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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 시대의 법회

재공양만 있고 설법하지 않아도 사찰일까

스님들 법보시와 재가불자들의 재보시가 만나는 곳이 절
재공양만 올리고 설법 없으면 법시 기회 상실은 불가피
양력 위주 사회에서 불교 음력행사 타당한지 검토 필요

신규탁 교수는 “법시(法施)와 재시(財施)의 근본정신을 생각할 때에 일요일에 하는 법회가 되었든 음력으로 올리는 재공양(齋供養)이 되었든 설법’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사진은 사찰에서 49재를 지내는 모습. 법보신문 자료 사진
신규탁 교수는 “법시(法施)와 재시(財施)의 근본정신을 생각할 때에 일요일에 하는 법회가 되었든 음력으로 올리는 재공양(齋供養)이 되었든 설법’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사진은 사찰에서 49재를 지내는 모습. 법보신문 자료 사진

코로나19로 인해 여러 방면에서 우리들의 일상이 달라지고 있다. 전염병의 확산을 줄이려면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야 한다고 하지만, 사람이란 사람을 만나서 살게 마련인데, 참으로 딱한 일이다. 먹고 사는 문제와 관련된 현장의 타격은 더욱 심각하다. 학생들의 교육도 큰일이다. 그럼에도 전염병의 심각성을 공감하고 모두들 인내하며 당국의 지침에 협조하고 있다.

그런데 종종 일부 교회의 일탈이 세상에 보도된다. 방역 당국에서 ‘종교행사’도 예외일 수 없다고 강조하자, 왜 ‘종교행사’라는 포괄적 표현을 쓰냐는 항변도 생기고 있다. 콕 찍어서 ‘교회’라고 했으면 명실상부할 텐데. 절이나 성당의 ‘종교행사’에서 집단감염이 생긴 사례는 거의 보고된 바 없으니, 그도 그럴 만도 하다.

전염될 위험성도 높고 또 방역지침을 어겨 사회적 비난도 쏟아지지만, ‘주일’이니 예배드리러 안 갈 수도 없다. 꼭 가야하는 이유야 이것저것 있겠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주일성수’ 즉 주일을 거룩히 지키려는 성경의 전통이다. 신자들의 기본 ‘의무’이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종교행사’라 이름 붙일만한 정기 집회는 흔하지 않았다. 근대 사회로 이행되면서 기독교의 전래와 함께 생긴 일인데, 이제는 이 또한 우리의 역사가 되었다. 기독교 신자들이 일요일마다 교회 가서 예배드리는 일은 세상의 상식이 되었다.

일요일의 종교행사가 사회적 문제로 이슈화된 이 마당에, 불교의 종교행사도 돌아보자. 종학(宗學)의 연구 뒷받침이 절실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럼, 절에서 하는 ‘종교행사’는 어떤 게 있는가? 비정기적인 것으로는 개인이나 가족 단위로 올리는 ‘불공’이나 ‘천도’ 또는 ‘제사’ 등이 있다. 정기적인 것으로 각종 재일(齋日) 기도가 있다. 모두가 매달 음력으로 날을 정했는데, 초하루 신중기도, 보름 인등기도가 있다. 역시 음력으로 매월 8일 약사재일, 18일 지장재일, 24일 관음재일 기도가 있다. 시대 부응에 따른 불교 내부의 반성으로, ‘일요법회’를 개최하는 절도 상당히 있다.

한편, 해마다 규칙적으로 행하는 종교행사가 있는데 물론 음력이지만, 정월에는 설 합동차례와 정초신중불공 및 대보름방생, 2월에는 8일 출가절과 15일 열반절, 4월에는 8일 부처님오신날, 7월에는 7일 칠석과 15일 백중, 8월에는 추석 합동 차례, 12월에는 8일 성도절 등이 있다. 절기에 따른 행사로는 양력 2월의 입춘과 12월의 동지가 있다. ‘수능 100일 기도’도 생겼다.

‘코로나 시기’에 제일 타격을 많이 받은 불교의 종교행사는 부처님오신날 행사였다. 많은 인원이 모이는 행사이기 때문이다. 개인이나 가족 단위로 하는 불교의 종교행사는 모이는 사람이 한정되니 상대적으로 어려움은 적은 듯하다. 또 대개는 음력으로 하니, 직장이나 학교 다니는 사람은 아예 못 간다. ‘일요법회’를 하는 절도 있지만, 도심에 있는 일부 절이고 게다가 꼭 참석해야 한다는 불교 교학적 ‘의무’도 없다.

여기에서 우리는 근본적인 문제를 생각해보자. ‘절’이란 무엇이고 ‘절’에는 왜 가는가? ‘절’은 출가 수행자들이 생활하고 수행하는 공간이다. 그럼, 재가자들은 거기를 왜 가는가?

인도에서 ‘절’이 생긴 유래를 보자. 석가모니 부처님 당시, 왕이나 큰 부자가 출가 수행자들에게 땅과 건물을 시주하면서 ‘절’이 생겼다. 주거 문제는 이렇게 해결되었고, 먹는 것은 하루 한 번 일정한 시간에 마을로 내려가 걸식(乞食)을 했다. 옷은 버려진 누더기를 기워 입었다. 때로는 시주님들이 스님들 계시는 곳으로 가서 옷이나 음식이나 약 등을 공양했다. 그러니 재가자들이 절에 가는 이유는 스님들께 공양 올리기 위함이고, 간 김에 스님께 지혜의 말씀 듣기 위함이다. 스님네의 ‘법시(法施)’와 시주님네의 ‘재시(財施)’가 만나는 곳이 절이다.

이런 불교가 중국에 들어와서는 왕이나 귀족들이 넓은 농토를 시주했고, 출가자들은 그 땅에서 나는 소출로 살았다. 농사 일꾼을 두거나 소작을 주기도 했고, 때로는 스님들이 손수 농사를 짓기도 했다. 걸식의 전통은 사라졌고, 절에 취사도구를 마련해서 식사를 해결했다. 이렇게 세월과 지역에 따라 출가자의 사는 모습은 달라졌지만, ‘재가자의 재시와 출가자의 법시’ 정신은 여전히 이어져 왔다.

법시(法施)와 재시(財施)의 근본정신을 생각할 때에, 일요일에 하는 ‘법회’가 되었든 음력으로 올리는 ‘재공양(齋供養)’이 되었든, ‘설법’은 매우 중요하다. 출가자와 재가자가 만나는 중요한 접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가 깊이 생각해 볼 것이 있다. 정기적으로 절에 가는 날짜가 음력이면 직장이나 학교 다니는 사람은 그 만남에 참여할 수가 없다. 세상은 요일별로 살아가는데, 아무리 전통이라지만 음력을 언제까지 고수할 것인가? 또 ‘재공양’만 올리고 ‘설법’이 없다면 위에서 말한 ‘법시’의 기회는 어쩌란 말인가?

‘일요법회’의 절차를 보자. ‘삼귀의-찬불가-반야심경독송-청법가-설법-사홍서원-산회가’이다. 공양 의례 절차가 없다. 혹 어떤 절에서는 ‘전통 방식’으로 1시간 상단과 중단에 공양 올리고, 이어서 ‘삼귀의’를 시작으로 ‘산회가’까지 해 마친다. 약 2시간 걸쳐서 말이다. 근대식 교육에서 50분 강의하고 10분 쉬는 것이 다 이유가 있는데 말이다.

절차도 그렇다. 소위 ‘전통 방식’에서 이미 절에 불상을 앉혀 모셨는데 ‘거불-유치-청사-헌좌’를 왜 해야 하나? ‘삼귀의’는 입교의식이지 않는가? ‘가영’을 했으면 되었지 ‘찬불가’를 왜 중복해서 하나? ‘청사’에서 법신 비로자나불, 보신 노사나불, 화신 석가모니불을 오시라고 청해놓고도, ‘예참’에서는 ‘지심귀명례 삼계도사 사생자부 시아본사 석가모니불’만 하고, 법신과 보신께는 왜 인사를 안 하는가? 한문(漢文)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한글로 의례문을 통일하도록 종단 중앙에서 각 절에 명령하면 안 되는가?

설법은 또 어떤가? 설법이란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하는 것이고, 부처님의 가르침은 기본적으로 경·율·론 3장(藏)으로 기록되어 오늘에 전한다. 그럼 그것이 ‘기본’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게다가 3장 중에서 경장만 하더라도, 요의경(了義經)과 불요의경(不了義經)이 있고 실교(實敎)와 권교(權敎)가 있다는데, 무슨 기준으로 그것을 나누어 ‘기본’을 삼을 것인가?

일요법회를 포함해서 절에서 열리는 종교행사가 위에서 소개한 것처럼 하고 많은데, 모두 출석해야 하는가? 직장이나 학교를 가야 하는데 음력으로 하니 어쩌면 좋은가? 종단의 교학 즉 종학(宗學)에 기초해서, 종단 별로 공통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코로나 시기 종교행사에 즈음하여 전면적인 검토와 대안이 모색되기를 기대한다.

신규탁 연세대 철학과 교수 ananda@yonsei.ac.kr

[1574호 / 2021년 2월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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