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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33·34대 총무원장 자승 스님-④ (끝)

의현 스님 재심파동·한상균 사태 딛고 8년 임기 회향

호계원, 의현 스님 징계 감형 논란 커지자 대중공사로 위기 타개
조계사 피신 한상균 위원장 체포영장 집행 앞두고 중재안 제시
퇴임 이후 무문관 수행에 이어 상월선원·자비순례 결사 이끌어

자승 스님은 2019년 11월~2020년 2월, 서릿발 같은 청규를 바탕으로 9명 스님들과 함께 위례 상월선원 동안거 결사를 진행했다.
자승 스님은 2019년 11월~2020년 2월, 서릿발 같은 청규를 바탕으로 9명 스님들과 함께 위례 상월선원 동안거 결사를 진행했다.

2015년 6월18일 전 총무원장 의현 스님에 대한 재심호계원의 징계 감형 결정으로 조계종은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재심호계원은 이날 1994년 멸빈 징계를 받은 의현 스님에 대해 공권정지 3년으로 감형했다. 의현 스님이 1994년 6월8일 초심호계원으로부터 멸빈 징계를 받았지만, 결정통지가 당사자에게 전달되지 않아 징계가 확정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이 때문에 이날 21년 만에 의현 스님에 대한 재심심판을 진행하고, “1994년 총무원장으로서 종단을 혼란케 한 점은 결코 작은 죄가 아니지만, 지난날의 과오를 참회하고, 20년 이상 환속하지 않고 스님으로 살아온 점 등을 참작”해 ‘공권정지 3년’으로 감형했다. 

조계종 총무원 안팎에서 거센 반발이 일었다. 출재가 단체들은 잇따라 기자회견을 열어 “의현 스님에 대한 재심결정은 편법 사면으로, 종헌종법 질서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재심호계위원들의 전원사퇴와 재심결정 번복을 요구했다. 의현 스님 재심논란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총무원 종무원조합도 성명을 내고 비판대열에 동참했다. 한 달이 넘도록 서울 조계사 일주문 앞에서는 불교계 단체들의 항의집회가 이어졌다. 논란이 장기화되자, 조계종은 ‘의현 스님 재심문제’를 사부대중 100인 대중공사에서 다루기로 했다. 자승 스님도 7월23일 기자회견을 열어 “의현 스님 재심판결 논란이 종속될 때까지 후속 행정절차를 진행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7월29일 예정된 사부대중 100인 대중공사에서 그 해결방안을 도출해 달라”며 대중공사로 공을 넘겼다. 

7월29일 서울 불광사에서 열린 대중공사에서는 공방이 이어졌다. 1994년 개혁회의 출범에 앞장섰던 출재가 단체들은 “대중공의 없이 사면논의가 진행돼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폈고, 일부 스님들은 “이번 기회에 멸빈자 사면 등 종단 과거사에 대한 합리적 논의를 진행하자”고 맞섰다. 장시간 논의 끝에 대중공사는 과거사 문제를 다룰 ‘대중공의 기구 구성’ ‘대중공의 기구의 논의 결과에 따라 총무원이 후속 조치를 진행할 것’ ‘재심호계위원들의 자진사퇴 권고’ 등을 결의했다. 총무원이 대중공사에서 결의된 과거사 문제 해결을 위한 대중공의 기구인 ‘사부대중위원회’ 출범을 약속하고, 비판의 중심에 섰던 호계원장 스님이 9월7일 사퇴를 선언하면서 ‘의현 스님 재심파동’ 논란은 점차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러나 동국대 총장 논문표절 의혹과 동국대 이사들의 수십 년 전 범계 의혹, 용주사 주지스님의 범계 의혹까지 폭로되면서 조계종은 심각한 내홍에 직면했다. 이런 가운데 동국대 총장과 이사진에 대한 의혹 제기의 중심에 섰던 삼화도량 회장 영담 스님의 허위학력 문제가 불거지면서 혼란이 가중됐다. 여권인 불교광장 소속 종회의원들은 2015년 9월7일 ‘허위학력 및 종단 비난’에 대한 책임을 물어 영담 스님의 중앙종회의원 제명결의안을 발의했다. 이어 그해 11월 정기 중앙종회에서 제명결의안을 가결했다. 삼화도량의 구심점이 됐던 영담 스님이 중앙종회의원 제명에 이어 호계원에서 징계를 받으면서 종단의 야권은 사실상 와해됐다.

이런 혼란 속에서도 조계종은 대사회적 행보를 이어갔다. 7월15일 ‘불교사회활동진흥법’을 개정해 노동자, 이주민, 다문화가정 등 소외계층을 위한 지원 활동을 강화해 나가기로 했으며, 정부에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했다. 자승 스님은 9월17일 청년 취업난 해결을 위해 설립된 ‘청년희망펀드’에 종교지도자로서는 처음으로 2000만원을 기부했으며, 10월31일 34대 총무원장 취임 2주년을 맞아 서울 홍제동 개미마을에서 연탄나눔 행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34대 집행부가 공약으로 내세운 총본산 조계사성역화불사를 본격 착수하기로 하고 기금 마련을 위해 11월16일 ‘모연의 밤’ 행사도 열었다.

조계종이 총본산성역불사 모연의 밤 행사를 열던 그 시각, 경찰병력이 서울 조계사를 에워 쌓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노동법 개정에 반발해 총파업을 이끌다 경찰수배를 받게 된 한상균 민주노총위원장이 야심한 시각을 틈타 조계사로 피신했다. 이 무렵 조계사는 ‘현대판 소도(蘇塗, 삼한시대 신성지역)’로 불렸다. 1970~80년대 서울 명동성당이 공권력에 쫓긴 시국사범들의 피신처가 됐다면 1990년대 이후부터는 조계사가 그 역할을 대신했다. 1994년 철도노조 집행부를 시작으로 1995년 한국통신 노조간부, 1998년 현대중기산업 노조원, 2002년 발전노조와 전국보건의료노조 조합원,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에 나섰던 광우병국민대책위 간부들이 조계사에 피신했다. 2013년 12월에도 철도민영화 문제로 파업을 주도했던 박태만 철도노조 수석부위원장이 공권력을 피해 조계사로 피신했다. 그랬기에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도 마지막 기댈 곳으로 조계사를 택했다. 한 위원장은 조계사 피신과 동시에 화쟁위에 중재를 요청했고, 조계사와 화쟁위는 “고통 받는 중생을 끌어안는 게 불교의 소명”이라며 그를 보호하겠다고 밝혔다. 조계사 주변은 진보·보수단체들의 집회로 소란이 이어졌고, 정치권도 들썩였다. 정부는 한 위원장 논란을 조속히 진화하겠다며 공권력 투입을 예고했다. 강신명 경찰청장은 12월8일 “24시간 내 한 위원장이 자진출두하지 않으면 공권력을 동원해 영장을 집행하겠다”고 최후 통첩했다. 조계사 주변에 긴장감이 흘렀다. 이튿날 경찰은 예정대로 조계사에 진입했다. 총무원 및 조계사 스님과 종무원들이 맨몸으로 경찰 진입을 막아섰다. 조계사 곳곳에서 비명이 쏟아졌다. 다급했던 그날 오후 5시, 자승 스님이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경찰과 민주노총은 모든 행동을 중단하고 종단의 노력을 지켜봐 달라”고 호소했다. 자승 스님의 호소에 경찰이 체포영장 집행을 보류했고, 한 위원장도 다음날 오전 화쟁위와 조계사에 고마움을 표하고 경찰에 자진 출두했다. 보름 넘게 지속된 한상균 민노총 위원장 논란은 일단락됐다. 자승 스님의 중재는 경찰에게는 법집행 명분을, 한 위원장에게는 노동자의 대표로서 자존심을 세울 수 있는 계기가 됐다. 12월10일 진보·보수언론은 조계종 중재노력을 극찬하며 ‘자승 스님의 절묘한 한수였다’고 보도했다. 

한상균 위원장을 둘러싼 갈등중재로 조계종 위상은 높아졌다. 자승 스님은 이를 기반으로 2016년 종단 운영기조를 ‘불교의 대사회적 역할 강화’로 정하고 △노동문제 해법 모색 △저출산·고령화 극복 및 생명존중 문화 확산 △화쟁사상 확산 △남북불교교류 등을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 사회노동위를 중심으로 노동·인권, 소외계층 지원 문제에 적극 뛰어들어 “사회 약자를 위한 희망의 길벗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종단 내부적으로는 불자들의 정체성 함양과 신행문화 개선을 위해 그해 초부터 법보신문이 주관한 ‘불자답게 삽시다’ 캠페인을 종단차원에서 함께 하기로 했으며, 사찰 예결산을 토대로 분담금이 책정될 수 있도록 20년 만에 분담금제도도 개선했다. 직할교구 중심으로 진행되던 주지 인사고과제를 전국 단위로 확대키로 했으며, 민족문화유산의 보고로 불리던 전통산사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키로 했다. 그해 2월부터는 1970년대 군사정권시절 강제 수용돼 한국전력공사 부지로 편입된 봉은사 토지 환수를 추진했다. 9월5일에는 탄자니아에 ‘보리가람 농업기술학교’를 설립해 불교 불모지 아프리카에 불연을 심었다. 

2017년 임기 마지막 해를 맞은 자승 스님은 종단 체질변화에 착수했다. 자성과쇄신결사추진본부와 불교사회연구소를 통합해 ‘백년대계본부’를 발족, 부처님가르침을 실현할 승가육성, 사찰운영 혁신, 불자상 확립 및 신행혁신 등 종단의 근본적인 변화를 위한 미래전략을 수립토록 했다. 사회 불평등 해소를 위해 차별금지법 제정을 재촉구했으며, 출가자 감소 문제를 해소하고 늦깎이 발심자의 출가 기회를 보장하기 위해 은퇴출가제도를 도입했다. 이를 통해 출가제한 연령인 50세가 넘었더라도 승단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도록 했다. 일부 재가단체의 비판과 의혹제기가 잇따르기는 했지만 자승 스님의 임기 마지막은 순조로운 듯했다. 그러나 그해 4월5일 초심호계원이 ‘종단비난 및 허위사실 유포’ 등의 책임을 물어 명진 스님을 제적징계하면서 또 논란이 일었다. 조계종 안팎에서 총무원을 향한 비판이 이어졌다. 명진 스님과 친분이 있는 목사·신부까지 가세해 조계종을 향해 “유신잔당”이라며 모진 비난을 쏟아냈다. 명진 스님은 조계사 앞에서 ‘단식’을 진행했고, 불교계 단체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저녁마다 서울 보신각 앞에서 ‘불교 적폐청산’을 외쳤다. 전국선원수좌회 일부 스님들은 ‘승려대회’를 운운했다. 총무원은 8월11일 “종헌종법 질서의 근간을 흔드는 일부세력에 대해 단호히 대응하겠다”고 수습에 나섰다. 자승 스님도 9월11일 담화문을 발표하고 “지난 8년간 화두는 공심이었고, 그동안 손대지 못했던 많은 종단적 과제를 실현한 시기였다”며 “35대 총무원장 선출을 끝으로 불교공동체의 한 구성원으로 돌아가겠다”고 밝혀 3선 의혹에 선을 그었다. 그럼에도 비판의 목소리는 잦아들지 않았다. 이런 혼란 속에서 10월12일 35대 총무원장 선거가 진행됐고, 그 결과 덕숭총림 방장 설정 스님이 선거인단 319명 가운데 234표를 얻어 82표를 얻은 수불 스님을 제치고 새 총무원장에 당선됐다. 

10월30일 자승 스님은 다사다난했던 8년의 소임을 모두 마치고 총무원장에서 물러났다. 현대조계종사에서 총무원장 4년 임기를 모두 채운 것은 자승 스님이 유일했다. 이날 스님은 별다른 퇴임사 없이 “8년간 이웃과 사회에 무거운 짐을 실어 날라준 수고로움과 공덕을 기억하겠다”며 종무원들에게 전한 감사편지로 소감을 대신했다. 그리고 자승 스님은 공언한 대로 그해 동안거를 맞아 인제 백담사 무문관에 들었다. 40여년 전 ‘군대물’을 빼고 ‘중물’을 들이겠다며 설악산 봉정암에서 정진했던 것처럼 오랜 기간 ‘행정승’으로 머물러 있던 스스로를 변화시키겠다는 발원에서 비롯됐을 수 있다. 

두 번의 동안거 무문관 정진을 마친 자승 스님은 2019년 2월, 새로운 안거수행을 구상했다. 산속 깊은 도량도 좋지만 이제는 세상 한복판으로 들어가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2019년 11월~2020년 2월, 세간의 큰 관심을 받았던 ‘위례 상월선원 동안거결사’였다. 하루 한 끼 공양에 삭발과 목욕금지, 하루 14시간 이상 정진 등 서릿발 같은 청규를 바탕으로 9명 스님들이 혹한에 맞서 진행한 상월선원 결사는 한국불교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스님은 여기에 머무르지 않았다. ‘국난극복과 불교중흥’을 염원하며 2020년 10월7일 대구 동화사를 출발, 10월27일 서울 봉은사까지 500km가 넘는 긴 구간을 도보로 순례하는 ‘만행결사’를 진행했다. 

자승 스님은 총무원장 재임기간 “한국불교 변화를 위해 재임기간 기존 방향에서 5도 정도만 틀 수 있으면 큰 성공이라고 본다”는 말을 종종했다. 지금 당장은 작게 느껴지더라도 훗날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총무원장에서 물러난 지 3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자승 스님은 여전히 그 길을 향하고 있다. 

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1560호 / 2020년 11월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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