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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피크(Peak)-상

기자명 유응오

북한산 산악구조대 활약 다룬 명작

산악구조라는 낯선 소재 차용
이야기 끌어가는 힘 뛰어나고
각 등장인물 심리묘사도 탁월

임강혁이 그림을 그리고 홍성수가 글을 쓴 ‘피크(peak)’는 군대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서사도, 그림체도 역동적이다. 그런데도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 독자들로부터도 갈채를 받았다. 군대이야기이지만 군을 제대한 남자들도 거의 모르는 ‘북한산 산악경찰구조대’라는 낯선 군대이야기이기 때문이다.

1983년 4월3일, 북한산 국립공원 내 인수봉을 등반하던 대학 산악부원 11명이 갑자기 닥친 기상 악화로 조난당하고 결국 7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서울경찰청에선 북한산과 도봉산에 산악 구조대를 창설한다. 작품 속에서 산악구조대는 총 6명으로 1명의 구조대장과 5명의 구조대원으로 구성된다. 구조대원은 전투경찰 훈련병 중 체력 검사를 통해 차출되고 혹독한 훈련을 거쳐야 한다. 구조대장은 현직 경찰관으로 구조대원들을 지휘하고 감독한다. 작품에서 구조대원들의 복무지역은 북한산이며, 본연의 업무는 산악 사고를 예방하고 인명을 구조하는 것이다. 북한산 산악경찰구조대가 창설된 이래 20년간 처리한 산악사고가 무려 3000여건에 이른다고 한다.

독자들 입장에서는 산악구조라는 낯선 소재를 차용하다 보니 궁금증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게다가 예기치 않은 사고들이 계속해서 발생하고 그 사고들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등장인물들의 심리적 갈등과 화해가 잘 묘사돼 있다 보니 몰입감이 높을 수밖에 없다.

작품 속 주인공은 북한산산악구조대 10기인 류연성, 임배호, 고학문, 남기중, 박광도 등 5명이다. 이들 가운데 입대 전 무용을 전공했던 류연성과 폭력조직에 몸담았던 임배호가 서사의 중심축을 이루는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5명의 구조대원들은 제대를 한 달 앞둔 선임으로부터 자신들의 임무를 익혀나가는 동시에 갑작스레 발생한 사고에 투입돼 인명을 구조하다 보니 이야기가 빠르게 전개돼 절로 가독성이 높아진다.

이 작품이 남녀노소 모든 계층에 고루 사랑을 받은 가장 큰 이유는 삶과 자연에 대한 사유가 돋보인다는 것이다. 주인공들은 산악구조에 미숙할 경우 ‘다치는 건 자신이고, 부서지는 건 자신의 인생’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과정에서 진정한 자아 찾기를 모색하게 된다. 여기서 자아 찾기란 심연에 도사리고 있는 자기 상흔과의 화해는 물론이고, 자신과 타인의 관계, 나아가 인간과 자연의 상생까지도 포함하는 것이다.

산악구조라는 소재를 차용하다보니 서사의 입체성은 주인공들이 등반하다가 사고가 난 사람들을 구조하거나 구조를 실패하는 과정에서 확보된다. 작품 속에서 산은 의도적으로 사람을 불러들여서 사고라는 수렁을 빠뜨리는 신묘한 힘이 있는 존재로 그려진다. 어찌 보면 이 작품의 진짜 주인공은 산인지도 모르겠다.

자연의 순환성과 향상성을 불교용어로 풀이하면 불생불멸(不生不滅)과 부증불감(不增不減)이 된다. 불생불멸하고 부증불감하는 까닭에 자연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자연의 궁극적인 목적은 구성원들의 생명을 보존하는 것이다. 그런데 자연, 즉, 어머니 대지는 제 품에서 난 것들을 키워야 하는 운명과 제 품을 다시 거둬야 하는 운명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자연이 위대한 이유는 언제 닥칠지 모르는 불행에 대한 두려움 앞에서도 꿋꿋하게 현실을 헤쳐 나가는 강인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작품 속에서 산이 인간의 이성적 잣대로는 평가할 수 없는 숭고한 존재로 묘사되는 것도 같은 이유이리라.

유응오 소설가 arche442@hanmail.net

 

[1557호 / 2020년 10월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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