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32대 총무원장 지관 스님-하
42. 32대 총무원장 지관 스님-하
  • 권오영 기자
  • 승인 2020.09.18 20:49
  • 호수 15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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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 봉암사결사 60주년 기념법회 열어 종단 내홍 수습
청정교단·수행가풍 회복 위해 모든 스님 ‘결계·포살법회’ 의무화
2009년 10월 임기 마치고 퇴임…94년 이후 첫 평화 종권 이양
이명박 정부의 종교편향이 노골화 되자 조계종을 비롯한 불교계는 2008년 8월27일 범불교도대회를 개최했다. 법보신문 자료사진

“남보다는 나를 먼저 생각했고, 수행보다는 명리를 탐하였습니다. 칭찬보다는 비방을 일삼았으며, 지혜보다는 지식 얻기를 즐겼으며 화합보다는 분열을 조장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수행인의 본분은 망각한 채 교만하고 방일했습니다. 지금의 위기와 고난이 졸음을 깨우는 경책의 죽비소리임을 알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을 것입니다.”(영진 스님, 봉암사결사 60주년 기념법회 참회문, 법보신문 2007년 10월19일자)

2007년 10월19일, 전국선원수좌회 의장 영진 스님의 참회문이 문경 봉암사를 둘러싼 희양산에 울려 퍼졌다. 조계종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스님의 참회문은 비수보다 더 예리하게 사부대중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1만여명이 자리한 봉암사 대웅전 앞은 한동안 침묵으로 적막감이 흘렀다. 사부대중은 일제히 참회진언을 봉독했다. 갑작스런 폭우가 이들을 가로막았지만, ‘오직 부처님 법대로 살겠다’는 사부대중의 참회와 발원은 멈추지 않았다. 

조계종이 봉암사결사 60주년을 맞아 봉행한 이날 기념법회는 세간의 큰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이날 법회는 성철·청담·자운 스님 등 30여명의 스님들이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퇴색한 한국불교를 수행으로 다시 세우자’고 결기를 모았던 것처럼 “뼈저린 참회를 통해 수행과 전법의 본분으로 돌아가겠다”는 사부대중의 원력을 모으는 자리이기도 했다.

그해 조계종은 종단안팎에서 불거진 각종 부조리로 큰 홍역을 앓았다. 세간을 뺨치는 불법선거와 폭력사태, 주지자리를 두고 발생한 매관매직, 정치권의 유착과 각종 공금의혹 등 관음사, 마곡사, 동국대 등에서 불거진 여러 의혹들은 조계종이 세간으로부터 외면 받는 빌미가 됐다. 언론을 통해 여과 없이 드러난 조계종 민낯은 불교 이미지를 땅바닥에 곤두박질치도록 했고, 불자들의 자긍심마저 무참히 짓밟았다. 그렇기에 이날 기념법회는 대사회를 향한 사부대중의 뼈저린 참회의 장이자, 스스로 거듭나겠다는 발원의 자리였다. 

지관 스님은 “60년이라는 세월 속에 봉암사 결사의 뜻을 쇠잔하게 만들었다면 우리는 옛 선사들에게 큰 죄를 범하고 있는 것”이라며 “성성적적한 모습의 불교, 추상같은 계율과 수행가풍을 이어가는 조계종단을 새롭게 만드는 것이 오늘 사부대중 모두의 과제일 것”이라고 밝혔다. 

봉암사결사 기념법회를 통해 사부대중의 결의를 확인한 지관 스님은 이듬해부터 ‘청정승가 구현’을 위한 제도정비에 나섰다. 그 첫 과제가 ‘포살법회 및 결계’ 정례화였다. 포살법회는 매월 그믐과 보름마다 승가공동체 구성원들이 계율과 조문을 암송하며 스스로 참회하는 의식에서 비롯됐다. 결계(結界) 역시 안거 결제 때마다 일정한 지역을 정해 그곳에 외부인의 출입을 금하고, 수행의 도량으로 삼는 것에서 유래됐다.

지관 스님은 “청정교단 수립과 수행가풍 점검을 위해서는 포살과 결계가 우선돼야 함”을 강조했다. (법보신문, 2008년 1월7일) 이를 위해 지관 스님은 자신이 직접 번역한 ‘범망경 포살본’을 전국사찰에 배포해 포살법회에 활용될 수 있도록 했으며, 그해 3월 176차 임시중앙종회에 ‘포살 및 결계에 관한 법’을 발의해 종단의 모든 스님들이 포살과 결계를 의무화하도록 했다. ‘청정승가구현과 수행종풍 회복’을 내세운 지관 스님의 원력이 성과로 이어지면서 종단은 안정을 찾았다. 

2008년은 이명박 정부의 종교편향에 맞서 불교의 자주화와 위상을 드높인 해이기도 했다. 2007년 12월 이명박 후보가 17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불교계에는 적지 않은 우려가 나왔다. 그는 대통령에 출마하기 전부터 불교계와 불편한 관계를 이어왔다. 독실한 개신교 신자로 서울 소망교회 장로였던 그는 공직자이면서도 자신의 종교를 공공연히 드러내 논란을 빚었다. 서울시장 재직 때인 2004년 5월30일 ‘청년·학생 연합기도회’에서 “대한민국 수도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한다”고 발언해 큰 비판을 받았다.(프레시안, 2004년 7월2일)

2007년 대통령 후보시절에는 자신의 부인이 ‘108산사순례기도회’에 참석해 ‘연화심’이라는 법명을 받고도 개신교계 사이에서 논란이 되자, “스님이 부인에게 얼굴이 연꽃 같다고 말한 것이 와전됐다”고 말해 ‘법명 거짓말 파문’을 빚기도 했다. 그렇기에 불교계 내부에서 이명박 당선인을 보는 시선은 차가웠다. 이를 의식한 듯 이 당선인은 2008년 1월16일 한국불교종단협의회 신년하례법회에 참석해 “불교의 하심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하고, 실천으로 옮기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이 당선인의 약속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는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노골적인 종교편향을 자행했다. ‘고소영 내각(고려대·소망교회·영남출신)’이라 불렸던 이명박 정부의 초대 내각은 개신교 신자들이 주를 이뤘다. ‘오마이뉴스(2008년 9월3일자)’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 초대내각의 총리 및 15개 부처 장·차관 39명 가운데 개신교 신자가 13명(33.3%), 가톨릭이 9명(23.1%)인 반면 불교는 2명(5.1%)에 그쳤다. 그런가 하면 이명박 대통령은 3월16일 뉴라이트전국연합 상임의장 김진홍 목사를 청와대로 초청해 예배를 보고(서울신문, 2008년 3월20일자), 청와대 경호처장은 “정부부처 복음화가 나의 꿈”이라고 했다.(한겨레신문, 2008년 7월3일자) 이명박 정부 공직자들의 종교편향이 노골화될수록 불교계 내부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커져갔다.

이런 가운데 “MB정권 지도에 불교는 없다”는 ‘법보신문(2008년 6월20일)’의 보도는 불교계가 이명박 정부의 종교편향에 정면으로 나서는 도화선이 됐다. 국토해양부가 대중교통정보이용시스템 ‘알고가’를 구축하면서 교회와 성당은 빠짐없이 지도에 표기하면서도 사찰은 모두 누락시킨 일이었다. 이어 서울 경기여고에서 불교유적을 훼손하고, 어청수 경찰청장이 순복음교회가 주관한 ‘경찰복음화를 위한 기도회 포스터’에 등장하는 사건까지 불거졌다. 그동안 이명박 정부의 종교편향을 애써 참아왔던 스님과 불자들의 분노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중앙종회의원, 교구본사주지, 불교시민단체 할 것 없이 이명박 정부의 종교편향을 규탄하는 성명과 시위가 이어졌다. 이명박 정부로서는 다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한승수 총리가 7월22일 지관 스님을 예방해 정부차원의 사과와 재발방지를 약속했다. 그러나 지관 스님은 “따로 드릴 말씀이 없다”(뉴시스, 2008년 7월22일)는 말로 불편함을 대신했다. 한 총리의 예방에도 불교계의 분노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7월29일 경찰이 서울 조계사 일주문을 나서는 총무원장 지관 스님의 차량을 검문검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무렵 조계사에는 이명박 정부의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며 촛불시위를 주도했던 수배자들이 농성을 벌였고, 경찰은 이들을 검거하기 위해 조계사 주위를 에워싸고 검문검색을 강화하고 있었다. 이날 조계종 총무원 관계자는 총무원장스님이 탑승한 차량이라고 밝혔지만, 경찰은 아랑곳 않고 지관 스님이 탑승한 차량의 트렁크까지 뒤졌다.

이 사건은 이명박 정부의 종교편향에 분노한 불교계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조계종은 강하게 반발했다. 7월30일 기자회견을 열어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와 어청수 경찰청장의 파면”을 요구했다.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범불교대회를 개최하겠다”고 밝혔다. 불교계가 대통령의 사과까지 요구한 것은 사실상 정부와의 전면전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대통령은 불교계의 사과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자 불교계는 8월27일 서울시청에서 ‘헌법파괴 종교차별, 이명박 정부규탄 범불교도대회’를 열기로 했다.

그동안 이명박 정부의 종교편향에 직접적인 언급을 자제했던 지관 스님도 직접 나서 불자들의 참여를 독려했다. “사람은 평등하면 불평이 없지만, 물은 평평하면 흐르지 못한다(人平不語 水平不流)”는 지관 스님의 유명한 어록도 이 무렵 회자된 말이었다. 2008년 8월27일, 서울광장에는 전국에서 모여든 불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대회 주최 측은 서울광장 주변의 교통체증으로 버스에서 하차하지 못한 불자들을 제외하더라도 참가자가 20만명은 족히 넘는다고 밝혔다.(법보신문, 2008년 8월27일) 범불교도대회에서 참가자들은 △대통령의 공식사과와 재발방지 약속 △어청수 경찰청장 파면 △공직자 종교차별 근절을 위한 입법조치 △촛불시위 수배자 수배해제를 요구했다. 이날 범불교도대회는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몰고 왔다.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는 세간의 여론이 드세졌다. 

결국 여론을 의식한 이명박 대통령은 9월9일 국무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일부 공직자들이 종교편향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언행이 있어, 불교계가 마음이 상하게 된 점을 심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공무원의 종교중립을 의무화하는 공무원복무규정 개정과 함께 종교편향 문제가 다시 논란이 되지 않도록 법과 제도적인 추가대책을 강구하라”고 시달했으며, 어청수 경찰청장에 대해서도 “불교지도자를 찾아가 사과하라”고 지시했다.(오마이뉴스, 2008년 9월9일자) 비록 어청수 경찰청장의 파면요구 등 불교계의 요구가 모두 수용된 것은 아니었지만, 불교계가 현직 대통령의 유감표명을 받아낸 것은 큰 성과였다. 이는 더 이상 공직자들의 종교편향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사부대중의 원력이 모아진 값진 결과이기도 했다. 

지관 스님은 이후 불교계의 높아진 위상에 걸맞은 행보를 이어갔다. 그해 9월30일 불교계 최초의 공익법인 ‘아름다운동행’을 출범시켰고, 10월2일에는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이 전통불교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하기 위해 서울 목동에 ‘국제템플스테이(국제선센터)’ 착공식도 진행했다. 12월30일에는 10·27법난 명예회복심의위원회를 발족해 10·27법난피해자 구명에도 착수했다. 2009년 1월20일 조계종의 소의경전인 금강경을 번역한 ‘표준금강경’을 발간해 봉정했으며, 그해 5월13일 여주 신륵사에서 열린 ‘30차 한일불교문화교류대회’에서는 과거사에 대한 일본불교계의 공식 참회를 이끌어냈다. 신륵사에 ‘인류화합공생기원비’를 세워 한일 양국의 우호증진 및 세계평화를 기원하는 의미도 담았다. 

이런 가운데 5월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 전해지자, 지관 스님은 논평을 내고 “노 전 대통령은 평생을 민주화운동에 헌신했고, 대통령으로서 민주주의 발전과 국민들의 권익증진을 위해 노력했다”며 “갑작스럽게 국민들 곁을 떠난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애도했다. 이어 “국가의 대내외적 위신을 전혀 고려함 없이 노 전 대통령 본인과 가족들에 대한 가혹한 수사를 진행한 것은 매우 불행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와 관련해 종교지도자가 ‘가혹한 수사’를 언급한 것은 지관 스님이 유일했다. 이는 현 정부에 강한 유감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했다. 지관 스님은 한발 더 나아가 전국 사찰에 분향소를 설치할 것을 주문했고, 노 전 대통령의 영결식에 사용될 만장도 직접 작성했다. 노 전 대통령의 비석을 쓴 것도 지관 스님이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지관 스님과 이명박 대통령의 앙금은 커졌다. 지관 스님은 그해 6월4일 이명박 대통령이 주선한 종교지도자 간담회를 “선약을 이유”로 거부했다.(오마이뉴스, 2009년 6월3일자) 현직 대통령의 청와대 초청을 거부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훗날 스님은 이 일에 대해 “사람을 자주 만나면 생각이 변할 수 있는 게 인지상정이다. 사부대중 모두 (대통령에 대해) 좋은 마음을 갖지 않은 상태였고 대중의 뜻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다”면서 “(이런 결정에 대해) 조금도 두렵거나 후회하지 않았다”고 회고하기도 했다.(법보신문, 2009년 10월19일) 

그렇게 4년의 임기를 마친 지관 스님은 2009년 10월30일 퇴임했다. 임기를 모두 마치고 평화롭게 차기 총무원장에게 종권을 이양한 것은 1994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4년 동안 ‘98년 멸빈자 사면’ ‘수행종풍 쇄신’ ‘불교의 자주화’ 등 숱한 성과를 냈다. 그럼에도 지관 스님은 10월30일 열린 퇴임식에서 “마치 40리 길을 가기 위해 차에 올라타 가만히 앉아 있다가 이제 내릴 때가 된 것뿐”이라며 “무사히 4년 임기를 마친 것은 밖으로는 사부대중 모두 각자 맡은 곳에서 열심히 해줬기 때문”이라고 공을 돌렸다.(법보신문, 2009년 10월30일)

총무원장에서 물러난 지관 스님은 다시 학자의 길을 걸었다. 가산불교문화연구원에서 ‘가산불교대사림’ 집필에 전념했다. 그러나 지병이 악화되면서 평생 원력이었던 ‘가산불교대사림’ 완간을 지켜보지 못하고, 스님은 2012년 1월2일 법납 66년, 세수 80세로 입적했다. 

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1554호 / 2020년 9월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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