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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선법의 전승’과 ‘임제종’

기자명 선응 스님

학자는 먼저 자세히 종사의 길 판단

마조도일의 한마디 소리침에
백장 귀멀고 황벽 혀 내밀어
할이 염화소식이고 달마 면목
이것이 바로 임제종의 연원

77장은 “‘본분종사(本分宗師)’가 온전히 이 ‘구절’을 제시하니, 마치 ‘장승’이 노래하고 박수치는 것과 같고, 붉은 화로에 떨어진 눈과 같고, 부싯돌 불, 번갯불과 같으니 학자들은 실로 분별하거나 논의할 수 없다. 그러므로 ‘옛 사람’은 스승의 은혜를 알고 말하기를, ‘이전 스승의 ‘도덕’은 귀중하지 않고, 나를 위해서 ‘설파’하지 않는 것이 귀중하다’하였다”이다.

‘본분종사’는 ‘본래면목’을 깨달은 ‘선사’다. ‘육조단경’에서 “선도 생각하지 않고 악도 생각하지 않는 것이 혜명(586~672)의 ‘본래면목’이다”고 설한 것으로, 대혜(1089~1163)의 ‘서장’에서 “오직 ‘화두’를 간할 때 일체가 ‘없게(無)’ 된다”는 것으로, ‘한 마음’이 목석과 같으면 일체 마음과 경계가 없게 되는 경지에서 자재한 것을 말한다. ‘옛 사람’은 ‘동산어록’에서 남전보원(748∼834)의 법을 이은 동산양개(807~869)가 운암담성(782~841)의 제사에 참석해서 스승의 은혜를 말한 것이다.

서산대사가 “말하지 말라! 말하지 말라! ‘글’에 머물까 두렵다!”고 한 것은 ‘선림승보전’에서 조동종 양산연관(10세기)과 제자 대양경현(943~1027)이 ‘상(相,nimitta)이 없는 것은 무엇인가?’를 ‘문답’한 것이다. ‘상’은 힌두교는 ‘신’에 기도한 효과라고 하고, 상좌부불교는 ‘명상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이미지와 정신적 조작이라고 하며, ‘금강경’에서는 ‘색‧수‧상‧행‧식’이 ‘나’라고 생각하는 ‘아상(ātman)’, 대상을 집착하는 ‘인상(pudgala)’, ‘연’들에 의한다고 생각하는 ‘중생상(sattva)’과 ‘주재신’과 영원한 ‘영혼‧정신’을 주장하는 ‘수자상(jīva)’이라고 한다. 

게송하시길 “화살로 강에 비친 달그림자를 뚫으니 독수리를 쏘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했다. 선사의 ‘문답’에 ‘말’과 ‘생각’의 전에 ‘전광석화’와 같이 답할 수 있어야 한다. 

78장은 “대개 학자는 먼저 자세히 ‘종사의 길’을 판단해야 한다. 옛날에 마조도일(709~788)의 한 ‘소리침(喝)’에 백장회해(749∼814)는 귀가 멀었고, 황벽희운(?∼850)은 혀를 내밀었다. 이 한 번의 ‘할’이 곧 ‘염화소식’이고 달마(?~528)가 처음 온 ‘면목’이다. 해가 떠오르듯 크구나! 이것이 ‘임제종’의 연원이다”이다. 

‘방’과 ‘할’은 ‘선사’가 가르치는 수단이다. ‘벽암록’에서 마조가 ‘어떻게 사람을 교화하려는가?’에 대한 내용으로 ‘체‧상‧용’을 밝힌 것이다. ‘염화소식’은 ‘연등회요’에서 석가모니(BCE. 563~483)가 가섭(BCE.5~6세기)에게 전한 ‘불립문자‧교외별전’의 법이고, 28대 달마가 혜가(487~593)에게 전한 ‘안심법문’이다. 마조의 ‘남종선(홍주종,大機大用)’, ‘무심의 도’는 백장과 황벽을 이어서 임제의현(?~867)이 ‘임제종’을 성립했다. 이후 원오(1063~1135)의 ‘공안선’으로 완성되고 대혜의 ‘간화선’으로 전승되었다.

다음은 “법을 아는 것이 두렵다. 소리를 내면 즉시 때린다”이다. 이것은 ‘벽암록’에서 반산(盤山,720~814)선사가 ‘어느 곳에서 마음을 구하는가?’를 거량하며, ‘말’과 ‘의식’을 떠나서 ‘방’과 ‘할’로 경책한다. 다시, “마디 없는 주장자 한 자루를 은근히 밤길 가는 사람에게 전해 주노라”한 것은, 법천(法泉, 송대)의 ‘증도가송(1248)’에서 석존으로부터 가섭에게 전해진 법을 서역의 달마대사가 중국에 전해서 ‘5엽(선가5종:임제‧조동‧운문‧위앙‧법안)이 성립된 연유를 전한다. 

서산대사는 “옛날에 마조선사의 한 번의 ‘할’로 백장은 ‘대기틀’을 증득하고 황벽은 ‘대작용’을 증득했다. ‘대기’는 원만하게 응하는 뜻이고, ‘대용’이란 즉시 단절하는 뜻이다. 일화는 ‘전등록’에 있다”라고 한 것은 ‘경덕전등록 9권’에서 위산영우(771~853)가 대중에게 “대개 사람들이 ‘대기’만 얻고 ‘대용’은 얻지 못했다”고 하자, 이에 앙산혜적(807~883)은 차나무를 흔들고 위산이 침묵한 일화를 전하였는데 앙산은 ‘용’을 설하고 위산은 ‘체’를 설한 것이다. ‘선종’의 법은 ‘공안’을 깨달아도 ‘선사’의 인증을 받아서 전승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본분종사’의 ‘체‧상‧용’이 원만한 것이 ‘임제종’의 기틀이다.

선응 스님 동국대 불교학 박사 sarvajna@naver.com

 

[1563호 / 2020년 12월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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