신한 구도가 김인관의 장기로 그의 그림으로 전해지는 ‘잉어도’나 ‘어해도’에서도 다른 화가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구도가 특징입니다. 바람에 살짝 흔들리는 나뭇가지와 그곳에 매달린 매미. 섬세한 필치에서 생겨나는 묘한 생동감과 맑은 수채화 같은 청량감이 느껴져 직업화가인지 선비화가인지 조차 알 수 없지만 김인관의 그림 실력이 뛰어났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옛 그림에서 매미는 군자의 덕을 상징했습니다. 이는 매미의 생태와 모습에서 동양의 선비들에게 전해져오던 오랜 문화 상징입니다. 진(晉)나라 육운(陸雲, 262~303)은 그의 ‘한선부(寒蟬賦)’ 서문에서 매미가 문(文), 청(淸), 염(廉), 검(儉), 신(信) 등 오덕(五德)을 갖추었다고 하였습니다. 첫째 덕은 매미의 머리가 관(冠)의 끈이 늘어진 형상이니 배움의 문(文)이고 둘째 덕은 매미가 오직 맑은 이슬만 먹고 살기에 깨끗함의 청(淸)이라 하였습니다. 셋째 덕은 매미는 사람이 먹는 곡식(穀食)을 먹지 않기에 청렴의 렴(廉)이고 넷째 덕은 다른 벌레들처럼 굳이 집을 짓지 않으니 검소함의 검(儉)이며 다섯째 덕은 철에 맞추어 허물을 벗고 반듯이 소리내 우니 믿음의 신(信)이라 하였습니다. 이런 매미 오덕을 군자의 도리로 삼고 백성을 다스리는 관리의 덕목으로 삼자는 의미에서 임금도 나는 매미 날개를 형상화한 익선관(翼善冠)을 썼으며 신하들도 펼친 매미 날개 모양인 오사모(烏紗帽)를 썼습니다. 이는 매미의 오덕을 결코 잊지 말자는 의미입니다.

매미의 오덕은 매미의 생태와 관련된 내용이지만 매미의 생애 중 가장 중요한 특징은 바로 우화(羽化)입니다. 매미는 땅속에서 적게는 3~4년 길게는 17년을 웅크리고 있다가 성충으로  세상 밖으로 나옵니다. 우리나라에는 900여종의 매미가 있는데 그 중 참매미와 유자매미는 약 5년을 주기로, 말매미의 경우 6년여를 땅속에서 번데기로 기다리다 성충이 되어 땅 위로 올라와 껍질을 벗고 날개가 달린 매미가 됩니다. 이렇게 번데기가 날개 있는 성충이 되는 것을 우화라 합니다. 사람이 날개가 돋아 하늘로 올라가 신선이 되는 것은 우화등선(羽化登仙)이라 합니다. 긴 세월동안 땅속에서 천적들을 피해 나무 진액만을 먹으며 참고 참다가 땅 위로 올라와 모든 허물을 벗고 새로운 날개를 다는 것. 이것은 거의 기적과 다름없습니다. 그러나 그 기적의 단꿈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수컷은 교배를 하고 바로 죽고, 암컷은 알을 낳자마자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렇게 고작 열흘에서 한 달 정도 머물고 저세상으로 떠납니다. 길고 긴 쓰라린 인고의 세월에 비해 너무나 짧게 우화의 생을 마감합니다. 매미는 그렇게 허락된 짧은 마지막 시간동안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최선의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귀에 거슬려도 우화한 매미의 울음소리를 시끄럽다고만 할 수 있겠습니까? 매미의 울음소리는 하나의 세상을 파괴하고 나와 새로운 세상에 자신의 생(生)이 결코 실패하지 않았음을, 고난을 다 이기고 마침내 빛나는 생을 얻었음을 알리는 포효입니다. 그래서 매미는 소리를 입으로 내는 것이 아니라 몸통에서 내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어찌 보면 우리 인간의 삶도 매미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삶의 무게로 힘들고 괴로워도 참고 견디면 언젠가 날개가 돋아나 세상을 휠휠 날아다닐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날개를 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인간의 몸을 받아 태어난 것은 무수히 많은 과거 윤회 속에서 세상 만물과 상호의존하며 쌓은 연기법에 의해 이번 생에 인간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어쩌면 매미보다 훨씬 길고 힘든 과거 생을 지나 오늘날 우리가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다음 생은 어디로 향할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니 인간의 몸을 받은 이번 생이 얼마나 귀하고 귀한 시간들입니까? 가끔 자신의 삶을 자책하며 괴로워하는 분의 이야기를 듣곤 합니다. “나쁜 날씨는 없다. 다만 옷을 잘못 입었을 뿐이다” 고 말한 영국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 말처럼 나쁜 날씨가 없듯이 나쁜 삶도 없습니다. 그저 각자 입은 옷이 다를 뿐입니다. 김인관의 ‘유선도’를 보면서 비록 작은 미물에게도 의미를 부여하며 자신을 돌아보던 조선의 선비들을 생각하고 자신의 존재 그 자체로 이미 빛나는 생(生)임을 모두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손태호 동양미술작가, 인더스투어 대표 thson68@hanmail.net

 

[1551호 / 2020년 9월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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