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달라이라마의 발원
41. 달라이라마의 발원
  • 고명석
  • 승인 2020.10.27 10:08
  • 호수 15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매일 유익한 계행과 남 위한 자비행 실천”

공성의 지혜 깨닫기 위해 자애의 사랑과 자비의 연민 필수
비폭력 독립운동 선언 후 만행 저지른 중국인 무조건 용서
용서와 평화의 정신으로 세계 움직이고 보리심 일깨운 스승
용서와 친절, 그리고 평화의 메시지를 전해온 달라이라마는 지계와 자비행 실천이 이뤄지지 않으면 깨달음은 아무 의미 없이 공허할 뿐이라며 보리심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있다.
용서와 친절, 그리고 평화의 메시지를 전해온 달라이라마는 지계와 자비행 실천이 이뤄지지 않으면 깨달음은 아무 의미 없이 공허할 뿐이라며 보리심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있다.

“공성을 수행한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대단한 일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매일의 일상에서 자신에게 유익한 계행이나 남을 위한 자비행을 실천하며 서로에게 유익한 관계를 맺는 것이 중요합니다. 공성에 대한 자신의 이해가 이러한 목표에 맞게 긍정적으로 작용하지 않는다면 결국 그러한 깨달음은 아무 의미 없이 공허할 뿐입니다.”(「달라이라마의 지혜 명상」)

제14대 달라이라마(Dalai Lama) 텐진 칸쵸(1935~현재)는 공성의 지혜를 깨닫기 위해서는 자애의 사랑과 자비의 연민이 필수적이며, 일체중생을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겠다는 보리심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적들에게도 증오가 아닌 사랑의 마음을 보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소극적인 평화로서의 운둔이나 도피가 아니라 적극적인 평화로서 자비, 사랑, 용서, 친절, 비폭력으로 폭력에 저항한다. 전쟁을 억제하고 차별에 반대하며 환경운동뿐만 아니라 종교간의 대화 운동에 나선다. 그리고 불교와 과학의 만남도 적극적으로 주선한다. 그러면서도 항상 유머가 넘치며 어깨를 들썩이며 웃을 정도로 소탈하고 친절하다. 그는 말한다. “나의 종교는 단순합니다. 나의 종교는 친절입니다.” 

그래선가. 달라이라마는 권위 있는 영국 잡지 ‘왓킨스(Watkins)’에서 발표하는 세계의 영적 지도자 100명 중 교황을 제치고 2012년부터 2016년까지 1위를 차지했으며 잠시 그 자리를 교황에게 내주다가 2020년 다시 1위로 올라섰다. 그의 강연을 듣기 위해 미국 센트럴파크에 10만 명이 운집할 정도다.

텐진 칸쵸는 1935년 티베트 북동부 암도 지방의 탁최라는 시골 마을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티베트 환생의 전통에 의거 두 살 때 제14대 달라이라마로 인정을 받았으며 1940년에 포탈라 궁에서 공식 즉위한다. ‘달라이’는 몽골어로 ‘지혜의 바다’를 의미하며, ‘라마’는 스승을 뜻한다.

1950년 중국이 티베트인들을 해방시킨다는 명목으로 티베트 내정에 개입한다. 1951년에 중국은 군사를 동원하여 티베트로 침입해 들어온다. 티베트인들은 무장 게릴라조직으로 중국에 맞서며 저항한다. 1959년 라싸에서 대대적인 민중봉기가 발생하자 중국군은 티베트인들을 십자가형에 처하는 등 눈 뜨고 보지 못할 정도로 참혹하게 유린한다. 이때의 봉기로 12만명의 티베트인들이 학살당한다. 사태의 심각성을 목도하고 달라이라마는 10만여명의 티베트인들과 함께 눈물을 삼키며 눈 쌓인 히말라야를 넘어 인도로 망명, 다람살라에 정착한다.

그는 폭력이 폭력을 낳는다며, 티베트인들에게 비폭력 독립운동을 선언하고 중국에 저항하는 무장 세력을 해체한다. 그리고 티베트인들에게 참혹한 만행을 저지른 중국인들을 무조건 용서하자고 말한다. 그것이 진정한 양국간의 화해와 평화이기 때문이다. 

“자유를 찾기 위한 투쟁의 경우에도, 분노와 증오의 감정 대신 진정으로 용서하는 마음을 갖고 대한다면 우리는 그 투쟁을 더욱 효과적으로 펼쳐나갈 수 있습니다. 평화로운 마음으로, 자비로운 마음으로 투쟁하는 것이지요.”(‘용서’, 60)  

증오가 일면 내면의 평화가 깨진다. 가장 큰 수행은 용서다. 용서는 과거를 잊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고통을 기억하는 것이다. 그 고통은 양쪽의 편협한 마음에서 일어났음을 자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용서와 평화의 정신이 세계를 움직인다. 달라이라마는 1989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그는 평화상으로 받은 상금을 아프리카의 가난한 사람들과 나병환자 치료에 쓰라며 테레사 수녀에게 보냈고, 역시 가난한 티베트인에게는 금액의 약간만 보탰다. 보편적 자비 정신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로폰나라는 한 스님은 용서의 힘으로 20년 동안의 수감생활을 견디고 마음에 상처를 입지 않았다고 한다. 그에게서 단 하나의 두려움은 자신이 중국인을 미워하거나 자비심을 잃게 되는 것. 따라서 용서는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조건 없이 용서해야 한다는, 협상이나 거래 없이, 가해자가 뉘우치지 않더라도 용서해야 한다는 자크 데리다의 말이 끝나는 지점을 떠올리게 한다. 그것이 오늘날의 종교성 아닌가.

달라이라마와 티베트인들이 용서와 자비의 정신을 지니게 된 것은 불교의 영향이다. 그 중에서 ‘입보리행론’의 영향이 크다. 달라이라마가 좋아하는 이 논서에서는 공성과 보리심을 강조한다. 보리심은 ‘원(願) 보리심’과 ‘행(行) 보리심’으로 나뉜다. 보리심을 발함과 보리심의 실천! 달라이라마는 보리심은 수행을 하면 할수록 그 깊이가 깊어지기 때문에 환멸을 느끼거나 낙담할 일이 없다고 한다. 그는 매일 이타주의로 살아가는 보리심을 발원한다.

“일체 중생의 해방을 위해/ 붓다의 경지를 이룰 때까지/ 불법승 삼보전에 귀의하며/ 불퇴전의 길을 가게 하소서.

지혜와 자비로 가득 넘치는/ 오늘 부처님 전에 머무르며/ 일체 중생들의 이익을 위해/ 이 보리심을 발하게 하소서.

허공의 세계가 존재하는 한/ 중생의 세계가 존재하는 한/ 저도 그곳에 함께 머물면서 중생의 고통을 멸하게 하소서.”(‘달라이라마의 지혜 명상’) 

달라이라마는 계세 랑리 탕파가 쓴 8편의 노래를 기도문으로 소개한다. 다음은 그 일부분.

“큰 기대를 품고 내가 은혜를 베푼 사람이 나를 심하게 상처 입힐지라도 나는 그를 거룩한 영혼의 친구로 여기게 하소서.(6)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나의 어머니인 모든 중생에게 행복과 이익을 함께 바칠 수 있게 하소서. 그들에게 고통을 주고 상처를 주는 모든 것을 남몰래 내가 대신 받을 수 있게 하소서.(7)”(‘마음을 바꾸면 인생이 변한다’)”

공은 사물의 경계선을 부드럽게 만들고 자비는 사물에 새로운 형태를 부여한다. 분별적 지성은 공의 통찰과 어우러지고 종교적 신앙은 보리심을 통해 자라난다. 거기에 맹목적 신앙이란 자리 잡지 못한다. 공의 연기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모든 존재는 한때 우리의 어머니다. 적은 우리를 자극해 용서와 자비심 같은 좋은 특성을 키울 수 있는 스승이다. 이렇게 경계의 흔적을 공유하면서 공과 자비가 결합될 때 진정한 행복이 도래한다. 달라이라마, 그는 오늘날의 영성이, 그 종교성이 적대를 포용하는 자기 부정적 순례의 길임을 몸으로 보여준다.

고명석 불교사회연구소 연구원 kmss60@naver.com

 

[1558호 / 2020년 10월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