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만병통치약
32. 만병통치약
  • 허만항 번역가
  • 승인 2020.09.15 09:38
  • 호수 15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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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법문은 모든 근기와 병통 치유 가능

정토법문 귀의처로 삼아야 인은 있고 과는 없는 지경 극복
소홀히 하는 마음이 없어 자기 성심 크기 따라 이익 얻게 돼
삿된 집착‧그릇된 견해 등 어떤 병통이라도 치유될 수 있어
관세음보살이 손에 든 약병에는 모든 중생의 병을 치유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이 들어 있다. 인광 스님은 정토법문이 바로 그 만병통치약이라고 강조한다. 사진은 중국 보타산 법당에 수많은 중생과 함께 한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이 손에 든 약병에는 모든 중생의 병을 치유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이 들어 있다. 인광 스님은 정토법문이 바로 그 만병통치약이라고 강조한다. 사진은 중국 보타산 법당에 수많은 중생과 함께 한 관세음보살.

제150칙: 일심불란이면 감통이고 감통이면 마음은 정일하다.

폐관(閉關) 중 공력을 들임에 응당 전일(專一)과 정일(精一)이 둘 아님을 위주로 한다. 전심(專心)으로 마음이 귀일(歸一)하면 저절로 불가사의한 감통(感通)이 있고, 귀일하지 못한 이전에는 조급하게 망심(妄心)으로 먼저 감통을 구해서는 안 된다. 일심 후에는 반드시 감통이 있게 되고, 감통이면 곧 마음은 한층 더 정일하다. 이른바 맑은 거울이 경대에 놓여 있으면 만나는 형상마다 모두 거울에 비치어 형형색색 어지럽게 분분한 것들이 그것에서 나오는데 나와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 마음이 아직 귀일하지 못한데, 조급히 감통을 구하면 즉 이 감통을 구하는 마음은 바로 불도를 닦음에 제일 큰 장애이다.

제151칙: 지극히 온당한 염불일문에 뜻을 두어야 한다.

요즘 사람들은 항상 매우 높고 수승한 것에 힘써 조금이라도 총명하면 선종과 법상종과 밀종을 배우고, 대부분 염불은 쓸모가 없는 것으로 여긴다. 선종 기어(機語)의 현묘함, 법상종 법상의 정미함, 밀종 위신력의 광대함만 알뿐이다. 

선을 닦는 사람은 설령 확철대오의 지위에 이를지라도 번뇌가 다하지 않았다면 여전히 생사를 끝낼 수 없다. 법상종은 아집과 법집을 다 깨뜨리지 못하면 설령 갖가지 명상을 잘 이해할지라도 음식을 말할 뿐 먹을 수 없는 것과 같고, 보배를 헤아릴 뿐 얻을 수 없는 것과 같아 구경에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밀종은 비록 현재의 몸으로 성불할 수 있다고 말할지라도 성취할 수 있는 자는 결코 박지범부의 일이 아니다. 범부가 망령되이 이런 생각을 내면 귀신에 홀려 미치는 경우가 십중팔구이다. 그래서 반드시 염불일문에 뜻을 두어야 하니, 그것은 지극히 온당한 위없는 제일법칙이다.

제152칙: 만병통치약인 정토법문은 모든 근기, 모든 병통을 치유할 수 있다.

만약 타고난 자질이 총명하다면 성상의 각 종파를 연구해도 무방하지만, 정토법문을 귀의처로 삼아야 인은 있고 과는 없는 지경에 이르지 않고, 태어남을 끝내고 죽음을 벗어나는 묘법을 구두선으로 삼으면 그 실제 이익을 얻을 수 없다. 반드시 공경을 주로 삼아 성심을 보존하고 경전을 살아있는 부처님을 대하듯이 하여 감히 조금도 태만하고 소홀히 하는 마음이 없어 자기 성심의 크기에 따라 깊고 얕은 여러 이익을 얻을 수 있길 바란다.

근기의 우둔한 사람의 경우 정토법문을 전일하게 연구하여 진실한 믿음을 충분히 지닐 수 있고 선정을 지킬 수 있으면, 반드시 이번 생에 태어남을 끝내고 죽음을 벗어나며, 범부를 뛰어넘어 성인의 흐름에 들 수 있다. 경론을 깊이 통달하였지만 정토법문을 수행하지 않는 사람과 비교하면 그 얻는 이익은 어찌 하늘땅만큼 차이가 현저하지 않겠는가.

위에서 말한 것처럼 자격이 어떠하든지 가장 처음 한 가지 약을 처방하면, 삿된 집착과 그릇된 견해가 있거나, 아만으로 방자하게 굴거나, 거룩한 경지가 너무 높은 줄 알거나, 하열하다 자처하는 등 병통이 무엇이든지 이 한 가지 아가타약 만병통치약(정토법문)으로 말미암아 즉석에서 치유되지 않음이 없다.

제153칙: 견성성불 현신성불하신 분은 오직 석가모니부처님 한분뿐이다.

선종에서는 언제나 명심견성(明心見性), 견성성불(見性成佛)을 말한다. 명심견성은 확철대오이다. 견성성불은 자성천진(自性天眞)의 부처님을 직접 봄을 말한다. 성불이라 함은 실제로는 이즉불(理即佛)과 명자불(名字佛)로 결코 복덕지혜가 원만한 구경불이 아니다. 이 사람은 설사 최고경계를 깨달았고, 불성을 친견하였을지라도 여전히 범부이지 성인이 아니다. 널리 육바라밀을 닦아서 일체 경계인연 중에서 번뇌습기를 대치하고 자신의 심지를 남김없이 청정히 하면, 태어남을 끝내고 죽음을 벗어나며 삼계를 뛰어넘어 육도가운데 있지 않을 수 있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적에 이러한 사람은 매우 많았고, 중국 당송 시절에도 여전히 있었지만, 지금은 확철대오 마저도 쉽게 얻지 못하거늘 하물며 번뇌가 완전히 없는 사람이겠는가? 밀종에는 현신성불(現身成佛) 혹은 즉신성불(即生成佛)을 말하지만, 이는 선공의 견성성불과 같은 말로 모두 그 공부가 깊고 깊음을 칭찬해 이름으로 진실로 지금 몸으로 성불할 수 있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 모름지기 현신성불하신 분은 오직 석가모니부처님 한 분 뿐임을 알아야 한다. 이 분을 제외하고 설사 고불이 시현하셨을지라도 현신으로 성불하는 일은 없다. 

제154칙: 선도화상은 전수와 잡수의 법문으로 모든 사람을 두루 왕생하게 하였다. 

선도(善導)화상은 아미타부처님의 화신으로 대신통이 있었고, 대지혜가 있었다. 그는 정토를 홍양하였고 천술하였으며, 현묘함을 숭상하지 않고 단지 분명하고 평범한 곳에서 사람들이 수지하도록 가르치셨다. 한편 그가 열어 보인 전수(專修)와 잡수(雜修)의 법문으로 사람이 받을 수 있는 이익은 무궁하다. 

전수란 신업으로 주위를 돌면서 일체 처에 미쳐 몸이 방일하지 않도록 전례(專禮)하고, 구업으로 경전과 주문을 염송하여 뜻과 마음으로 회향하도록 전칭(專稱)하며, 의업으로 보리심을 발하여 아미타불 부처님 명호를 전념(專念)하는 것을 말한다. 이와 같이 닦으면 서방극락에 왕생함에 있어 만 명 가운데 한 명도 빠뜨리지 않는다. 잡수란 바로 여러 가지 법문을 겸수하여 그 공덕을 회향하여 왕생하는 것이다. 마음이 순일하지 않아서 그 이익을 얻기가 어렵다. 그래서 백 명 중에 한두 명으로 드물게, 천 명 중에 서너 명으로 드물게 왕생할 것이다. 이는 부처님께서 직접 하신 진실한 말씀으로, 천고에 변하지 않는 확실한 사안이다.

제155칙: 자기 직분을 다하고 극락왕생을 권진하라.

날마다 자신의 힘을 헤아려 그것에 맞게 염불하고 대비주를 지송함을 자신을 이롭게 하고 타인을 이롭게 하는 의지처로 삼아야 한다. 일체 사람에게 모두 믿음과 발원으로 염불하여 서방극락에 태어나길 구하라고 권진하여야 한다. 재가자이든 출가자이든 모두 각자 맡은 바 직분의 일을 다 하면서 일체사람에게 먼저 세상에서 현인과 선인이 되어 부처님의 자비력에 의지해 범부를 뛰어넘어 성인의 흐름에 들고 서방극락에 왕생할 수 있도록 한다. 누구에게도 해낼 수 없는 큰 말은 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자기는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는 죽만 먹고 지내는 중이라 하니, 이는 그 대략이다.

허만항 번역가 mhdv@naver.com

 

[1553호 / 2020년 9월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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