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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기자명 김준희

옛 형식에 새 관념 담아 더 높은 차원 선보여

엄격한 형식 속에 음악적 발상·감정 박력있게 드러내
낭만주의시대에 형식·구성 지켜 건실한 음악세계 펼쳐
두타제일 마하가섭존자의 청렴·굳건한 인격에 비유돼

피아노 앞에 앉은 브람스(Von Bekerath 그림, 1911).

요하네스 브람스는 1853년 슈만과 클라라를 만나 자신이 작곡한 피아노 소나타 1번, Op.1을 연주했다. 그의 연주를 들은 슈만은 ‘신인(神人)과 미(美)의 여신 세 명이 지켜보았다’라는 평론으로 스무 살의 청년을 극찬했다. 신중하고도 진지했던 청년 브람스는 평소 존경하던 선배 음악가의 찬사에 ‘제 능력 이상의 칭찬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발표할 작품들에 상당히 주의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편지를 쓰기도 했다.

브람스는 그의 첫 피아노 협주곡을 1854년부터 4년여에 걸쳐 작곡했다. 원래 교향곡을 작곡하려던 그는 처음에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를 작곡하여 첫 악장을 관현악곡으로 편곡하기도 했었다. 주변의 호의적인 반응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작품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브람스는 1855년 2월 클라라 슈만에게 편지를 쓰면서 작곡가로서의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나의 불행한 교향곡은 피아노 협주곡으로 사용되었습니다.”

피아노 협주곡 1번 D단조, Op.15는 일반적인 피아노 협주곡에 비해 관현악의 비중이 매우 높고 피아노 파트 역시 그와 대등하거나 혹은 때때로 그 존재감을 부각시키는 유기적인 관계로 구성되어있다. 원래 교향곡을 염두에 두고 작곡을 했기 때문이다. 고전시대의 형식을 차분하게 표현하고 있으며 곳곳에 약간의 과도한 오케스트레이션도 뜨거운 열정과 넘치는 패기로 가득한 청년 브람스의 모습이 담겨있다. 

장엄하게 시작되는 첫 번째 악장은 마치 지진이 일어난 것 같은 오케스트라의 서주로 시작된다. 팀파니를 필두로 현악기의 강렬한 트릴과 관악기의 깊은 울림이 담긴 선율들이 교차되고 두 개의 주제가 번갈아 나오며, 긴 오케스트라의 서주 속에 피아노가 D단조의 으뜸화음을 연주하며 등장한다. 폭발적인 1주제와 차분하고 담담한 2주제의 대비가 돋보이는 1악장은 전체적으로 웅장하고 격렬하며 때로는 애틋한 정서를 나타낸다. 10세부터 리사이틀을 열 정도로 재능 있는 피아니스트였던 브람스답게 피아노 파트에서 다양한 기교와 풍부한 서정성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느린 2악장은 잔잔한 현악기의 음색 위에 펼쳐지는 목관악기의 선율이 아름답게 펼쳐지며 고백적인 기운으로 가득한 피아노 파트는 오케스트라와의 대화를 이끌어나간다. 짙은 상념이 가득한 2악장에 이어지는 3악장은 활기찬 분위기의 론도 악장이다. 빠르지만 지나치지 않게(ma non troppo) 연주되는 주제들은 당김음을 바탕으로 진행되기도 하고 캐논 풍의 바로크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경쾌하면서도 때로는 애잔한 분위기도 동시에 느껴지는 3악장은 끝 부분에 이르러서는 1악장의 주제를 회상하고 환상곡풍의 코다를 거쳐 D장조로 활기차게 마무리 된다. 

음악학자 롤랑 마뉘엘은 ‘음악의 기쁨’에서 “브람스는 힘들이지 않고도 풍부한 감성을 형식의 요구에 맞출 줄 아는 작곡가”라고 했다. 브람스에게 형식은 절대적인 것이었고, 형식이 엄격할수록 음악적인 발상을 나타내는 데 수월하고, 형식을 통하여 감정을 박력있게 드러낼 수 있었다. 브람스가 낭만주의가 무르익었을 때 활동했지만 고전주의적인 형식 체계를 지키면서 낭만주의적인 정서를 결합할 수 있었던 이유이다. 그는 당시의 작곡가들과는 달리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한 스타일의 작품 대신 형식과 구성을 엄격하게 지키면서 자신만의 건실한 음악 세계를 펼쳤다.

비엔나 칼스플라츠의 브람스 기념상(1908).

“들뜨지도 건들거리지도 않고 현명해서, 일체의 감관을 잘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은 누더기옷을 걸치고 있어도 훌륭하게 보인다. 마치 산속 동굴에 사는 사자처럼.” 테라가타 1081게를 살펴보면 연주자의 극단적인 화려한 기교와 방대한 규모의 작품이 환영받던 낭만주의의 끝 무렵 브람스가 굳게 지킨 자신만의 음악적 신념이 떠오른다. 부처님의 제자 중 두타제일(頭陀第一) 마하가섭(摩訶迦葉, 마하카캇사파)의 청렴하고 굳건한 인격도 함께 비유해 본다.

안락함을 추구하고자하는 승가의 변화에도 동요하지 않고 찬 숲과 바위틈에서 누더기만을 걸치고 자신만의 두타행을 실천하는 가섭에게 부처님은 “그대도 이제는 나처럼 정사에서 지내며 가볍고 부드러운 옷을 입어라”고 말씀하셨지만 그는 두 가지 이익을 얻는 이유를 들어 정중하게 거절했다. “저는 부처님처럼 두타행을 실천하며 고요하고 안락한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또 훗날 과거 부처님 제자들이 분소의를 입고 아란야에서 지내며 걸식으로 살아갔다고 회상할 때, 그런 이야기를 듣는 사람도 생각하는 사람도 모두가 환희심을 일으킬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 두 가지 이익이 있으므로 저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두타행을 찬탄하고 계속 실천하겠습니다.” 마치 브람스가 옛 형식에 새로운 관념들을 담아내어 ‘고전파와 낭만파의 상호모순적인 어려움을 더 높은 차원에서 합쳤던’ 지혜롭고도 믿음직한 행보였다. 

브람스는 첫 번째 협주곡이 초연된 지 20년이 지나 협주곡 2번 Bb장조, Op.83을 완성한다. 그는 “두 번째 협주곡은 더 좋은 곡을 쓰겠다. 아주 다른 울림의 작품이어야 한다”고 다짐했다. 큰 강처럼 장중하고도 유유하게 흐르는 이 곡은 전작에서 피아노가 오케스트라와 대결 구도를 펼치는 것과는 다르게 피아노 파트가 오케스트라에 완전히 융화되면서도 빛나는 화려함을 자랑한다. 

하나의 피아노 교향곡과 같은 이 작품은 ‘사랑스럽고 연약한’ 스케르초악장을 포함해 모두 4악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꿈결과도 같은 첼로의 선율로 시작된 선율이 클라리넷과 대화를 나누다가 피아노가 이어받는 3악장은 이 곡의 백미다. 전체적으로 탄탄한 구성미를 보여주는 이 곡은 청중에게 상당한 주의력을 요구한다.

지천명의 나이에 두 번째 협주곡을 탄생시킨 브람스의 굳건한 음악적 신념을 가섭존자의 꿋꿋한 성정에 비유해본다. 부처님께서는 누더기를 걸친 허름한 모습의 가섭존자를 알아보지 못하는 수행자들에게 당신 자리의 반을 내어주시며 앉을 것을 권하기도 했다. 가섭이 당신과 같은 경지에 도달한 성자라고 하며 수행자들을 교화시킬 정도로 부처님께서는 그의 고결한 인격과 수행을 신뢰했기 때문이다. 일찍이 슈만의 믿음을 얻었던 브람스는 음악계의 가섭존자와도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낭만주의 시대의 노송(老松)과 같은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을 들으며 신축(辛丑)을 맞이해본다.

김준희 피아니스트 pianistjk@naver.com

 

[1570호 / 2021년 1월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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