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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갈마와 선거제도

민주주의와 승가 결정 방식의 결정적 차이는

승가 고유 결정 방식은 갈마
전원출석과 만장일치에 중점
승가화합과 번뇌소멸이 목적
민주주의 다수결원칙과 달라

갈마는 대계(大界)를 기준으로 형성된 현전승가의 비구 및 비구니가 육화합 정신에 의거하여 각각 독립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승가의 고유한 의사결정 방식이다. 기존의 많은 연구자료에는 승가 회의방식이라고 소개돼 있다. 승가 의사결정은 개인의 이익 목적이 아니라 승가 전체의  이익을 위하고, 수행에 방해되는 번뇌를 대치하는 것이 목적이므로 일반적 언어인 ‘회의’라는 표현이 적절치는 않다.

갈마가 성립하기 위한 절대조건으로 전원출석과 만장일치가 강조된다. 그런데 이 말을 현대적 사고로 ‘구성원 전원이 모여 각자의 의견을 평등하게 반영하여 만장일치로 결정한다’고 이해하면 오해의 소지가 생길 수 있다. 갈마는 현전승가의 결합과 화합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대계 안에 있는 비구나 비구니는 모두 참석해야 한다. 불참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으면 절차에 따라 권한을 위임하여야 한다. 이는 불참했을 때 결정된 사안에 대해 후에 따로 이의를 제기하거나 반대의견을 표시하지 않겠다는 뜻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행위이다.

갈마는 참석자 모두의 의견을 똑같이 N분의 1로 반영해 사안을 결정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갈마가 진행되는 자리에서 지위가 높다거나 법랍이 많아서 특별히 더 많은 권한을 가지고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안건에 대해 찬반을 표할 수 있는 권리는 누구나 동등하게 하나씩만 가진다는 뜻이다. 찬반을 묻는 갈마에서 한 사람의 반대만 있어도 갈마가 성립되지 않고 안건은 통과되지 못하기 때문에 만장일치라는 표현을 쓴다.

승단에서는 지혜 있는 자의 법답고 합리적인 의견이나 제안이 매우 중시된다. 따라서 갈마에 상정된 안건이 지혜 있는 자가 제기한 법답고 합리적인 사안이라면 누구도 반대해서는 안 된다. 개인적으로 약간의 이의가 있더라도 여법성이나 합리성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동의를 표해야 하는데 이런 이유로 갈마는 아견이나 아만을 대치하는 수행방법의 하나로도 여겨진다. 일단 반대의견이 있으면 갈마는 무조건 중단되고, 반대가 지닌 합리성과 여법성에 대한 총체적 논의가 다시 이뤄진다. 그 과정을 통해 새로운 의견이 도출되면 다시 갈마에 붙여진다. 만약 자신의 고집을 내세우거나 합리적이지도 않은 이유로 반대하여 갈마를 방해하고 화합을 깨뜨릴 경우 승가는 그를 합법적인 방식으로 갈마에서 제외시킬 수 있다.

갈마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찬반의 세력이 서로 팽팽하여 합일된 결정이 이뤄지지 않아 만장일치 조건을 성취할 수 없을 때 승가의 화합을 이끌어내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이 사용된다. 이 때 대중으로부터 존경받고 법과 율에 대해서도 잘 알아 쌍방을 모두 설득시킬 수 있는 덕과 지혜를 갖춘 지도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해진다. ‘다수결의 원칙’에 의거하는 민주주의가 찬반의 숫자를 기준으로 최종 결정을 내리는 것과 달리 율장이 지향하는 바는 승가가 서로 화합하며 번뇌를 퇴치하여 열반에 나아가는 데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승가는 대사회적 기능을 효율적으로 담당하고 전체 출가자를 대변하여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조직이 필요하다 보니 세간의 선거법을 출세간의 지도자 선정방식에 차용하고 있다. 이 방식이 사용되는 과정에서 출가승단의 본질을 잃어버리는 안타까운 모습이 자주 보인다. 승단이 화합과 청정을 보배처럼 여기고 청빈과 소욕지족을 귀하게 여긴다면 투표로 뽑든 추대로 모시든 관계없이 자연스럽게 덕과 지혜를 갖춘 이가 지도자가 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한 구조 속에 있기 때문에 이왕 선거제도의 방식으로 지도자를 선출하려면 세속적 형태의 파벌, 금권주의, 흑색선전과 비방 등의 부끄러운 일들이 끼어들지 못하는 공정한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정원 스님 봉녕사 금강율학승가대학원 shamar@hanmail.net

 

[1561호 / 2020년 11월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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