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사 전 한문불전승가대학원장 선지 스님
동화사 전 한문불전승가대학원장 선지 스님
  • 정리=주영미 기자
  • 승인 2021.01.11 16:00
  • 호수 156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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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닮겠다는 발원과 실천이 보살의 생명입니다”

화엄경 십주품은 보살이 되는 과정을 10단계로 나눠 설명
보살은 불도 성취·중생구제 원력으로 복과 지혜 닦는 분
보살과 같은 마음으로 실천할 때 인간 문제도 모두 해결돼

오늘 말씀드릴 부분은 ‘화엄경’ 십주품(十住品)입니다. 십주품은 보살께서 불도를 이루겠다는 원력으로 한 걸음 두 걸음 진리의 세계를 향해 닦아 나아가는 과정을 열 단계로 나누어서 설명한 부분입니다. 불도를 이루겠다는 원력,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원력은 상구보리 하화중생입니다. 직접 실천을 닦아 나아가는 것이 바로 보살입니다.

보살은 구하지 않고 닦는 지혜 있는 분들입니다. 그래서 원과 행은 보살의 생명입니다. 십주에서 주(住)란 머무름인데 지혜에서 물러나지 않는 게 바로 보살의 수행과정입니다. 

‘화엄경’을 ‘인설이요 과설’이라고 합니다. 닦아서 점점 여래의 세계로 올라간다는 이야기가 인행을 말한 것이고, 반대로 과설은 부처님 입장에서 중생 속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에 대한 행을 말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화엄경’에는 원융무애설도 있습니다. 원융이라는 것은 다 통한다, 무애는 걸림이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인행과 과행이 다 통용돼 동시에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행과 과행은 모두 한마음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중생의 관점에서는 ‘화엄경’이 인행의 말씀이고, 여래의 세계에서는 과행의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전체로 볼 때는 원융이라고 합니다. 인행이든 과행이든 원융이든 결국 여래장 일심상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심성설 또는 유심설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여래의 세계로 볼 때는 여래가 중생으로 계시는 모습이고, 또 중생으로 보면 여래의 세계에 머무는 보살행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화엄사상은 인과교철(因果交徹)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중생과 여래가 함께한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인과교철이요 원융무애다, 이것이 화엄사상입니다. 

보살의 내용을 잘 말하고 있고, 읽기도 이해하기도 쉬운 것이 바로 십주품입니다. 대승불교에서 말하는 보살이 어떤 성격인가를 설명하는 품이기도 합니다. 십주품을 보면 보살이 어떤 인격체고 어떤 역할을 하며 어떤 행을 하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십주품에서는 부처님 가피와 삼매의 인연을 말합니다. 대승경전에서는 인간의 모든 문제를 삼매로 해결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삼매에 들면 해결하지 못할 것이 없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모든 고통은 어디서 나오는가, 번뇌 망상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불교의 인생관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삼매란 무엇입니까? 청정심이요 대지혜요, 대열반이요 적멸이라는 겁니다. 바로 삼매를 성취하고 보면 해탈이요 열반이요 극락이라는 겁니다. 근본은 삼매에서 이뤄진다는 겁니다. 이것을 보면 오늘날 인간 문제, 중생 문제를 해결할 때 어떻게 할지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바로 마음을 닦아야 합니다. 인간의 문제는 어떤 방법으로도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마음 닦는 길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공정한 사회의 도덕성에 대한 정의가 무엇입니까? 정의를 회복할 방법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마음 닦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불교에서 강조하는 명상이니 선정이니 반야니 하는 모든 것이 마음을 닦는 겁니다. 

삼매란 무분별이라고 합니다. 무분별이라는 말은 망상이 없다는 말인데 바로 청정심이요 불가사의함이요 여기에서 힘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삼매는 여래의 위신력과 본인이 닦은 선근의 힘이 원융해서 나옵니다. 보통 불교가 타력이냐 자력이냐를 놓고 논쟁하는데 화엄에서는 자력과 타력이 함께 나옵니다. 바로 이러한 삼매에서 법문을 합니다. 

그렇다면 법문을 왜 합니까? 십주품에서는 이렇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부처님 지혜를 자라게 하고, 법계에 깊이 들어가며, 중생의 세계를 알고, 들어가는 바가 걸림이 없고 행하는 바가 걸림이 없게 하며, 같을 리 없는 방편을 얻게 하고, 지혜의 성품에 들어가고, 모든 법을 깨닫게 하며, 모든 근기를 알게 하고, 모든 법을 능히 설하게 하는 연고입니다. 이른바 모든 보살은 10가지 주처를 일으킨다고 했습니다. ‘화엄경’에서 보살이 머무는 곳에서 설법하는 이유가 이렇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보살이 머무는 열 가지는 무엇인가. 이른바 발심주(發心住), 치지주(治地住), 수행주(修行住), 생귀주(生貴住), 구족방편주(具足方便住), 정심주(正心住), 불퇴주(不退住), 동진주(童眞住), 법왕자주(法王子住), 관정주(灌頂住)가 됩니다. 그러니까 ‘화엄경’에서 보살이 닦아가는 점차가 바로 52단계인데 십신, 십주, 십행, 십회향, 십지, 등각, 묘각 이렇게 해서 52단계로 점차 나가며 십신을 거쳐서 지금 십주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첫째는 발심주입니다. 보살도의 시작은 믿음에서 시작되고 보살도를 성취하겠다는 믿음, 그러니까 처음으로 마음을 내는 것이 바로 발심주입니다. 발심주에서는 부처님 형상이 원만하고 단정하여 사람들이 보기를 즐겨하고, 가르침을 들으며, 혹은 중생들이 온갖 고통 받는 것을 보게 됩니다. 중생들이 온갖 고통 받는 것을 본다는 건 보리심을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보리심을 내면 온갖 지혜를 구하고 그로 인해 성불을 구한다는 뜻입니다. 두 번째 보살이 머무는 곳은 치지주입니다. 자기 마음을 다스린다, 자기 마음을 닦아간다는 이야기입니다. 치지주에는 10가지 배움이 있는데 이것 역시 화엄의 수행법입니다. 외우고 익혀서 많이 아는 것, 즐겁고 고요해 바르게 생각하는 것, 선지식을 친견하는 것, 화평하게 말하는 것, 말할 시기를 아는 것, 두려운 마음이 없는 것, 이치를 잘 아는 것, 법대로 행하는 것, 어리석음을 여의는 것, 동하지 않는 것이 바로 치지주에서 배우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수행주입니다. 일체법에 밝고 깨끗한 지혜를 증장하며 머무는 것입니다. 이 수행주 역시 10가지 배움이 있습니다. 중생계, 법계, 세계를 관찰하고 지계, 수계, 화계, 풍계를 관찰하며 욕계, 색계, 무색계를 관찰하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생귀주입니다. 귀한 곳에 나는 세계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정법 속에서 생긴 부처님의 세계라는 것입니다. 이때 보살은 신심이 있습니다. 신심이 있는데 무엇을 믿는가 하면 불공덕(佛功德)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불공덕이라는 말은 청정불심입니다. 인과를 믿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금강경’에 보면 ‘통달무아법자 진시보살(通達無我法者 眞是菩薩)’이라는 법문이 있습니다. 무아법을 통달한 분이 바로 참된 보살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보살은 신심 있고 서원이 있으며 부지런히 복과 지혜를 닦는 분입니다.  다섯째는 구족방편주입니다. 법을 듣는 지혜에 의거해 중생을 교화하고 이익을 주는 방편을 구족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중생을 위해 끊임없이 선근 공덕을 닦는다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여섯 번째의 정심주는 부동심이라는 뜻입니다. 다 정해진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동요하지 않는 마음, 바로 이것이 정심주입니다. ‘화엄경’에서는 부처님이 중생 속에 나타납니다. 사실은 중생이 부처님과 무관하다면 중생이 화엄을 배울 필요가 없고 관심 가질 필요도 없습니다. 부처님이 다 중생 속에 나타나고 중생이 다 부처님 앞에 나타납니다. 그래서 발심하기만 하면 여래의 집에 태어난다고 했습니다. 바로 부처님의 힘을 이어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일곱 번째는 불퇴주입니다. 퇴보하지 않는 머무름입니다. 그리고 여덟 번째는 동진주입니다.  갈등이 없고 뒤섞이지 않는 것입니다. 조작이 없다는 겁니다. 절에서는 15세 이전에 출가한 분을 동진출가라고 합니다. 사실은 아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순진하고 갈등이 없는, 뒤섞이지 않는, 신구의 삼업이 동자와 같이 순진무구한 것을 동진이라고 합니다. 진정한 동진출가는 마음이 그렇게 되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아홉 번째는 법왕자주입니다. 그곳에 가면 불지에 오른다고 합니다. 부처님이 되는 것입니다. 열 번째 관정주(灌頂住)는 왕자가 관정식에서 취임하는 것과 같이 보살이 일체 종지를 얻어 최고의 지위에 오르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마지막 가장 높은 보살의 정신세계입니다. 

경전에서는 마음을 무표색이라고 합니다. 마음 세계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같이 머물러 있는 것 같지만 천리만리입니다. 좁은 한 방에 살아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보살의 세계는 바로 법왕자, 관정주에 머무는 보살들도 최고의 경지를 다 알 수가 없다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십주품을 마치게 됩니다. 부처님 공덕은 어떠한 말로도 어떠한 글로도 설명을 다 할 수 없습니다. 깨달음의 공덕을 성취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정각 공덕을 성취했기 때문에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셨습니다. 정각의 지혜에서 보면 바로 보살의 마음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보살의 마음이 바로 무아, 무법이기 때문에 우리가 끝없는 공덕을 닦을 수 있는 것입니다.

정리=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이 법문은 지난해 12월24일 영축총림 통도사 설법전에서 봉행된 ‘화엄산림 대법회’ 10일차 법회에서 선지 스님이 ‘십주품’을 주제로 설한 내용을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1569호 / 2021년 1월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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