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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숭총림 방장 달하 스님 경자년 동안거 결제법어

기자명 법보
  • 교계
  • 입력 2020.11.27 09:06
  • 수정 2020.11.27 09:16
  • 호수 1563
  • 댓글 0

세상사 ‘이 뭘까’ 맡기고 청규 따라 정진하라

‘눈·코를 돌이키니 철저히 신령스럽네. 쉬어 돌아오니 온몸이 본래 청정이라. 인연을 놓고 상속을 끊으니 고금이 이 물건이로다. 백로는 싹트지 않는 가지 위에 꿈꾸고 숨길은 나무 끝끝마다 봄이로다.’(만공 스님 법어)

덕숭산 동안거 결제법회는 만공 스님 열반다례일입니다. 전야에 산중이 대웅전에 모두 모여 “내 얼굴 못 보는 것이 내 법문이다”라고 하신 만공 스님의 법문 분위기로 겨울 안거에 들어갑니다. 다례를 모실 때는 특별히 조용합니다. 경허 스님과 만공 스님이 내려다보시는 턱밑에서 치는 죽비 소리는 유난히 크게 들립니다. 정신이 번쩍 듭니다. 평생 들었던 법문이 이 한 죽비 소리에 다 꿰어집니다. 어떤 경책보다, 어떤 법문보다 실제적인 이 죽비소리는 만공 스님의 할이요, 언하대오의 시절인연입니다.

‘경허 스님, 만공 스님과 함께 정진하는 이 도량에 겨울 방부를 들였구나! 이런 횡재가 어딨나!’ 이런 생각이 절로 듭니다. 수미산을 한 번 경험하고 나면 다시 산을 찾아 헤맬 일이 없어집니다. 그때 그때 인연 닿는 대로 산을 누리기만 하면 됩니다. 부처님의 ‘천상천하 유아독존’ 이 한 마디가 화살로 청석 바위 돌호랑이를 관통시킵니다. 모기의 침으로 철우의 무쇠 소가죽을 뚫고 피바다에 풍덩 빠지게 합니다.

부처님의 ‘유아독존’ 이 한 마디는 언하대오의 한 마디요, 부처님 탄생 제일성(第一聲)입니다. 이 물건은 본래로 천상천하 유아독존입니다. 그래서 이놈은 고봉밥을 먹는 상머슴일 수밖에 없습니다. 일 잘하는 상머슴이 되겠습니다. 스치는 작은 인연도, 벌레 한 마리 풀 한 포기도 천상천하 유아독존입니다. 우주를 굴려주는 대 달마요. 모든 생명을 살리는 관세음보살입니다. 행자를 시봉하고, 대중을 시봉하는 대승보살이 되겠습니다.

검다, 희다를 넘어서 다 안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 문중에 들고 싶은가. 부처님의 ‘유아독존’ 이 한마디에 남을 탓할 일이 없어졌습니다. 남을 원망할 일이 없어졌습니다. 끝없는 삼보의 대자대비 앞에 이 정성을 바칠 뿐입니다. 모두가 명훈가피요, 자타가 일시에 이 자체로 녹아져 ‘이 뭘까’ 뿐입니다.

동안거의 입방은 하늘이 감동하고 땅이 감동할 일입니다. 이 결제에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이 놀랍고 놀랄 일입니다. 내가 이 안거의 주인공이라는 것이 놀랍고 놀랍습니다. 바보처럼 공부해갈 뿐입니다. 세상의 때를 다 벗어났다 하더라도 피곤이 남아있으면 쉬어 줘야 합니다. 근원을 알았다 하더라도 시작일 뿐입니다.

경허 스님께서는 “맑은 바람이 푸른 대나무를 흔든다고 하는데 어느 곳에서 이런 소식을 알았는가” 하셨습니다. 경허 스님은 일생을 통틀어 ‘이 뭘까’ 였습니다. 한평생 ‘이 뭘까’를 둥실둥실 대하의 물결처럼 멋있게 굴리다가 납월 삼십일 안광락지시(臘月 三十日 眼光落地時)에도 오직 한마디 부시하물, 다시 ‘이 뭘까’ 였습니다.

옛사람은 ‘이 뭘까’에 의심이 떨어지고 확신이 서면 세상만사 ‘이 뭘까’에 맡겨버리고, 울력할 때 울력하고 예불할 때 예불하고 청규 따라 힘닿는 데까지 공부하라고 했습니다. 단풍이 낙엽이 되어 뿌리로 돌아가고 산천은 봄을 잊어버리고 깊은 휴식에 들어갑니다. 천년의 고요가 장중하게 흐르고 있습니다. 생각을 쉬고 내 자리로 돌아와 안거에 계합하니 깊은 호흡이 뿌리째 시원해집니다. 자고 새면 물과 육지 허공에 깊이를 알 수 없는 저 수많은 눈동자들 어떻게 할 것인가. 이미 늦어버린 생각으로는 감당될 일이 아닙니다.

‘고불미생전 응연일상원 석가유미회 가섭기능전(古佛未生前 凝然一相圓 釋迦猶未會 迦葉豈能傳).’ 고불이요 태어나기 전이요 응연이 한 모양 둥그렀다. 석가도 오히려 안다고 할 수 없는 것을 가섭이 어떻게 전한다고 하느냐. 이 뭘까.

[1563호 / 2020년 12월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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