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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미얀마 빠알리 찬팅 율조

사부대중이 암송하는 송경, 율조 더해져 법의 잔치가 되다

법문 내용 근거가 되는 경전 암송 소리가 노래처럼 들려
부처님 입멸 후 대중이 말씀 외우는 과정에 율조 생겨나
시간 거슬러 부처님께서 시구 읊던 당시 상상돼 환희심

마하시선원 축제에서 법문하는 모습.

힌두 사제들의 베다찬팅, 다윗의 시편, 이슬람의 꾸란은 모두 아름다운 율조를 지니고 있다. 이들 율조는 말씀을 읊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생성되는 것이므로 종교행위를 하는 것이지 음악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들에 대해 음악이라는 표현은 가능한 쓰지 않으려 한다. 이러한 율조를 연구할 때, 내부자들은 주요 골격음 위주로 간단히 그리는 데 반해 외국인을 비롯한 외부자들은 들리는 대로 장식음과 시김새를 그리는 경향이 있어 전문용어로는 에믹(emic)과 에틱(etic)이라 한다.

마하시선원에서 수행하던 어느 날, 창립기념일이 다가오자 사찰 마당 곳곳에 가마솥이 걸리고 온갖 물건들을 쌓아놓은 부스가 설치됐다. 그중에 필요했던 물건이 있어 “얼마입니까?”하고 물었더니 “수행자들은 모두 공짜이니 아무거나 가져가라”고 했다. 일주일 동안 전국에서 모여든 수많은 스님과 신도들로 붐비는 축제이니 어느 땐가 북 치고 장구 치고 춤추는 사람들도 오겠거니 했는데 마지막 날까지도 그런 것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새벽, 오전, 오후, 저녁 시간마다 곳곳의 공간에서 법문이 있어 그야말로 법의 잔치였다.

그런데 법문하는 곳에서 계속 노랫소리가 들려와 의아했다. 그러던 어느 날 너무도 청랑한 음성에 선율마저 고운지라 나도 모르게 소리가 나는 그곳으로 가게 됐다. 가서 보니 강당에 사람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고, 법문하는 스님 뒤 불단 앞에는 제자들이 정좌하고 있어 법문의 격식과 위의가 충만했다. 설법을 마치고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은 아이돌 공연장을 방불케 했고, 전국에서 온 버스들이 일제히 시동을 거느라 온 마당이 떠나갈 듯했다.

그리고 다음 날 공양시간이 됐는데 어제 법문하시던 스님이 계시기에 “스님, 어제 법문 중에 부른 그 노래 제목이 무엇입니까?”하고 물었다. 그러자 스님은 “나는 노래 한 적이 없다”고 했다. 재차 “어제 계속 노래하시던데요” 했더니 “아~, 그것은 경전이지 노래가 아닙니다”하고 답했다. 알고 보니 미얀마 스님들은 경전을 외워서 지니므로 법문 내용의 근거가 되는 경전을 암송했던 것이 노래처럼 들렸던 것이다. 며칠 후 어떤 스님이 경전을 외고 있는데 법사스님의 경구와 같은 선율이었다. 예전 같으면 무슨 노래냐고 묻겠지만 이제는 “그것은 어느 경구(經口)입니까?” 물었더니 ‘법구경’의 몇 번째 가타라고 일러주셨다.

모든 음악이 언어에서 출발하듯 불교음악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말씀에서 시작된다. 부처님 입멸 후 제자들의 합송으로 경전이 성립됐고, 대중이 다 함께 말씀을 외우는 과정에 율조가 생겨났으니 그것이 부처님 열반 한 달 후 이루어진 제1차 결집이었다. 그리고 100년 후 제2차 결집, 236년 후 아쇼카왕의 후원으로 제3차 결집을 마친 후 아홉 방향으로 네 명씩 담마 사절단을 파견해 법이 전파됐으므로 남방불교에서는 제3차 결집까지의 내용만을 경전으로 인정한다.

아쇼카왕의 아들 마힌다는 스리랑카로 법을 전했다. 세월이 흘러 급진적 승단에 의한 이견이 대두되자 온전한 불법 보존에 위기감을 느꼈다. 그리해 제4차 결집이 열렸다. 부처님의 말씀은 문자가 없었으므로 싱할리 문자로 음사해 최초의 빠알리경전이 성립됐다. 그러면 “부처님은 마가다어를 하셨는데 빠알리가 마가다어라고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어 스님들에게 물어보았다. 그러자 “1차 결집 때부터 부처님 말씀을 그대로 합송해 전승되다가 어느 날 개인이 아닌 대중이 다함께 다른 언어로 합송한다는 것은 전승이 단절되는 것보다 더 이상한 일”이라고 했다.

1857년 서구 열강의 침입으로 전법(傳法)의 위기를 느낀 마얀마 스님들이 옛 도성 만달레이에서 제5차 결집을 했다. 당시는 제4차 결집이 있은 지 천년이 넘는 세월이 흘렸으므로 그 원형과 정통성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이에 대해 만달레이 강원장 라자담마비밤사 스님에게 여쭈었더니 “승단의 전통이 원활하게 이어지고 있을 때는 결집을 하지 않습니다. 19세기 들어 서구의 침략으로 올바른 법의 전승에 대한 위기감을 느껴 결집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때 제3차 결집에서 ‘새로 넣지 말고, 빼지 말고, 있는 그대로’라는 원칙하에 진행됐습니다. 결집을 주재한 민돈왕은 2400명의 승려들에게 경전을 암송하도록 했는데 여섯 달이 걸려 모두 읽었습니다. 경전을 합송하면 어떤 개인에 의해 잘못 기억하거나 빼 먹을 염려가 없으므로 인류가 기록하는 방법 중에 가장 정확한 방법이지요.”
 

만달레이 꾸도더 파고다, 탑 안에 경전을 새긴 비석이 모셔져 있다.
만들레이 강원 정문.

이렇게 결집된 경전의 내용을 원래는 금판(金版)으로 조성하려 했으나 도난의 위험 때문에 대리석에 새겨 탑 안에 모셨으니 그것이 만달레이에 있는 꾸도더 파고다이다. 꾸도더에는 뜨리삐따까(Tripitaka) 729개가 각각 탑 속에 모셔져 있다. 이렇게 조성된 경전을 만약 한 사람이 쉬지 않고 읽으면 500여일이 걸린다. 필자가 조사한 2011년 당시 미얀마에는 모든 경전(경·율·론)을 다 암송할 수 있는 승려가 12명에 달했다. 대리석에 새겨진 경구(經口)들이 비림(碑林)을 이루고 있는 이곳은 미얀마판 팔만대장경으로 세계인들은 ‘The world’s Biggest Book’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했다.
 

양곤 강원 캠퍼스.
양곤 강원 스님들의 저녁 예불.

그리고 다시 100년이 흐른 서기 1957년 양곤에서 제6차 결집이 이루어졌다. 이는 1948년 영국의 식민지배로부터 독립한 후 근대 연방국가의 면모를 갖춘 수도 양곤의 입지를 굳건히 하고, 식민지배 하에서 이루어진 제5차 결집을 보다 확고하게 다지면서 미얀마 승단의 근본불교 전승에 대한 위상을 세계에 알리고자 함이었다. 이에 대한 과정을 좀 더 상세히 알기 위해 양곤 강원으로 가서 테라사바(Therāsabha) 강사스님을 만나 인터뷰를 했다.

“비구들이 삥 둘러 쪼그리고 앉은 채 경전을 외웠습니다. 한 비구가 막히면 여기저기서 이구동성으로 이어서 외웠지요. 결집 초기에는 먹고 자는 것 외에는 종일 경전을 외웠습니다. 어쩌다가 조는 사람이 있으면 서로 꼬집어가면서 외웁니다. 윗대 선조들은 더했습니다. 정말 목숨을 바쳐 가며 부처님의 바른 법을 지키려고 애를 썼지요”

이 말에 옆에서 듣고 있던 양곤 삼야디따 사원의 주지스님이 덧붙였다.

“요즈음 사람들은 문자로 기록하는 경전이 정확하리라 생각하지만 그것은 착각입니다. 문자는 한 개인에 의해 기록되면서 오자(誤字)가 들어갈 수도 있고, 빠지는 글자도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경전을 합송하는 것은 틀릴 여지가 없습니다. 여럿이 다 같이 소리를 맞추어 외우므로 누구라도 틀리면 합송이 되지 않고, 잘못된 것이 그사이에 끼어들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성립된 빠알리 경전은 부처님 말씀의 어조(語調)에 따라 9가지 율조가 있다. 이야기식의 서술형으로 된 ‘숫다’, 법구경과 같이 시(詩) 형식으로 된 ‘가타’, 숫다와 가타체가 혼합되어 있는 ‘계야’, 문답식으로 된 ‘위야가라나’, 감탄조의 ‘우다나’, “이렇게 말했다”라는 조로 시작하는 ‘이띠 보따까’, 부처님의 전생이야기를 풀어가는 ‘자타카’, “대단하다” “신기하다”와 같은 감탄사가 있는 ‘아부파다마’, 질문에 답하는 식의 ‘위다나’ 등이다.

미얀마 승가에서 빠알리어는 마치 한국에서 한자와 같이 통용되고 있다. 그러나 스리랑카와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의 발음은 거의 동일한 데 비해 미얀마의 빠알리어 발음이 약간 차이 나는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 로마자 ‘V’에 해당하는 발음이 4개 국가에서는 ‘바’로 발음하는 데 비해 미얀마에서는 ‘와’로 발음하고, ‘ca’의 ‘짜’를 ‘싸’로 발음한다. 인도와 인접한 남방지역의 언어가 빠알리어와 거의 유사하므로 경전 암송이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어려운 것이 아니어서 일반인들의 경전 암송도 많이 행해진다. 필자도 잠시 경전반을 다녀 보았는데 일주일에 한 소절씩 외우는 방식이었다. 한 소절 한 소절 외우다가 어느 날 대중이 다함께 똑같은 소리로 하나의 경전이 완성되는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미얀마 사람들은 ‘초전법륜경’ ‘보호경’ ‘법구경’을 특히 좋아해 많은 사람들이 암송하고 있다. 미얀마의 법당이나 개인의 집집마다 ‘초전법륜경’을 그린 그림이 빠지지 않고 걸려있다. 한 벽면을 가득 채운 그림은 물론 수예, 공예, 조형 등에도 초전설법을 상징하는 다양한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중 어떤 집은 조각품으로 재현해 조명을 밝혔는데, 아름답고도 성스러운 분위기가 환희심을 불러일으켰다. ‘경을 듣고자 하는 천인들을 초대하기 위한 경’이라는 뜻의 ‘보호경’을 외면 천인들이 모여와 부정적인 모든 것들이 저절로 사라지므로 미얀마 사람들은 수시로 이 경전을 왼다.

경전 암송이 일상화되어 있음으로 스님들이 법문할 때는 신도들과 노래를 주고받는 경우도 더러 있다. 법상의 스님이 법문 중에 경전의 일부에 율조를 넣어서 읊조리면 신도들이 복창하거나 앞의 아홉 가지 어조 중 특정 구절을 후렴처럼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법문할 때 마치 한국의 판소리 마당에서 추임새를 넣듯이 스님의 법문에 장단을 맞추니 법문하는 곳은 마치 아이돌 공연장같이 사람들이 모여들어 법사스님과 함께 법열에 빠져든다. 시간을 거슬러 부처님 재새시 그곳으로 가 원작자인 부처님의 음성으로 이 노래(설법)를 듣는다면 어떠할까? 어떤 이는 그 음성을 듣자마자 하던 일을 다 내던져버리고 부처님을 따라 출가했다 하니 인류 역사상 그보다 더 아름다운 시인이 어디 있으며 그보다 더 매력적인 톱스타 싱어가 어디 있을까!

윤소희 음악인류학 박사·위덕대 연구교수 ysh3586@hanmail.net

 

[1555호 / 2020년 9월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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