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피크(Peak)-하
20. 피크(Peak)-하
  • 유응오
  • 승인 2020.11.09 17:24
  • 호수 156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절대적 운명도 극복가능 일깨워

산은 숭고하면서 두려움 대상
작가 산악구조 경험 잘 용해
사망한 조난자 심폐소생 장면
불교의 여인과 겨자씨 떠올려

시즌5에서 임배호의 과거사가 드러나면서부터 ‘피크’의 서사는 긴장감이 고조된다. 그는 조직폭력배의 일원으로 선배인 대치를 찌르려는 분식집 사장을 쇠파이프로 쳐 중상을 입혔다. 이 일을 겪고 난 뒤 그는 속죄의 의미로 조직의 돈을 훔쳐서 분식집 사장의 병상에 놔두고 도망치듯 입대한 것이다.

시즌5에서 그는 자신이 몸담았던 조직폭력배들을 산에서 만난다. 표면적으로는 친목 도모를 위한 등산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이권을 위해 편을 가르고 벌이는 이전투구가 시작된 것이다. 조직원끼리 격투를 벌이던 중 벼락이 쳐 임배호는 안전펜스에서 추락하는데, 이 과정에서 분식집 사장의 환영을 보고, “눈떠”라는 환청을 듣는다. 그는 자신이 산악구조대가 된 것은 100명의 생명을 구해서 조직폭력배로서 지은 죄를 갚으라는 운명의 계시임을 깨닫는다. 우연의 연속으로 목숨을 지키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독자들은 산은 의도적으로 사람을 불러들여서 사고라는 수렁에 빠뜨리기도 하지만, 그 수렁에서 빠져나와 자신은 물론이고 타인의 생명까지도 구하게 하는 힘을 주기도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처럼 작품 속 산은 양면적이다.

자연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눠진다. 하나는 절대적으로 선(善)하다는 입장이고, 다른 하나는 약육강식만이 존재한다는 입장이다. 작품 속에서 산은 숭고한 존재인 동시에 공포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렇다보니 작품 속 주인공들은 구조 활동을 펼치면서 산이라는 절대적인 존재를 화두로 삼아 ‘자연은 선한가? 악한가?’ ‘중생은 완전무결한 불성을 얻을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제법 심원한 질문을 갖게 된다. 시즌 3에서 류연성은 밤에 홀로 나와 미국 등반가들이 도전했던 암벽을 탄다. 이 장면은 산이라는 절대적인 운명도 얼마든지 인간의 자유의지를 통해 극복할 수 있음을 깨닫게 한다.

사견이지만 피크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사망한 사람의 시신을 구조하는 류연성과 진태곤 대장의 상반된 태도이다. 류연성은 심장마비로 사망한 조난자를 업고 산 밑으로 내려온다. 하지만 시신을 건네받은 유족들은 류연성에게 원망의 말을 퍼붓는다. 홍상수 작가가 후기에서 밝혔듯 이 에피소드는 작가가 직접 경험한 일이라고 한다.

반면 진태곤 대장은 조난자가 이미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면서 식어가는 시신에 심폐소생술을 한다. 굳이 시취(屍臭)가 나는 입에 숨을 불어넣는 이유가 무엇일까? 유족들이 망자가 죽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치인 것이다. 이 대목에서 죽은 아이를 안고 다니는 여인에게 “한 번도 사람이 죽은 적이 없는 집을 찾아 겨자씨를 얻어 오라”고 일러준 부처님의 일화를 떠올리게 된다. 집집마다 돌아다닌 끝에 여인은 이 세상에 사람이 죽지 않은 집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부처님께 귀의해 출가했다. 

‘피크’가 웰메이드 웹툰으로 평가받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산악구조대라는 작가의 체화된 특수한 경험을 서사 속에 잘 용해시켰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최근 상주 남장사 중궁암에 화재가 나서 전각 3채가 모두 전소됐다. 화재가 난 이튿날 새벽 필자는 남장사 중궁암의 화재 현장으로 가다가 2인 1조가 되어 모터를 들고 내려오는 소방대원들을 만났다. 그들은 지난밤에 소방차가 오를 수 없는 가파른 산길을 무거운 소방복을 입고 모터를 들고서 뛰어올라갔던 것이다. 땀 흘리며 내려오는 소방관들을 보면서 세상에는 참으로 많은 보살님들이 현현해 있음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유응오 소설가 arche442@hanmail.net

 

[1560호 / 2020년 11월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