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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작고 귀찮은 것들 예찬

기자명 정원 스님

부처님 제자라면 자신과 타인 시선에 모두 깨끗해야

코로나는 소소함의 중요성 시사
청정승가 구현할 마스크는 계율
작고 귀찮은 것 실천할 때 신뢰
이런 시대일수록 기본 충실해야

전 지구를 강타한 이례적 바이러스로 삶이 완전히 달라졌다. 감염자와 의료진은 물론이거니와 그들 가족과 자영업자들이 겪는 경제적 고통도 심각한 수준을 넘어섰고, 사회 인프라 전반에 미치는 보이지 않는 손실과 어려움은 체감할 수 있는 수준 이상이다. 일 년 남짓 계속되는 팬데믹 과정에서 전문가들은 가장 안전한 대응으로 마스크 착용과 손씻기를 강조한다. 그간 인류가 축적해온 엄청난 의학 발전으로도 검증된 안전한 백신을 개발했다는 소식이 들리지 않는 상황에서, 가장 안전한 대책이 마스크 착용과 손씻기란 사실은 작고 귀찮은 일에 충실한 게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한 시사를 제공한다.

너무 복잡하게 얽혀서 도저히 풀 수 없을 것 같은 문제에 직면하거나 걱정과 근심으로 가득한 현실일수록 기본에 충실해야 이겨낼 가능성이 높다. 종교의 영역에도 예외가 아니다. 다원화된 현대사회에서 종교적 가치와 필요성이 희박해지고 종교인의 존재와 역할에 대한 기대치도 낮아지고 있다. 한국불교는 이러한 변화 가운데 이웃종교보다 더 빠른 속도로 축소되고 있다. 그러다보니 종단에서는 포교활성화라는 슬로건 아래 여러 대책을 세우면서 고민하고 있지만 별다른 해법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이런 시대일수록 기본에 충실해야 하는데 불교적 측면에서 기본은 과연 무엇일까?

필자가 생각하는 근본은 청정승가이고, 이를 구현해낼 강력한 마스크는 승가와 구성원들이 부처님으로부터 시작된 계율에 대한 인식을 바로잡는 데에서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수행자는 구족계의 내용과 목적 및 역할에 대해 일단 잘 알아야 한다. 그 다음으로는 계목의 실천과 갈마법의 실행이 승가공동체 안에서 현실화돼야 한다. 스님들의 언행이나 위의가 자신들과 별반 다를 바 없고, 말로는 법을 설하지만 행위는 법에 어긋나고, 금권과 이양을 중시하며, 위선과 이중 잣대를 가진 것을 보면 사람들은 승가를 비난하며 심지어는 불교 자체를 외면한다. 이렇게 부정적 범주를 표준으로 세우면 내가 그렇게 살고 있다고 수긍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같다. 그럼 수행자가 어떤 모습일 때 사람들은 부처님과 법을 존중하고 승가를 존경하게 될까?

살면서 느끼건대 사람들은 스님들이 대단한 도를 이루었거나 혹은 나중에 큰 도업을 성취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승가를 공경하는 것 같지는 않다. 삭발염의의 소박한 모습으로 신 새벽에 깨어 삼보에 예경 올리고, 시간과 때에 맞게 먹고, 적게 가지고, 남에게는 많이 베풀며, 욕망을 자제하고, 상대방의 귀천을 따지지 않고 따스하고 너그럽게 대하며, 윤리적 일관성 속에서 살아갈 때 사람들은 귀하게 여기는 마음을 일으킨다.

재가불자들 역시 작고 귀찮은 것들의 실천으로 주변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어야 한다. 법을 꾸준히 훈습하고, 각자 받은 계를 지키고, 잘못은 진실하게 참회하면서 향상일로(向上一路)하는 모습을 보일 때 가족과 이웃으로부터 존경받게 된다.

세주묘엄 명사스님께서는 초학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수행 초기에는 스스로나 타인의 시선에 모두 깨끗해야 한다. 어떤 경우에라도 혐오감이나 의심을 품게 해서는 안 되며 그럴만한 일은 아예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살구나무 아래에서 갓끈 매지 말고 참외밭에서 신발 끈을 묶지말라는 세속 속담도 있다. 그래서 계율에 대한 습관화가 필요하다. 신사도를 익히면 몸에 배는 것 같이 마음도 수행을 잘해 습관들이는 게 계율이다. 계행은 자기단속이다. 무릇 부처님 제자라면 계율을 스승으로 삼아 닦고 배워야 할 것이다. 계를 잘 지키는 가장 쉬운 방법은 정진하고 기도하고 염불하고 참선하는 것이다. 정진하는 이에겐 계를 지킨단 생각조차 없이 저절로 모든 게 지켜져야 된다. 그렇지 않고 계행을 지키겠다 함은 파계가 되는 것이니 계행을 잘 지켜나가는 방법은 정진 잘하고 중노릇 잘하고 대자대비의 마음을 기르는 것뿐이다.”

정원 스님 봉녕사 금강율학승가대학원 shamar@hanmail.net

 

[1566호 / 2020년 12월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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