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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지혜와 복덕

기자명 정원 스님

복덕이 부족하면 아라한이더라도 굶주린다

두 형제, 복과 지혜 따로 수행
지혜 닦은 형은 아라한과 성취
복덕 닦은 동생은 풍족한 생활
복덕 자량 없으면 수행에 장애

도선율사의 ‘사분율행사초’ 제잡요행편에는 복덕과 지혜의 관점을 가지고 출가자가 의지해야 하는 긴요한 일들을 설명하고 있다. ‘대지도론’에서 “지혜는 해탈의 인이 되기 때문에 출가자는 주로 지혜를 닦고, 복덕은 즐거움의 인연이 되기 때문에 세속인은 주로 복덕을 닦아야 한다”고 말한다. 출가자와 세속인은 복과 지혜를 다르게 닦는다. 이렇게 둘이 나눠지는 차이를 이치적으로 알아야 하고, 서로의 공통점과 차이점도 알아야 한다. 그렇다고 복과 지혜 둘이 차이가 있어서 도속(道俗)이 다르게 수행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단지 세속은 얽힌 것이 많아서 고요한 정업을 지속시키기 어렵지만 도문(道門)은 번다함 없이 오롯하게 수승한 행을 닦을 수 있으므로 두 갈래로 나눈 것이다. 둘의 공통점에 의거하면 반드시 복과 지혜를 쌍으로 성취해야 한다.

‘대지도론’ 서품 방광석론에는 복과 지혜를 편벽되게 수행한 두 형제의 일화도 있다. 어떤 이가 “악세에 태어나도 좋은 음식을 얻는 사람이 있고, 부처님께서 계시는 시대에 태어났지만 기근에 시달리는 이가 있습니다. 죄인이라면 부처님 시대에는 태어나지 않아야 하고, 복 있는 이라면 악세에는 태어나지 않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런데 실제로는 어째서 그렇지 않습니까?”라고 질문하자 논사는 다음과 같이 답한다.

“업보인연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부처님을 친견하는 인연은 있어도 음식은 얻을 인연은 없을 수 있고, 또 어떤 이는 음식 인연은 있어도 부처님을 친견할 인연은 없을 수 있다.

검은 뱀이 마니주를 안고 누워 있기도 하고, 아라한이 음식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고 하면서 가섭부처님 시대에 있었던 두 형제에 관한 일화를 들려준다.

가섭부처님 때 두 형제가 도를 구하고자 출가하였다. 한 사람은 지계, 송경, 좌선을 열심히  하였고, 한 사람은 단월들을 이리저리 다니면서 복업을 짓는 수행을 하였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셨을 때, 한 사람은 장자의 집에서 태어났고, 다른 한 사람은 흰 코끼리로 태어났는데 도적들을 물리칠 정도로 힘이 좋았다. 장자의 아들은 나중에 출가하여 도를 배우고 육신통을 얻은 아라한이 되었다. 그러나 복이 부족해서 음식을 얻기가 무척 어려웠다. 아라한은 여느 때처럼 탁발하러 가다가 도중에 흰 코끼리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그 코끼리는 왕이 준 갖가지 풍족한 물건으로 치장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지내고 있었다. 아라한은 코끼리에게 다가가 말했다. “나와 너, 우리 둘 다 죄가 있구나.” 이 말은 들은 코끼리는 삼일 동안 음식을 끊었다. 코끼리를 보살피는 이는 왕의 총애를 받는 코끼리가 갑자기 식음을 전폐하니 두려워서 아라한을 찾아가 물었다. “도대체 코끼리에게 무슨 주문을 걸었습니까? 스님을 만난 이후로 음식을 먹지 않습니다.” 아라한이 대답했다. “그 코끼리는 과거 생에 내 동생이었소. 가섭부처님 시대에 함께 출가하여 수행을 했소. 나는 지계, 송경, 좌선은 열심히 했으나 보시를 하지 않은 반면 동생은 단월들을 두루 찾아다니면서 각종 보시를 했지만 지계, 학문, 송경, 좌선 등의 수행을 소홀히 하였소. 그 과보로 코끼리로 태어났으나 음식과 각종 물질이 풍부하고, 나는 도 닦는데 치중하고 보시를 하지 않은 까닭으로 출가하여 득도하였지만 늘 음식을 못 얻는다오.”

도선율사는 ‘출가한 사람은 신계(身戒)와 심혜(心慧)를 근본으로 삼아야 하므로 경전, 불상, 사찰의 조성을 주업으로 삼아 근본을 소홀히 하고 우선순위를 헷갈리지 말라고 당부한다. 소위 삼장을 결집하고 연찬하여 불법이 멸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비구의 주된 의무이므로 복덕수행을 뒤로 두었지만 복덕의 자량 없이는 수행에 장애가 많으므로 지혜와 복덕을 고르게 닦아야 한다.

정원 스님 봉녕사 금강율학승가대학원 shamar@hanmail.net

 

[1563호 / 2020년 12월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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