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사랑 ④
28. 사랑 ④
  • 박희택
  • 승인 2021.02.23 09:36
  • 호수 157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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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은 무조건적인 사랑이 아니다

인은 삶과 공동체 궁극적 이치
인 행하는 군자가 이상적 인간
인은 맹목적인 사랑이 아니기에
행위 따라 사람 미워할 수 있어

인애(仁愛)에 관한 철학적 해석은 보다 풍부하게 사랑을 이해하게 해준다. 신유학(성리학)의 정초를 닦은 정이천은 인 자체는 성이며(仁自是性), 애 자체는 정이다(愛自是情)고 해석했다.(‘근사록’ 도체류35). 본성의 이치를 궁구하는 성리학의 관점에서 공자 이래 유학에서 특별히 강조돼 온 인을 인간의 본성으로 본 것이다.

그러면서 맹자가 측은지심을 인의 단서(‘맹자’ 공손추 상6, 고자 상6)라 했지 인 자체라 하지 않았음을 상기시키고, 한퇴지가 박애를 인이라 한 것도 잘못이며 더구나 애는 인과 등치될 수 없다고 했다. 인에 박애나 애가 포괄될 수 있어도 그 역의 성립은 가당한 일이 아니라고 단언하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인과 마음의 관계를 궁금해하는 제자에게 정이천은, 마음이 씨앗이라면, 싹트려는 본성이 인이며, 싹튼 기운이 정이다(情·愛)고 비유해서 설명해 주었다(‘근사록’ 도체류36). 신유학의 심(心)-성(性)-정(情)의 논의체계에 입각한 설명이다. 이 관점은 본성인 인의 바탕을 마음으로 보았다는 점에서 측은지심을 인의 단서로 본 맹자철학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것이다. 바탕과 단서는 같은 범주에 있는 용어이다.

신유학은 성(性)을 심(心)의 체(體·본체)로, 정(情)을 심의 용(用·작용)으로 본다. 따라서 인을 측은지심의 체로, 애를 측은지심의 용으로 정리할 수 있다. 정이천은 같은 맥락에서 애는 인의 쓰임이며, 서(恕)는 인의 베품(施)이라고 논의를 더한다(‘근사록’ 위학류52). 측은지심의 쓰임이 애인데, 측은지심의 체인 인에 초점을 맞춰 인의 쓰임이 애라고 한 것이다.

맹자는 ‘본심(心)을 다하여서(盡) 본성(性)을 알게 되며, 본심을 보존하여서 본성을 기른다’고 심과 성의 관계를 개진한 바 있다(‘맹자’ 진심상1). 신유학은 이를 단초로 하면서도 불교의 주제인 심보다는 성에 초점을 맞춰 철학화했다고 하겠다. 

맹자는 “군자는 단지 인을 행할 뿐이다(‘맹자’ 고자하6)”고 하였거니와, 유학 도통(道統)에서 맹자를 계승하고자 한 정이천은 심-성-정의 논의체계에 맞추어 인과 애를 구별하여 철학적 해석을 심화해간 것이라 하겠다.

일찍이 공자와 제자들은 ‘논어’에서 인을 도(道)로 인식하였다. 유가의 도는 도가의 본체로서의 도와는 달리 궁극적 이치를 의미한다. 인이 우리 삶과 공동체의 궁극적 이치라는 것이다. 이상적 인간상인 군자의 길을 제시한 ‘논어’는 군자를 무려 107회나 언급하는데, 인에 대해선 그보다 2회 더 많은 109회를 언급해 가장 높은 빈도를 보였다. 인의 도가 군자의 길에서 궁극적 이치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109회 중 인이 무엇인지를 묻는 문인(問仁)이 7회 나온다. 이 중 사람을 사랑하는 애인(愛人)을 인이라고 정의한 것도 있다(‘논어’ 안연22). 인이 애인으로 발현됨을 말씀한 것으로써 신유학의 인애에 관한 철학적 해석의 기초로 손색이 없다. 

‘논어’에는 애인이 두 번 더 나온다. 군자의 정치리더십의 다섯 덕목의 하나로 애인을 말씀한 것이 있고(‘논어’ 학이5), 군자가 도를 배우면 사람을 사랑한다(‘논어’ 양화4)는 말씀도 있다. 학도가 학인(學仁)임은 말할 것도 없다.

인을 배우는 학인 공부에서 한 가지 유념할 것은, 유가에서 말하는 인은 결코 무조건적인 사랑이 아니라는 점이다. 공자는 “오직 인자만이 공정하게 다른 사람을 좋아할 수도 있고 공정하게 다른 사람을 미워할 수도 있다, ‘논어’ 이인3)”고 말씀하였다. 타인을 자기 기준이 아닌 공정의 기준으로 좋아하고 미워하는 이가 인자이자 군자인 것이다.

인의 이러한 탈맹목적인 사랑은 군자도 미워하는 네 가지가 있다는 직설과 부합된다. 어느날 자공이 군자도 또한 미워하는 것이 있는지 여쭙자, 공자는 다음과 같이 네 가지를 미워한다고 진솔하게 응답하고 있다(‘논어’ 양화24). 

“다른 사람의 단점을 떠벌리는 자를 미워한다. 수준이 비천하기가 탁한 도랑과 같으면서도 수준 높은 사람을 비방하는 자를 미워한다. 용감하기만 하고 무례한 자를 미워한다. 과감하기만 하고 질식할 정도로 앞뒤가 꽉 막힌 미련한 자를 미워한다.”

박희택 열린행복아카데미 원장 yebak26@naver.com

 

[1574호 / 2021년 2월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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