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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출가자의 절 예법

기자명 정원 스님

출가자는 왕이라도 재가자에 절하지 않는다

불가촉천민 출신 우바리존자도
왕족과 귀족들로부터 절 받아
상좌부에선 아직도 엄격히 유지
삼보 공경으로 정법 유지 목적

초기불교 수행을 하는 어떤 이가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합니다’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스님들에게 절을 하고 공경을 표하는 것에 대해 반론하더니 급기야 출가자도 재가자에게 절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표명할 때는 반드시 삼장의 근거를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까지 잘못 이끄는 무거운 업보를 감당해야 한다. 

부처님 법에 따르면 원칙적으로 출가자는 재가자에게 절을 하지 않는다. 이것은 삼보에 대한 공경을 통해 정법이 세상에 유지되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써 상좌부 불교에서는 지금도 아주 엄격하게 지켜지고 있다. 반면 동북아 대승불교권에서는 비구가 예경을 받으면 합장 저두(低頭)로써 예의를 표시한다. 경전과 율장에서는 이 부분을 어떻게 정리하고 있을까?

율장에 따르면 부처님의 제자인 출가 5중과 재가 2중 가운데 비구승이 상수가 되어 비구니 이하 6중으로부터 예경을 받는다. 심지어 승단 내에서도 중·상좌는 하좌에게 예를 표하지 않는다. 우바리 존자는 출가 전에 불가촉천민이었으나 석가족 왕자나 귀족들보다 먼저 출가하였으므로 상석에 앉고, 그들로부터 절을 받았다. 사분율장 방사건도에는 비구가 공경의 예를 하지 말아야 할 대상과 승단 내에서 예를 표하는 차서가 자세히 나온다. 비구는 재가자와 재가자의 탑묘 및 여인에게 절해서는 안 된다. 먼저 계를 받은 이가 나중에 계를 받은 이에게 공경의 예를 올려서도 안 된다. 또한 계를 받을 수 없는 중죄를 범한 이와 대중을 번거롭게 하는 죄를 짓고도 인정하지 않거나, 참회하지 않거나 악견을 버리지 않는 등으로 인해 갈마로 죄를 드러내는 삼거(三舉) 갈마를 당한 이, 멸빈당한 자 혹은 멸빈당해야 할 자에게도 공경의 예를 해서는 안 된다. 비법을 설하는 자에게도 공경의 예를 하지 말라고 되어 있다.

아라한과를 증득한 거사가 육군비구에게 예를 다하고 공양을 올리다 재산을 다 써버린 이야기도 있다. 물론 그 일로  부처님께서는 과위를 증득한 유학(有學) 재가자에게 공양 받는 것을 제한하는 계율을 제정하셨다. 이외에도 재가자가 예의 없이 승단이나 출가자를 비방할 경우 그로부터는 어떠한 공양도 받지 않겠다는 복발(覆鉢)갈마를 한 경우도 있다. 

‘범망경’ 보살계 제38조는 출가보살이 앞에 앉고 재가보살은 뒤에 앉도록 되어 있다. 단순히 보살계본만 보면 그 차제가 명확하지 않지만 관련된 경전과 고승대덕의 주석서를 통해 이러한 차제를 확인할 수 있다. 제40조에 출가자는 국왕이나 부모에게조차 예를 올리거나 절을 하지 않도록 되어 있다. 출가자가 재가자에게 절을 했다는 주장의 근거로 흔히 인용되는 대승경전인 ‘유마경’은 구마라집 번역이다. 그런데 현장 스님이 번역한 ‘유마경’인 ‘설무구칭경(說無垢稱經)’ 성문품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유마거사의 병을 아신 부처님께서 성문 제자들에게 병문안을 가라고 지시하자 제자들은 지난날 유마거사와 관련된 일을 떠올리면서 못가겠다고 답한다. 13명 제자들의 과거회상은 유마거사가 아라한인 자신에게 와서 발아래 예경을 올리는 절을 한 것부터 시작된다. 물론 ‘유마경’에는 보살과 신학비구가 유마거사에게 절을 하지만 이것은 삼보 주지의 의궤를 무너뜨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가르침을 위한 방편이다.

‘유마경’을 근거로 출가자로부터 공경의 예를 받으려면 자신의 공덕과 깨달음 정도가 유마거사와 동등할 경우에는 가능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서 함부로 출가자의 예를 받는다면 자칫 대망어죄를 범하게 된다. 법을 설하는 재가자가 율의를 알지 못하거나 밀교의 재가 스승이 진실한 공덕이 없는 데도 비구가 그들에게 제자의 예법을 행하면 비구와 재가자 모두 악법을 행하고 법을 멸하는 무거운 죄를 얻는다.

정원 스님 봉녕사 금강율학승가대학원 shamar@hanmail.net

 

[1562호 / 2020년 11월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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