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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슈베르트의 마지막 소나타

기자명 김준희

죽음 대하는 예술가 태도, 비구의 고백 같아

급격히 건강 악화된 후 마지막 소나타에서 인생에 질문 던져
반복 형식은 인생 돌아보며 두 번 이상 되묻는 신중함 연상
삶과 죽음의 경계서 어느 쪽에도 집착 않는 해탈 모습 모여

비엔나 중앙공동묘지(Zentralfriedhof)에 묻힌 슈베르트의 무덤을 살펴보는 필자.

철학, 종교, 사상 그리고 예술의 공통점은 ‘삶’을 주제로 한다는 것이다. 삶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묵시적으로 한편에 ‘죽음’을 놓아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종교는 삶과 죽음을 직접적으로 다룬다면, 철학과 사상은 삶의 문제를 해석하는데 주안점을 둔다. 반면 예술은 삶과 죽음의 문제 중 어느 하나를, 혹은 그 모두를 동시에 표현한다. 예술가는 어떤 종교인이나 철학자 못지않은 통찰력으로 고뇌의 시간을 보낸다.

프란츠 슈베르트는 슈베르티아데의 적극적인 후원에 힘입어 가곡과 피아노곡, 실내악곡들을 주로 작곡하면서 활동했지만, 내적갈등은 점점 고조되고 있었다. 슈베르트는 자신의 삶에 대한 깊은 성찰로 일기에 일상적인 평온함과 급격히 폭발하는 것 같은 내재된 격렬함을 함께 적곤 했다. 니체가 ‘고통은 예술가의 삶의 충일(充溢)에서 온다.’라고 한 것처럼 그는 이중적인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슈베르트의 음악은 내성적이고 조용한 그의 성격처럼 대부분 아름답고 서정적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의 중기 이후 기악곡들은 한 곡 안에서 그 양면성이 공존하며, 후기 작품으로 갈수록 작품 안에 그의 삶의 모습이 반영됐다. 특히 그가 사망하기 2개월 전에 작곡된 세 곡의 후기 소나타 중 마지막 곡인 ‘피아노 소나타 Bb장조 D.960’에는 음악적으로나 구조적으로 외면의 자아와 그 안에 숨은 내면적 성찰이 뚜렷하게 나타나 있다. C단조 소나타 D.958에서는 단호한 리듬과 절도있는 악상이 베토벤의 오마주라고 여겨질 만큼 고전적 어법이 강하게 나타나다. A장조 소나타D.959는 투명한 악상과 반짝이는 선율로 그의 중기 작품인 ‘피아노 5중주D.667 (송어)’과도 유사성을 보인다. 

그러나 Bb장조 소나타 D.960은 규모가 가장 클 뿐만 아니라 새로운 아이디어로 가득 차 있다. 슈베르트의 그 어떤 작품에서도 보기 어려운 긴 호흡과 극적인 전개로 음악적 내용과 형식의 구조 간 조화를 이루고 있다. 보통의 1악장 보다 조금 침착한 빠르기인 Molto Moderato로 시작되는 이 곡은 빠르고 당당한 분위기의 선율 대신 차분하고 고백적인 주제로 시작된다. 경건하고 고요한 선율은 삶에 대한 의문으로 풀이된다. 이미 한 해 전, 급격하게 악화된 건강으로 죽음의 그림자를 인식했던 슈베르트는 마지막 소나타에서 그의 인생에 대한 질문을 던진 것 같다. 두 번 반복되는 첫 번째 주제에 사이의 트릴 이후 휴지부는 음악적으로 극적 긴장감을 더해주며 슈베르트만의 낭만성을 강조한다. 인생을 돌아볼 때 두 번 이상 되묻는 것 같은 신중함도 보여준다.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D.960의 초고.

달관된 분위기까지 담고 있는 첫 악장은 첫 주제에서 이미 답을 찾은 것 같은 인상을 담고 있다. 슈베르트는 어쩌면 첫 노트를 오선지 위에 얹는 순간 직감적으로 인생의 답을 알았을지도 모른다. 질문을 던지는 순간 모르는 사이 해답을 떠올렸던 것 같다. 마치 공자에게 죽음을 묻는 계로(季路)에게 “삶도 모르면서 어찌 죽음을 알까?”라고 답한 것을 연상케한다. 

두 번째 주제는 짧게 불타오르던 작품 활동의 시기를 보여주는 것 같다. 짧고 간결하지만 그의 빛나는 작품들이 편린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발전부의 노래는 시종일관 삶에 대한 관조적인 태도와 죽음 앞에서 초연함을 보여준다. 두 번째 주제의 동기와 교차되며 나오는 하행 2도의 선율은 바로크 시대에 주로 사용된 sigh figure를 연상하게 해 짧게 빛났던 작품 활동과 한숨과 눈물의 고통 시기가 반복되는 것을 상징하는 것 같다.

매우 조심스럽고 조용하게 사라지듯 끝맺는 1악장에 이어지는 2악장은 슈베르트가 작곡한 피아노 소나타의 전 악장을 통틀어 그의 인생을 묘사하는 듯한 이미지가 가장 뛰어난 악장이다. 관계조와는 거리가 먼 F#단조의 2악장은 안식을 찾아 헤매다가 탄식하는 방랑자의 모습을 연상케한다. 필자는 2악장에서 노래과 작곡에 재능이 있고, 슈베르트의 작품을 공테이프에 녹음해 즐겨 들었던 시인 기형도(1960-1989)의 시를 떠올린다. 그가 사망하던 해 발표된 ‘빈집’이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짧고 간결한 스케르초 풍의 3악장은 어린 시절을 회고하는 듯한 순박한 선율들로 이루어져있다. 곧이어 등장하는 마지막 악장은 매우 흥미롭다. 첫 악장 못지않게 예외적인 4악장은 발전부가 생략된 소나타 형식으로 4악장의 전체 조성인 Bb장조의 반음 위 음을 으뜸음으로 하는 C단조의 5음을 유니즌으로 강조하며 시작한다. 두 번 반복되는 이 유니즌은 1악장의 주제가 삶에 대한 질문을 던진 것과 마찬가지로 질문과 답의 모양새로 풀이된다. 1악장에서는 조심스럽게 질문을 펼쳐나갔다면 4악장에서는 매우 간결하고 주저 없이 답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리듬에 중점을 둔 담백한 4악장은 조금은 비장한 자세의 앞 악장들에 비해 담담한 결론을 예상하고 있다. 

마지막 악장에서는 죽음을 앞둔 자의 비통함이나 쓸쓸함, 또는 고통은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짧지만 평탄하지 않았을 인생의 에피소드들이 과장 없이 담담하고도 온화하게 그려진다. 마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물론이고 삶의 애착마저도 놓아버린 것 같은 감상을 받는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어느 쪽에도 집착하지 않는 듯, 진정한 자유, 즉 해탈을 떠올리게 한다. ‘나에게 죽음의 공포는 없네. 또 삶에 대한 애착도 없네./ 명확하게 알고 안정되어 있네./ 나는 몸을 버릴 것이라네.’ (테라가타 20)

삶에 대한 고뇌와 죽음을 목전에 둔 슈베르트의 감정의 흐름을 악장을 따라가며 살펴보면, 병으로 인해 심신이 약해진 젊은 음악가의 삶에 대한 질문을 발견할 수 있다. 또 음악가로서의 방랑의 삶과 어린 시절에 대한 짧은 회상, 그리고 죽음을 대하는 예술가의 기다림의 태도를 느낄 수 있다. ‘겨울여행(겨울나그네)’을 시작하지 못하고 가을(11월19일)에 떠난 슈베르트의 ‘백조의 노래’를 들으며, 옛 비구의 단단한 고백과 같은 시를 떠올려본다.

김준희 피아니스트 pianistjk@naver.com

 

[1562호 / 2020년 11월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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