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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출가자의 정체성 (끝)

기자명 정원 스님

계율 함부로 하고서 전등록에 올라간 이는 없다

율장엔 승가·출가자 정체성 담겨
현행 종헌종법은 율장정신 미미
율장은 구족계 위한 의례 수준
계율, 스님·재가자 삶 영향 줘야

‘사분율장’을 배우면서 율장 속에 드러난 이상적 승가 모습과 현실에서 작동하는 승가 모습 사이에서 느껴지는 괴리감과 출가 수행자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갈등에 직면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 한국불교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의문과 관심도 깊어졌고 다른 나라의 불교에 대한 궁금증도 일었다. 율장에 의거하여 수행하는 도량이 대만에 있다는 것을 알고 의덕사에 갔었다. 6개월 정도 머물면서 하안거와 구족계 수계산림만 보고 돌아오려던 계획이 6년으로 바뀐 것은 출가자의 정체성은 율장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실천을 기반으로 한다는 확고한 믿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불법은 누구나 배울 수 있고 수행도 각자의 상황에 맞춰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오직 승가에만 독점적으로 적용되는 율장은 승가와 출가자의 정체성을 제시하는 유일한 잣대이다. 독신 수행승 중심의 조계종단은 나름대로 체계적인 시스템을 구축해가며 출가자 삶과 승단운영을 직접 관리하고 있다. 원리적으로 보면 스님들 존재양식과 의식주 생활을 규정하는 것은 ‘사분율장’ ‘청규’ 그리고 대한불교조계종 종헌종법과 규칙, 소속사찰 내부규정 등으로 복합 구성돼 있으나 생활에 큰 영향을 끼치는 건 종헌종법과 규칙이다. 문제는 종헌종법이 삼권분립에 입각한 민주주의 조직운영과 관리방식이 강하게 반영돼 있는 반면, 부처님께서 청정승가와 출가자의 표준으로 정해둔 율장의 승가 운영방식과 출가자의 생활기준을 미미하게 담고 있고 때론 율장정신에 어긋나는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조계종 단일계단 설립 40년 역사를 말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율장은 여전히 구족계를 위한 통과의례로 쓰일 뿐 수계 이후 학계(學戒)와 지계(持戒)의 단계까지 넘어가지 못하고 있다. 계목 발생원인과 다양한 함의를 현대 승가공동체가 어떻게 구현해 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들도 부족하다. 그러니 수행과 교화의 과정에서 직접적인 행동원리로 사용되지 못하는 현실이다. 율장이 지닌 진정한 효용과 가치는 율 조문의 학습에 있지 않다. 승가와 구성원이 전체로서 지켜야 할 바와 개인으로서 지켜야 할 바를 현실에서 적극적으로 실행하고 사용할 때 드러난다.

수많은 법이 만들어지지만 어떤 법도 만들어진 첫 모습 그대로 적용될 수 없으므로 해석이 중요하듯 율장 또한 마찬가지다. 승가의 내부 구성원들이 지켜야 할 ‘계율 내용과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한 학습과 논의, ‘계율을 잘 지킨다는 것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이고 진지한 담론이 종단차원에서 지금까지 이뤄지지 않았는데 이는 승가가 통렬히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더 늦지 않게 승가내부에서 율장을 재해석하고 적용할 수 있는 스님을 육성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 종헌종법과 규칙만으로 승가공동체를 규제하고 관리하려든다면 청정한 화합 승가를 구현하는 일은 요원하고 세속적 권력과 힘이 지배하는 또 다른 형태의 기이한 조직이 등장할 것이다.

선불교 전통은 복잡한 현대인들에게 여전히 매력적인 강력한 수행방식이다. 다만 우리 사회가 정의를 중시하고 결과중심에서 과정을 중시하는 구조로 바뀌면서 수행자를 바라보는 일반인들의 시선도 깨달음의 결과보다는 그 길로 가는 ‘과정’에 대한 평가비중이 높아졌기에 출가자의 위의와 행동을 제어하는 계율의 역할은 중시되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승가의 계율연구는 여전히 느리기만 하고 재가불자의 삶에도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문제를 올바로 인식하는 승가구성원이 많아지기를 바라면서 한 해를 달려왔다. 초학자의 선한 마음에서 비롯된 여정에 혹 잘못이 있었다면 참회하면서 독자 여러분들께 감사드린다.

마지막으로 세주묘엄 스님께서 생전에 하셨던 말씀을 공유한다. “계율을 함부로 하는 사람치고 ‘전등록’에 올라간 이가 없다.”

정원 스님 봉녕사 금강율학승가대학원 shamar@hanmail.net

 

[1567호 / 2020년 12월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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