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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미얀마의 조석예불과 명상음악

기자명 윤소희

들리지 않는 울림 속 스며있는 우주의 이치와 청정한 에너지

“출가자 노래·춤 계율에 저촉된다” 인식 팽배하지만
예경문·자비송 선율은 저절로 표현되는 무위의 음악
다양한 버전 음반 만들어 명상음악으로 세계적 각광

출가하는 날 출가하는 아이들은 코끼리 등에 타고, 부모들은 공양물을 들고 따르며, 마을 사람들은 축하의 춤을 추고 있다.

오스트리아의 음악 인류학자 호른보스텔은 브라질 생(笙) 조율법이 오세아니아 여러 지역에서 쓰이는 생과 같은 조율법으로 되어 있음을 발견해 선사시대에 두 지역 간 문화적 접촉이 있었음을 유추해 냈다. 교통수단이 없었던 원시시대라 할지라도 한 지역의 문화가 오롯이 자신들만의 색깔을 지닌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인도에서 발생해 여러 문화권을 거치며 한국에 이른 불교음악은 더더욱 그렇다. 불교음악의 원류를 찾아 초기불교 전통을 지켜가고 있는 태국·캄보디아·미얀마를 다녀보니 “남방에는 불교의식이 없으므로 의식음악이 없으며 출가자가 노래하고 춤추는 것은 계율을 벗어나는 행위”라고 했다.

의례를 하고, 음악을 하는 것이 부처님 가르침에 위배되는 것이라면 연구할 가치와 의미도 없는 것이기에 해오던 일들을 다 접고 수행처로 갔다. 수행기간에는 매일 8계를 염송하는데 “음악은 하지도 말고, 남에게 시키지도 말고, 음악을 듣고 좋다는 마음을 내지도 않는다”는 것이 수행의 조건이었다. 근 한 달이 넘어설 즈음에 몸살을 앓게 되어 아침 예불을 못가고 있는데, 수행하던 그곳에서 마치 그레고리안찬트와 같은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가만히 들어보니 매일 아침저녁으로 하던 그 기도소리였다. 기도할 때는 몰랐던 그것이 이렇게 아름다운 노래였다니.

미얀마는 서북부의 넓은 지역이 인도와 국경을 접하고 있어 석가모니 부처님 생존 당시부터 교류가 잦았다. 그리하여 옛 도성 만들레이에 부처님과 아난다 스님이 다녀갔다고 하며, 최초 통일왕조가 있었던 버강(Bagan)에도 아난다 스님의 유적이 있다. 이 유적지의 사실성을 떠나서 이러한 가설(?)이 주는 메시지가 있다. 10세기 말에 접어들면서 이슬람의 침입을 피해 미얀마로 이주하는 북인도 사람들이 많았던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인도 불교와 물리적으로 높은 친연성을 지니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부처님 입멸 후 인도 불교가 힌두에 용해되어 갔던 것과 달리 미얀마에서의 불교는 점점 더 그 견고성이 높아져왔다. 아이들이 출가하는 날이 온 마을의 잔칫날이었던 모습을 보면서, “미얀마 사람들에게서 불교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근자에는 미얀마도 개방 정책에 의한 변화가 급속하므로 뭐라 말할 수 없다. 
 

양곤 빤디따라마선원 우빤디따 스님의 주재로 열린 법회.
빤디따라마의 숲속 수행처.

연방국가인 미얀마의 인구 분포를 보면 중남부 저지대와 중앙 평원지역에 거주하는 버마(Burman)족이 전체 인구의 70%, 샨(Shan)족 9%, 꺼잉(Kayin)족, 라카인(Rakhine)족, 몬(Mon)족이 2~4%, 이 외에 꺼야(Kayah), 까친(Kachin), 친(Chin) 등 135개 소수 종족이 있다. 다양한 종족에 의한 연방국가인 만큼 미얀마의 전통음악이나 언어와 율조도 종족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빠알리어는 공통된 불교 언어로 소통되고 있다. 공용어인 ‘미얀마어’는 문어체와 구어체의 차이가 있어 국가명을 쓸 때는 ‘미얀마’라고 쓰지만 이야기할 때는 ‘버마(구어체)’라고 한다. 미얀마어는 주어+목적어+술어로 이뤄져 한국과 어순이 거의 같다. 하지만 관용화된 예외 규정이 많으며, 전체 인구의 90% 이상이 불교신자인 만큼 빠알리어를 사용한 일상적 관용어가 많다. 

양곤과 만들레이의 승가대학, 양곤의 쉐더공사원, 보떠타웅과 같은 대규모 사원을 비롯해 양곤 팅간준 묘네에 있는 비도우, 동쪽 끝 마을 다곤묘네의 삼야디따와 같이 작은 사원 등 다양한 사원과 수행처를 다녀보니, 예불절차와 내용이 다양한 가운데 공통적으로 외는 것은 “나모 따사…”로 시작하는 예경문, 삼귀의, 회향 그리고 자비송이었다. 스님들만 있는 승원이나 강원의 예불에는 보호경의 11가지 바리따(진언) 중 두 세 개, 간단한 메따 그리고 삼귀의를 바치며 촘촘히 재빠르게 외므로 율조랄 것도 없는 정도였다. 

이에 비해 수행처에서는 예불과 기도를 좀 더 길게 하므로 여기에 수반되는 예불 율조가 유려한 경우가 많았다. 빤디따라마 숲속 수행처와 양곤의 마하시선원에서 수행해 보니 자유로운 마하시선원 보다 엄격한 수행풍토에 참례자도 일정한 빤디따라마 수행처의 예불이 좀 더 정제된 율조여서 이를 소개해 볼까한다. 빤디따라마의 새벽예불에는 오까사를 세 번 염송한 후 네 가지 보시물에 대한 숙고의 게송·발원·삼보에 대한 예경을, 저녁 예불에는 삼보에 대한 예경과 메따(자비송)를 바쳤다. 이들 중 부처님에 대한 예경과 삼귀의, 회향은 빠알리어였고 보시물에 대한 숙고와 감사송·축원과 발원·공양게송은 미얀마어였다. 스님들의 예불에는 빠알리어의 비중이 크고 일반인들의 예불에는 미얀마어 기도문이 좀 더 추가되었다. 이때 빠알리어는 조금 무겁고 점잖은 반면 미얀마어는 선율 움직임의 폭이 좀 더 유려하고 리듬감도 있으나 두 가지 모두 낭송조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양곤 마하시선원의 새벽 예불. 남녀 분리해서 수행·예불하기 때문에 여성들만 있다. 분홍색 법복을 입은 사람은 비구니스님.

한국의 범패와 예불문을 악보로 채보해 보면 전통 가곡, 민요 등의 성격이 있는지라 미얀마 예불 율조에도 그러한 점이 없는지 알아보기 위해 양곤대학 음악과 라잉 윈 마웅 교수를 만났다. “미얀마는 스님과 사원마다 내용도 율조도 제각각이라 어디가 어떻다 할 수 없고, 음악적인 대상으로 여기는 풍토가 아예 없다”는 것이 마웅 교수의 답이었다. 한편 미얀마의 예불 율조가 그레고리안찬트를 닮았기에 ‘영국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인가?’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대만에서 새벽예불 소리를 들었을 때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으므로 그 또한 아니다. 그레고리안찬트, 미얀마와 중국의 조석예불 율조가 서로 닮은 것은 언어 율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담담한 선율에 기인함이 더 합리적인 추론이다.

그레고리안찬트의 음악적 기반이 되었던 고대 그리스에서는 문학과 음악이 동일어였다. 이는 언어 자체가 선율과 리듬적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의 음악관과 그리스 각 지역의 노래에서 생겨난 희랍 선법은 로마교회 선법으로 정립되었다. 로마교회 초기에는 그리스어를 할 줄 알아야 품위 있는 귀족이 될 수 있었고, 예배 용어도 유대의 히브리와 그리스어 등이 혼용되다 수 세기 후에 라틴어로 대체되었다. 그리스 문화에서 로마식으로 전이되는 사이에 각 지역에서 불리던 성가들이 교황 그레고리오 1세(재위 590~604) 시기에 총정리되면서 ‘고레고리안찬트’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교회음악의 지향점은 보에티우스(470~524)의 ‘음악의 원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보이티우스가 첫 번째로 꼽은 무지카 문다나는 천체(Universe)의 음악이었다. 이는 우주의 운동, 4계절의 변화 등 규칙적인 자연법칙과 연관된 것으로 인간이 직접 들을 수 없는 음악이다. 두 번째로 꼽은 무지카 후마나는 인간의 정신과 혼과 육체의 조화에서 발현되는 것으로, 그 역시 청각을 통해서는 들을 수 없는 것이었다. 마지막 무지카 인스트루멘탈리스는 흔히 말하는 인간의 귀에 들리는 음악으로써 노래하거나 악기로 연주되는 보통의 음악이었다.   

보에티우스는 음악이 사람의 인성에 미치는 영향을 강조하였는데, 여기에는 플라톤의 음악 교육론, 암브로시우스(340~397), 아우구수티누스(354~430)의 교회 음악론이 수렴되어 있다. 초기 교부 신학자들은 “음악이 영혼으로 하여금 신성한 것을 사색하도록 하는 힘을 지녔음”을 간파하여 음악을 전공하는 성직자를 적극적으로 육성했다. 그러나 음악의 효용성이 아무리 크더라도 연주나 감상에 따른 쾌감을 자극하는 음악은 종교적 효용성을 저해하는 것으로 규정하여 기교적인 선율, 유희의 관습이 배어있는 것, 이교도적인 광경을 연상시키는 음악들은 교회음악에서 배제하였다. 
 

어린 승려의 귀여운 외출, 버고(Bago)의 쉐모도사원.

빠알리 기도문 중에 음악 콘텐츠로 많이 활용되는 것은 예경문과 ‘메따(자비송)’이다.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삼붓다사” 가사로 된 예경문은 경전 낭송에도 빠지지 않고 쓰이므로 이에 대한 다양한 음반이 출시되어 있다. 이들 음반을 들어보면, “나모 따사~” 예경문만 계속 반복하여 한 시간 동안 지속되는 가운데 미얀마의 전통악기가 수반되기도 한다. 이들 악기를 보면 동남아 특유의 등거리 음계나 5음계, 7음계로 조율된 대나무 실로폰, 놋쇠로 만든 실로폰에 화음의 베이스를 더함으로써 현대적이면서도 미얀마 특유의 신비감을 더하여 종일 듣고 있어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어떤 것은 악기와 함께 느리게 노래하는가 하면 스님들의 법문 음반에는 촘촘하게 낭송하며 미얀마 사람들의 생활 속에 공기와 같이 스며있다.

‘메따’는 천천히 모든 내용을 다 낭송하면 30분이 소요될 정도로 길다. 그러나 “아함 아왜~로 호~미(내가 적과 위험에서 벗어나기를)” “삽베~ 삳따~(지각과 마음 지닌 모든 존재들)” “아비야~ 빳자~혼뚜(마음의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아니~가~혼뚜(몸의 고통에서 벗어나기를)”와 같은 가사들이 있는 메따는 “호~미, 삽베~, 혼뚜”와 같이 반복되는 어휘가 있는데다 빠알리어가 지닌 본연의 율조가 있어 길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이들은 의도적으로 특정 선율을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 중에 저절로 스며 나오는 율조이므로 무위(無爲)의 음악이라 할 수 있다. 

미얀마의 뮤지션들은 기존의 예경문이나 메따 선율을 활용한 다양한 버전의 음반을 만들어 온 세계 사람들의 명상음악으로 각광받는다. 이러한 음원을 분석해보면 두 세음 혹은 네 음 정도가 고작이지만 더없이 아름다운 음악 콘텐츠다. 미얀마 불교음악이 세계인의 심금을 울리는 것은 보에티우스가 말한 무지카 문다나와 무지카 후마나, 즉 들리지 않는 울림 속에 우주의 이치와 행위자의 청정한 에너지가 스며있기 때문이다. K팝이 세계적인 한류로 확산되는데 비해 불교음악은 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명상음악으로 각광받는 미얀마·대만·티베트의 음반은 대개가 일상 신행 율조를 활용한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한국 불교음악의 약세는 일상 신행 율조의 빈곤이 그 원인으로 보인다. 

윤소희 음악인류학 박사·위덕대 연구교수 ysh3586@hanmail.net

 

[1557호 / 2020년 10월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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