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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보현관행(普賢觀行)-(끝)

기자명 해주 스님

‘화엄경’은 부처님 시성정각에서 시작돼 보현행원으로 마무리

해탈에 이르는 방편이 보살행이고 또 그 모든 보살행이 보현행
모든 수행방편 담긴 ‘화엄경은 바다에 비유해 화엄대해’라 불려
‘화엄경’ 보는 것이 부처를 보는 것이니 간경이 관불, 견성의 길

변상도화엄경 권80.문수와 보현선지식.
변상도화엄경 권80.문수와 보현선지식.

부처님의 가피를 입고 삼매의 이익을 얻은 보현보살이 부처님의 칭찬과 보살대중들의 권청으로 설주가 됩니다. 보현보살이 한량없는 모든 부처님과 중생들과 세계 등을 관찰하고, 부처님의 일체 지혜가 불가사의함을 설합니다. 그리하여 ‘보현삼매품’ 다음에 ‘세계성취품’ ‘화장세계품’ ‘비로자나품‘이 이어집니다.

화장세계는 연화장세계라고도 불리는 화엄정토입니다. 비로자나 부처님은 화엄교주로서, 노사나불· 석가모니불과 함께 삼불원융의 청정법신입니다. ‘비로자나품’에서는 비로자나부처님이 환귀본처 즉 성불하기까지의 한량없는 인행(因行)을 설하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인행으로 10가지가 주목됩니다. 즉 일체제불의 공덕륜삼매·보문다라니·반야바라밀·대자·대비·대희·대사·대신통·대원·변재문입니다.

‘화엄경’의 대표적인 구법자로 두 동자를 들 수 있으니, ‘노사나품’ (60권 화엄경)의 보장엄동자와 ‘입법계품’의 선재동자입니다. 보장엄동자가 ‘비로자나품’에서는 대위덕태자입니다.

‘화엄경’에서 보현보살이 설주가 된 것은 불경계를 설하는 이 초회만이 아닙니다. 등각과 묘각 등 깨달음이 펼쳐지는 제7회와 제8회도 보현보살이 설주입니다. 그 사이의 제2회에서 제6회까지 다섯 회는 문수보살과 여러 보살들이 신(信)·십주(十住)·십행(十行)·십회향(十廻向)·십지(十地)의 보살도를 말씀한 것입니다.

이 보살도는 모두 10바라밀에 포섭되고, 바라밀행 또한 보현보살행에 해당됩니다.

‘화엄경’의 마지막 회품인 ‘입법계품’은 앞의 여덟 회와 대비되어 후편 ‘화엄경’이라고도 불립니다. 이 품은 부처님의 사자빈신 삼매에 의한 근본법회와 구법자 선재동자의 선지식 역참 여정인 지말법회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선재동자가 문수보살로부터 보현보살에 이르는 53선지식을 만나고는 일단 법계에 증입하는 입법계(入法界)의 여정이 끝납니다. 선재동자가 보현보살을 만남은 문수보살의 인도를 다시 받아서 이루어집니다.시종(始終)이 둘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변상도, 화엄경 권80 참조)

구법자의 질문은 보살도에 대한 것이고, 그에 대한 선지식의 답은 해탈문입니다. 해탈에 이르는 방편이 보살행이고, 또 그 모든 보살행이 보현행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화엄경’이 부처님을 설하고 그 부처님 세계를 장엄하는 보살행을 설하고 있음은, 무엇보다 경의 갖춘 제목(대방광불화엄경)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법성게’에서는 연기의 일체를 ‘십불’과 ‘보현보살’의 경계로 보고, 십불 자체는 구래불인 법성신임을 다시 설하고 있습니다.

아래 게송은 널리 독송되고 있는 ‘입법계품’의 마지막 ‘찬불게’와 ‘유통게’입니다.

찰진심념가수지(剎塵心念可數知)
대해중수가음진(大海中水可飲盡)
허공가량풍가계(虛空可量風可繫)
무능진설불공덕(無能盡說佛功德)
세계 티끌 수 같은 마음 헤아려 알 수 있고/ 큰 바다 물을 다 마실 수 있고/ 허공을 측량하고 바람도 맬 수 있으나/ 부처님의 공덕은 다 말할 수 없도다.

약유문사공덕해(若有聞斯功德海)
이생환희신해심(而生歡喜信解心)
여소칭양실당획(如所稱揚悉當獲)
신물어차회의념(慎勿於此懷疑念)

만약 어떤 이가 이 공덕바다를 듣고/ 환희하며 신해심을 낸다면/ 위에 말한 공덕을 다 얻게 되리니/ 여기에 의심을 내지 말지어다.

설사 한량없는 중생들의 마음은 다 헤아려 알 수 있어도 부처님의 공덕은 다 말할 수 없고, 큰 바다의 바닷물은 다 마실 수 있어도 부처님의 공덕은 다 말할 수 없고, 무변광대한 허공을 다 헤아릴 수 있어도 부처님의 공덕은 다 말할 수 없으며, 걸림 없는 바람까지 묶어 맬 수 있어도 부처님의 공덕은 다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불가설의 부처님 공덕을 만약 듣고 기뻐하며 신해심을 낸다면 그 공덕을 다 얻게 될 것이라는, 유통을 분부하는 게송으로 ‘입법계품’이 끝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믿음과 이해의 신해심을 바탕으로 다시 끝없는 공덕행이 이어지니, ‘입법계품’의 이역본인 40권 ‘화엄경’중 제40권인 ‘보현행원품’의 십대원이 그것입니다. 모든 보살행이 예경·찬탄·공양·참회·수희·청법·청주·수학·수순·회향 등 10가지 원에 거두어지는 보현행원인 것입니다.

이처럼 ‘화엄경’은 부처님의 ‘시성정각’에서 시작되어 ‘보현행원’으로 마무리 됩니다. ‘보현행원품’의 마지막 게송도 회향송으로 널리 회자되고 있습니다.

아차보현수승행(我此普賢殊勝行)
무변승복개회향(無邊勝福皆迴向)
보원침익제중생(普願沈溺諸眾生)
속왕무량광불찰(速往無量光佛剎)
나의 이 보현보살의 수승한 행/ 가없는 수승한 복을 다 회향하오니/ 널리 원컨대 고통에 빠져있는 모든 중생들이/ 무량광 부처님 세계에 속히 왕생하여지이다.

게송의 첫 구절인 “아차보현수승행”은 ‘보현’ 대신에 다른 단어를 넣어 여러 경우의 회향을 말하기도 합니다. 예로 수계시에는 “아차수계수승행” 사경시에는 “아차사경수승행”이라 하여, 수계공덕 또는 사경공덕을 이와 같이 회향한다고 발원하는 것입니다.

이 회향게송에서 고통 받는 중생들이 다 왕생하길 원하는 곳이 무량광불 즉 아미타불의 세계입니다. 아미타 부처님의 세계는 수명이 한량없으며 고통은 전혀 없고 즐거움뿐인 극락입니다. 아미타불의 극락 역시 화엄정토인 화장세계임을 알 수 있겠습니다. ‘화엄경’에는 그 이전의 모든 정토가 화장세계이니, 사바세계까지도 화장세계 안에 있습니다.

또 ‘화엄경’에는 편찬 당시까지 수행되어 왔던 모든 수행방편도 다 들어 있습니다. 마치 바다가 육지에 있는 물을 모두 받아들여 다 담고 있는 것과 같아서 ‘화엄경’을 화엄대해라 일컬어 왔습니다.

그런데 바닷물 맛은 한 짠맛으로서 그 바다에 모인 각각의 물맛과는 같지 않은 것처럼, ‘화엄경’의 수행법도 함께 거두어진 그 이전의 수행방편과는 다르니 모두가 일승보살행인 것입니다.

이 점은 ‘십지품’의 십지수행에서도 매우 잘 드러납니다. 처음 대승불교에서 소승수행이라고 폄하했던 사성제와 십이연기관이 ‘십지품’에서는 제5지와 제6지 수행에 배대되어 있고, 대승보살수행으로 내세웠던 6바라밀은 중생교화 위주의 4바라밀을 더한 10바라밀로서 제7지에 배대되어 있습니다. 사성제·십이연기관·10바라밀 등이 다 같은 십지 보살의 수행법인 것입니다. 더 나아가 차례차례 점차적인 계위로 보이는 각각의 지위도 일위일체위(一位一切位)로서 서로 다른 자리가 아닙니다. 하나의 지위가 일체 지위이고, 하나의 지위에 일체 지위가 다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화엄수행의 특징을 부연해서 정리해보겠습니다.

먼저 화엄보살의 수행은 하나와 전체가 상즉하고 상입하는 무애행이고, 전체와 부분이 다르지 않은 육상원융(六相圓融)의 바라밀행입니다. 항포차제가 뚜렷하면서도 하나가 이루어지면 일체가 이루어지는 원융수행으로서 중중무진행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보살행이 다 불세계 장엄이니 원인과 결과가 둘이 아닌 인과동시의 인행이고 인과동시의 과행입니다. 처음 보리심을 일으킬 때가 바로 정각이며, 찰나에 무량겁의 수행이 한꺼번에 다 드러나는 찰나성불입니다.

또 화엄법계는 일체가 해인삼매에 나타난 존재이고 오직 마음이 만든 것입니다.[唯心造] 그래서 그 일심을 밝혀, 일체가 여래성기 즉 여래출현임을 보아 아는 것이 화엄수행의 으뜸이라 생각됩니다.

한국화엄의 전통을 이룬 의상 스님의 ‘법성게’에서는 방편으로 진성수연(眞性隨緣)의 보살도를 시설하고 있으나, 실은 예부터 성불한 구래불이니 오척되는 자신이 법성성기의 법성신(法性身)임을 관하여 10불(十佛)로 출현하게 합니다. 의상 스님은 또 ‘화엄경’의 문문구구가 다 부처님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화엄경’을 보는 것이 곧 부처님을 보는 것입니다. 부처님을 보는 것이 부처님의 일체지(一切智)를 보는 것이고, 부처님의 마음을 보는 자기 마음을 보고 그 마음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화엄경’을 보는 것이 바로 견성의 길이라 하겠습니다.

해주 스님 동국대 명예교수 jeon@dongguk.edu

 

[1566호 / 2020년 12월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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