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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무소유 정신으로 세상 깨운  법정  스님 발원

기자명 고명석

“불필요한 것으로부터의 자유가 행복 척도”

선택된 맑은 가난은 삶의 미덕이며 정신을 풍요롭게 해
나눔은 가진 사람이 받은 것에 대해 지불해야 할 보상
어떤 환경에서도 구체적 원 세우면 지혜와 용기 생겨나

법정 스님은 행복의 척도는 얼마나 많이 갖느냐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워지느냐에 달려 있다면서 청빈과 나눔을 강조했다. 스님이 세상을 깨우는 무소유 정신을 펼쳐보였던 송광사 불일암.
법정 스님은 행복의 척도는 얼마나 많이 갖느냐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워지느냐에 달려 있다면서 청빈과 나눔을 강조했다. 스님이 세상을 깨우는 무소유 정신을 펼쳐보였던 송광사 불일암.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게 아닙니다.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 것입니다. 만족할 줄 알면 비록 가진 것은 없더라도 부자나 다름없습니다. 행복의 척도는 필요한 것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느냐가 아닙니다. 불필요한 것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워져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좋은 말씀)

무소유와 청빈을 강조하고, 맑고 향기롭게 살아가기 운동을 전개한다. 열반에 이를 때까지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 바로 평범한 비구 법정(法頂) 스님이다. 그러나 비구 법정은 평범 속에서 평범 이상, 그 너머였다. 그의 향기로운 글과 정신은 우리에게 산사의 청량한 바람소리, 해질 무렵의 장엄한 노을이었다. 

법정(1932~2010)은 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우수영에서 태어났다. 속명은 박재철(朴在喆). 목포에서 정광중학교를 거쳐 목포상업학교를 졸업하고 전남대 상과대학 3년을 수료했다. 그는 1954년 12월, 24세 때 효봉 스님 문하로 출가한다. 인간 실존에 대한 물음, 한국전쟁의 상처, 그 투쟁과 분열, 고뇌와 방황, 거기서 자유롭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필력이 뛰어났으며 삶과 세상, 그리고 불교를 보는 안목이 깊었다. 당시 불교계와 총무원의 잘못된 풍토에 대해 고언을 아끼지 않았으며, ‘불교 성전’ 편찬을 주도했다.

법정은 1973년 함석헌이 주도했던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으로 활동한다. 유신철폐 운동, 민주화 운동에도 적극 가담한다. 1975년 이른바 제2 인혁당 사건으로 8명이 사형에 처해지자 그는 큰 충격을 받는다. 증오심이 끓어올랐다. 증오로 불타오르는 자신을 보자 이는 중노릇하는 것이 아님을 각성하고 그는 산사로 들어간다. 송광사 불일암.

1976년 그의 주저 ‘무소유’가 출간되자 그의 이름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면서 법정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는다. 월간 잡지 ‘샘터’에 주옥같은 수필을 연재하고 계속 단행본을 펴내면서 우리 마음을 소박하고 맑게 물들인다. 법정은 청빈한 삶과 나누는 삶을 무엇보다 강조했다. 소유를 제한하고 억제하는 것이 우리 정신을 풍요롭게 한다는 것이다. 행복의 척도는 불필요한 것으로부터 자유로움이다. 털어버림이다. 홀가분함이다. 

“주어진 가난은 우리가 이겨내야 할 과제지만, 선택된 맑은 가난은, 즉 청빈은 삶의 미덕입니다. 풍요 속에서는 사람들이 병들기 쉽지만, 맑은 가난은 우리에게 마음의 평화를 이루게 하며 올바른 정신을 지니게 합니다.”(1997년, 길상사 개원법회) 

법정은 청빈을 거룩한 가난, 혹은 자발적 가난이라고도 했다. 그것은 온갖 집착으로부터 해방됨이요 지족한 삶이다. 적은 것, 작은 것이 아름답다. 더욱 적을수록 귀하고 더욱 사랑할 수 있으며 넘치는 것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부(富)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하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비움과 나눔을 강조하여 비우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했다. 사랑은 이러한 지혜에서 나온다. 

“선행, 착한 일. 그것은 나누는 일입니다. 나눈다는 것은 많이 가진 것을 그저 퍼주는 게 아니에요. 나눔이란 가진 사람이 이미 받은 것에 대해서 마땅히 지불해야 할 보상 행위이고 감사의 표현입니다. 본래 내 것이란 없습니다.”

법정 스님은 베푸는 것이 아니라 나눔이라 했다. 베푼다는 것은 내가 가진 것을 너에게 준다는 오만한 생각이며, 베푸는 것은 수직이지만 나눔은 수평이라는 의미에서.  

법정은 1992년 명성이 높아져 많은 사람들이 불일암으로 몰려오자 그곳을 떠나 다시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강원도 산골, 문명의 편리를 불편함으로 거부하고 오두막에서 지내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는 다시 출가사문으로서 이 사회에 작은 역할이라도 하겠다며 맑고 향기롭게 살기운동을 전개한다. 맑고 향기롭게 운동의 ‘맑음’은 개인의 청정을 뜻하고 ‘향기로움’은 그 청정의 사회적 메아리다. 이는 나눔의 실천이기도 하다.

법정은 1997년 12월, 성북동 대원각 자리에 ‘맑고 향기롭게’ 근본 도량인 길상사(吉祥寺)를 창건한다. 길상사는 ‘무소유’를 읽고 감화를 받은, 한때 시인 백석을 사랑했던 길상화 김영환 보살이 당시 1000억원 상당의 대원각을 스님에게 기부해 발원으로 탄생한 것이다. 법정은 창건 발원문을 올린다. 

“길상사가 맑고 향기로운 도량이 되게 하소서. 이 도량에 몸담은 스님들과 신도들, 이 도량을 의지해 드나드는 사람들까지도 한마음 한뜻이 되어, 이 흐리고 거친 세상에서 맑고 향기로운 도량이 되게 하소서. 좋은 스님들과 신도들이 모여서 법답고 길상스런 도량을 이루게 하시고, 안팎으로 보호하고 있는 신도들이 부처님과 보살들의 보살핌 속에 행복한 나날을 이루게 하소서.”(일기일회)

이와 유사한 창건 발원문이 또 하나 있어 소개해 본다.  

우러러 부처님께 절하옵니다. 향 사루어 올리오니 길상의 땅에 나투소서./ 무릎 꿇어 절하오니 자비의 손길 드리우소서./ 부처님 말씀 따라 우리의 삶 가꾸고저/ 보살의 길 따라 이 땅을 빛내고저/ 마음 맑게 뜻 곱게 길상의 터 일구오니/ 두터운 인연의 길/ 기특히 여기소서. 쓰다듬어 주소서./ 자비로 이끄소서. 지혜광명 내리소서./ 위대하시어라. 부처님이시어. ...(정찬주, 그대만의 꽃을 피워라)

법정은 그 어떤 환경에 처하더라도 원을 제대로 세우면 그 어려움을 뚫고 나갈 지혜와 용기가 생긴다고 말한다. 해서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원이 아니라 구체적인 원을 세우라고 했다. 그 원력 통해서 우리가 한 걸음씩 인간의 길로 나가게 된다.

그는 절이 결코 개인의 소유가 될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길상사를 종단에 등록한다. 그는 도량에 살지 않으면서 방을 차지한다는 것은 부처님 법 밖의 행위이기 때문에 길상사에서도 하룻밤 머물고 가는 일이 없었다. 이러한 그의 철저한 무소유성은, 인간의 진정한 해방, 해탈은 자비에서 나온다는 그의 말과 더불어 무딘 세상을 깨우는 큰 울림이지 않은가.  

고명석 불교사회연구소 연구원 kmss60@naver.com

 

[1552호 / 2020년 9월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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