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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스리랑카를 통해 본 인도와 한국 범패 (끝)

스리랑카 찬팅, 인도·당나라·한국 법언율조 잇는 중요한 연결고리

상좌부불교 종주국 네덜란드·영국 식민지 겪으며 승단 법통마저 단절 위협
미얀마·태국서 전계사 모셔와 법통 이었지만 빠알리 발음은 원 상태 계승
스리랑카 율조, 이웃나라 비해 풍부하고 유연하며 다양한 요성·시김새 특징

마하피릿 법루(法樓)에 둘러앉은 찬팅 승단. 갖가지 상징의 길상 법구들이 법탁 위에 차려져 있다.

사찰이 많아 ‘절 동네’로 불리는 데이왈라는 크고 작은 절이 셀 수 없이 많았다. 여성은 사원에 기거할 수 없으므로 시내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에서 매일 출퇴근하듯 했던 삐아라타나라마요는 데이왈라에서도 한국과 인연이 깊은 사원이다. 인도불교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이곳 스리랑카와 한국이 수교를 맺은 때는 1977년 11월14일. 봉선사 밀운 스님은 수교 직후부터 교류를 시작했고, 홍원사 회주 동주 스님은 한스교류협회장을 지내며 양국의 불교문화와 수행증진에 많은 씨앗을 뿌려왔다. 그리해 옛 도성 꼬떼(Kotte)의 라자 위하라, 최초의 빠알리 패엽경이 만들어진 알루위하라, 스리랑카 3대 불교성지 중 한 곳인 쓰리빠다의 스님이 한국을 오가며 홍법활동을 하고 있었다.

이외에도 여러 지인의 도움을 받았는데, 그중 유독 큰 도움을 주신 분이 소비타(Sobhitha) 스님이다. 소비타 스님은 스님으로서 대통령에 출마했을 정도로 사회적 발판이 막강해 수도 콜롬보의 중심사찰 강가라마를 비롯해 사리 이운 행사까지 다양한 신행에 초청해 주셨다. 특히 대통령가에서 행하는 밤샘법회와 그에 수반되는 악사들의 연주를 볼 수 있었던 것은 소비타 스님과 동주 스님의 공덕이 없었으면 도저히 만날 수 없는 행운이었다.

아쇼카 왕의 아들 마힌다 장로에 의해 불교가 전래된 스리랑카는 태국, 미얀마, 캄보디아로 불법을 전하며 남방 상좌부 불교 종주국으로써의 역할을 해왔지만 16세기 이후 포르투갈의 침공을 받으면서 전법의 위기를 맞았다. 네덜란드 지배(1655~1799)에 이어 영국 식민지로 긴 세월을 지나며 승단의 법통이 변방으로 숨어들거나 민간화되기도 했다. 해서 17세기에 미얀마와 태국에서 전계사를 모셔와 법통을 이었다. 현재는 태국으로부터 들어온 씨암파, 미얀마의 아마라푸라파·라마냐파가 주된 종파다. 가장 신도가 많은 씨암파는 옛 왕도였던 캔디와 그 주변 지역을 중심으로, 미얀마계열의 아마라푸라는 동부 해안지역에, 라마냐는 전국적으로 흩어져 있다.

민가의 거실에 차려진 마하피릿 망다파.
다르마야따니야 사원의 밤샘법회. 호법신으로 분장한 소년이 망다파 양옆에 서서 호위하고 있다.

스리랑카의 3대 신행은 포야데이(Poya day), 페라헤라(Perahera), 보리수공양을 들 수 있다. ‘포살(布薩)’ 혹은 ‘포월제(蒲月祭)’라고도 번역되는 포야데이는 부처님오신날, 성도재일․ 열반재일이 모두 음력 보름인 점과 보름제인 ‘웨삭(Vesak)’과도 관련이 있다. 그들은 매월 음력 보름을 금욕·참회의 날로 삼아 육식을 금하고 독경과 정진, 설법을 듣는 밤샘법회를 연다. 밤샘법회를 할 때면 사찰에서는 커다란 강당에, 민가에서는 저택의 거실 가운데 망다파(Maṅdappha, 法樓)를 설치하고 음성이 좋은 8~10여명의 스님들이 둘러앉아 경전을 외다 동이 틀 무렵 회향했다. 법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모두 흰옷을 입었고, 자정이 넘어갈 즈음에는 법식이 제공됐다. 흰옷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빠알리 찬팅을 들으며 법식을 나누는 장면은 마치 담마의 파티가 열린 듯했다.

돈황에서 발견되는 강창문학 중에 “팔관재를 지내는 긴 밤, 자정 무렵이 지나며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졸음을 못 이기고 있을 때 한 스님이 법좌에 올라가 큰 소리로 범패를 부르면 졸던 사람들의 정신이 열리고 잠을 깨지 않은 이가 없을 정도였다”는 대목이 있다. 한국에도 예전에는 밤재를 지냈고 “자정이 넘어갈 즈음 다들 졸음에 겨워할 때 한 스님이 징을 둥~ 치면서 화청을 하면 보살들 주머니 다 털렸다”는 일화가 있다. 재를 마치면 새벽녘이 되듯 스리랑카의 밤샘법회도 마찬가지였고, 공양 후 한 조각 챙긴 먹거리를 들고 돌아가는 모습 또한 비슷했다.

마하피릿의 ‘피릿’은 빠알리어로는 ‘Paritta’, 싱할리어로는 ‘Pirith’, ‘보호’라는 뜻으로 일종의 경전독송이자, 장엄염불이라고 할 수 있다. 마하피릿에는 ‘보호경’ ‘초전법륜경’ ‘망갈라숟따’ 등이 즐겨 애송된다. 빠알리어로 ‘망갈라’는 ‘축복’ ‘상서로움’ ‘좋은 예감’의 뜻을 지니고 있다. 이 경이 설해진 배경은 띠와띵사(도리천)의 천인들이 행복이 무엇인지 묻자 부처님께서 38가지 행복에 대해 설한 데서 비롯된다. 행복에 관한 법담은 사찰과 민간의 기도법회에 빈번히 송경되며, 임종에 처한 환자나 장례 찬팅에도 빼놓지 않고 염송된다.

캘러니아사원의 와불대에 꽃 공양을 하며 밤샘법회를 하고 있는 사람들.
캘러니아 사원의 종루. 한국에서 기증한 범종이 걸려있다.

초저녁의 마하피릿은 합송으로 시작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독송 릴레이가 이어졌다. “석가모니의 모국어인 빠알리어를 배우려면 스리랑카로 가라”는 말이 있듯이 이들의 율조에는 인도음악의 향취가 물씬 풍겼다. 스리랑카 각지의 빠알리 찬팅 율조는 무박절의 느리고 아정한 선율과 다소 신명나는 빠른 패턴의 두 가지가 있었다. 밤새도록 이어지는 긴 찬팅은 후반으로 갈수록 조금씩 빨라졌고, 빠른 패턴의 율조는 한국의 엇모리장단과 유사했다. 같은 빠알리 경전을 쓰고 있는 이웃나라 율조와 비교해 보니 미얀마의 찬팅은 선율의 장식음이나 요성이 거의 없고, 태국은 장식음과 요성이 있기도 하지만 스리랑카의 율조가 훨씬 풍부하고 유연한데다 다양한 요성과 시김새가 있다.

특이한 점 중 하나는 태국과 미얀마에서 “나모 따사~”로 시작하는 예경문을 스리랑카에서는 “나모따스~”로 발음하는 것이었다. 스리랑카의 여러 사원과 수행처 중 미얀마에서 법통을 이어온 사원에서도 ‘나모따스~’로 발음하는 것은 마찬가지였고, 선율 시김새도 미얀마와 차이가 있었다. 이러한 현상에 미루어 볼 때 태국과 미얀마로부터 전계(傳戒)해 오기는 했지만 빠알리 발음은 스리랑카 본래의 상태가 유지됐던 것으로 보인다.

스리랑카의 빠알리 찬팅에 ‘으’ 발음이 많아 모음을 장인할 때 ‘음소리’가 많았는데, 이는 영남범패의 짓소리에 있는 ‘음소리’와 유사했다. 뿐만 아니라 지속되는 음에 연속적으로 장식음을 구사하는 점이 영남범패 거성의 시김새와 흡사했다. 중국의 한어 성조의 형성과정에 인도에서 들어온 경전 번역이 영향을 주었고, 중국식 범패를 창안할 때도 범어 찬팅의 영향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중국 범패는 명·청대의 율조를 근간으로 하고 있어 스리랑카 찬팅 율조와는 많이 달랐다. 그에 비해 당나라에서 범패를 받아들인 한국의 사정을 보면 고려조에 티베트 영향을 받은 개성범패와 근대적 변화를 겪은 경제에 비해 영남지역 범패가 고제(古制)의 당나라 율조를 좀 더 많이 지닌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러한 점에서 스리랑카와 한국의 영남범패는 인도, 당나라, 한국의 법언율조를 잇는 중요한 연결고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남방지역 불교의식에 수반되는 율조는 수계식과 같은 의식에서는 빠알리 본래의 성조와 마뜨라(모음의 장단)가 엄격하게 지켜지지만, 마하피릿과 같은 장엄 찬팅은 밤새도록 찬팅을 해야 하므로 모음 장인과 그에 수반되는 다양한 장식음과 발성이 있다. 이러한 스리랑카의 빠알리 찬팅은 인도의 베다 찬팅과도 관련이 있고, 장식음과 요성 등 음악적인 면은 인도 전통음악 라가와 관련이 있음을 캘러니아대학 에디리싱혜 교수로부터 들었다. 그런가 하면 스리랑카와 인도에서 수학한 홍원사 주지 성오 스님은 스리랑카의 마하피릿과 같은 선율을 인도의 힌두 찬팅에서 들은 적이 있다고도 했다.

캘러니아 사원의 공양타주 악사들.

같은 남방불교권 문화를 비교해 보면, 미얀마에는 마하피릿과 같은 장엄율조가 없고, 목청 좋은 스님이 찬팅 활동을 하는 일종의 바깥채비와 같은 스님도 없다. 이것은 미얀마 승가의 엄격한 계율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비해 태국은 의례와 사찰 행사를 좀 더 화려하게 하는 편이다. 이를 말해주듯 스리랑카 사찰의식에서 화려한 타악절주를 보였던 사찰은 모두 태국 씨암파 계열이었다. 또한 스리랑카의 마지막 성도였던 캔디지역, 현재의 수도인 콜롬보와 남부지역, 한때 타밀족의 왕궁이 있었던 북쪽지역은 찬팅 율조의 미세한 차이가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스리랑카에는 민간인에 의한 찬팅도 있는데, 그들의 율조는 시김새와 요성이 보다 화려하다는 얘길 들었다. 대만에도 어떤 도교사원에서 유불도 합동제를 지내는 데 가사 장삼을 입은 세속 사제가 의례를 집전하며 범패를 부르는 것을 본 적이 있고, 어떤 곳은 세속 신도들이 법기 타주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사찰에서와 똑같은 범패와 법기 타주가 완전히 다른 느낌이 들었다. 음악 중에서도 종교음악은 행위자의 내면적 자세가 그 음악의 90% 이상을 차지하므로 악보로서는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이 있는 것이다. 티베트에도 겔룩파의 혁신 이전에 대처승에 의한 혼탁이 있었고, 한국의 조선 중기 이후 비승비속의 걸립패와 유랑악사들에 의한 범패의 세속화가 있었듯 불교 문화권 어디에나 범성의 세속화는 공통된 현상이다.

스리랑카를 비롯한 남방의 스님들은 매일의 끼니를 탁발이나 공양에 의지했고, 이에 대한 응공의례가 10~30분가량 소요되었다. 마을로 탁발을 다녀온 스님들은 식당에 차려진 불단에 탁발 음식을 올려 다나 뿌자(공양 기도)를 올린 후 식사를 하는데 그때가 대개 오전 10시 반 정도였다. 이러한 생활이 한국에서는 ‘마지’의식으로 행해지고 있다.

그간 둘러본 여러 불교국가 중 가장 먼 스리랑카의 풍속과 범패가 한국과 가장 친연성이 높은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뜻글자요 어순이 다른 한문을 덜어내고 보면 인도, 티베트, 미얀마 모두 소리글자에 상통하는 어순과 문화가 있어 중국의 만리장성을 걷어차 버리고 싶기도 하지만 서건동진의 교량에 대한 고마움을 가벼이 여길 수도 없다. 이외에 보리수공양 악사들의 상모 달린 모자, 스리빠다 순례와 불교 악가무 등 못다한 이야기는 훗날 서적을 통해 독자들과 만날까 한다.

윤소희 음악인류학 박사·위덕대 연구교수 ysh3586@hanmail.net

 

[1567호 / 2020년 12월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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