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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스카를라티의 소나타

기자명 김준희

스페인 색채 작품에 녹여낸 작곡계의 가전연

여타 바로크 작곡가 달리 불협화음 사용 주저치 않아
간결한 구조에 테크닉·다채로움 담아 명확한 메시지
‘논의제일’ 가전연존가처럼 쉽게 즐기는 소나타 선사

‘근대 건반악기 주법의 아버지’로 불리는 스카를라티의 초상.
경주 석굴암에 조성돼 있는 10대 제자상 가운데 가전연 존자(출처=문명대 저 ‘토함산석굴’).

서양 음악사에서 1685년은 상당히 중요한 해로 여겨진다. 바로크 시대 음악의 중심이 되는 작곡가인 요한 세바스찬 바흐와 게오르그 헨델이 태어났기 때문이다. 바로크의 또 한 명 주요 작곡가인 도메니코 스카를라티는 역시 바흐와 헨델과 같은 해에 태어났다. 스카를라티는 ‘근대 건반악기 주법의 아버지’라고 불릴 만큼 바로크 시대의 대표 작곡가인 동시에 훌륭한 하프시코드(Harpsichord, 피아노가 상용화되기 이전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의 대표적인 건반악기로 건반을 누르면 플렉트럼이 현을 뜯어 소리를 낸다) 연주자였다. 나폴리에서 태어난 그는 궁중 음악가였던 아버지 알레산드로 스카를라티로부터 어렸을 때부터 음악교육을 받았다. 수많은 오페라를 작곡했던 알레산드로는 아들에게 당대의 유명한 음악가들로부터 하프시코드 레슨을 받으며 작곡이론, 화성학, 대위법 등을 배울 수 있도록 했다.

스카를라티는 10대 시절에 오페라를 많이 작곡했고, 로마, 베네치아 그리고 팔레르모 등지에서 작곡활동을 이어 갔다. 그는 1719년 포르투갈 왕실의 초청을 받아 리스본의 궁정작곡가로 위촉 되었는데 이 시기에 포르투갈 공주였던 마리아 막달레나 바르바라와 그의 동생 돈 안토니오의 전속 음악 교사로 일하기도 했다. 또한 바르바라 공주가 스페인의 황태자와 결혼하였을 때 스카를라티도 동행하여 스페인 궁정에서 음악활동을 이어갔다. 그는 하프시코드 레슨을 위해 수많은 소나타를 작곡했다. 교육적인 목적을 가지고 작곡되었기 때문에 그의 소나타에는 다양한 건반악기 연주 테크닉이 담겨있다.

스카를라티의 소나타 A장조 K.212는 빠르고 경쾌한 작품으로 스페인적인 요소를 많이 담고 있다. 3박자 계열의 춤곡인 호타(jota)리듬을 바탕으로 작곡되었으며 첫 부분은 화려한 스케일로 시작된다. 중간 부분의 짧은 전타음을 가진 불협화음의 음향인 아치아카투라(acciaccatura)를 연상하게 하는 반복음과 트릴은 시작 부분과는 대조적으로 강렬한 느낌을 준다. 현대의 피아노로 연주하기에도 손색이 없는 이 작품은 하프시코드 건반 두 단을 모두 활용하여 연주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소나타 A장조 K.208은 아름답고 우아한 선율이 돋보이며 목가적이고 명상적인 분위기를 가졌다. 드물게 단일 모티브(주제)로 이루어져 있으며 조용히 반복되는 왼손의 베이스 위에 오른손의 주요 멜로디가 펼쳐지는 형태로 마치 쇼팽의 녹턴을 연상시키는 느낌이다. 레가토와 앞 꾸밈음, 그리고 선율의 표현력에 중점을 두어 긴 호흡으로 섬세하게 연주해야 하는 곡이다. 주제가 반복될 때마다 다양한 톤으로 연주되기도 한다. 

스카를라티는 훌륭한 작곡가이면서도 건반악기, 특히 하프시코드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기 때문에, 레슨을 위해서 소나타를 작곡하면서 그 안에 뛰어난 예술성을 함께 담았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정서를 담은 것도 물론이다. 스카를라티의 소나타는 대부분 2부 형식의 단악장으로 되어있다. 두 부분이 서로 유사한 성격의 ‘닫힌 형식’과 상반된 성격의 ‘열린 형식’ 구조로 되어있다. 

스카를라티는 짧은 모티브를 연속적으로 사용하거나 번갈아 가면서 배치한 간결한 구성의 작품들은 각각 스케일은 물론이고 3도, 6도, 연타음, 트릴, 아르페지오, 양손의 교차, 도약 등의 주요한 건반악기 연주 테크닉을 담고 있다. 또한 과감한 화성과 잦은 조옮김, 갑작스러운 휴지부의 사용으로 작품에 풍성함을 더했으며 바로크 시대의 다른 작곡가들과는 달리 불협화음을 사용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스카를라티의 소나타가 동시대의 바흐나 헨델 혹은 라모의 작품보다 구조적으로 훨씬 간결했고, 분명한 테크닉적 요소와 다채로운 분위기를 가질 수 있었던 이유이다. 필자는 개성을 담고 있는 스카를라티의 소나타의 한 곡 한 곡이 주는 명확한 메시지는 부처님의 10대 제자 중 ‘논의제일(論議第一)’ 가전연 존자를 떠올리게 한다. 

드물게 남인도의 아완티 출신인 대가전연(大迦旃延, 마하캇차야나)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법을 알기 쉽게 풀어 전하는 능력’을 가졌다. 부처님은 가전연을 두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의 성문 대중 가운데, 뜻을 가장 잘 파악하고, 아무리 많은 법을 들어도 총명하여 빨리 깨달으며, 조금만 설해주어도 남을 위해 널리 분별해 해설하는데 으뜸인 사람이 바로 가전연이다(‘증일아함’ 3권, 4 ‘제자품’).”

가전연은 부유한 바라문 출신으로 아버지 역시 국왕의 스승이었고 가문의 권력도 대단했다. 또한 그의 외삼촌은 부처님이 탄생하셨을 때 “전륜성왕보다 덕이 큰 부처가 될 것이다”라고 예언한 아시타선인이었다. 즉 가전연의 가문은 지성과 명예 그리고 재력을 두루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총명하고 학문적 능력이 출중했던 가전연은 외삼촌 아시타선인 곁에서 학문을 성취한 후 부처님을 만나 출가하게 된다. 조카를 후계자로 생각한 아시타선인은 가전연을 그가 생각한 최고의 스승인 부처님께 인도한다. 

부처님의 말씀이 너무 간략하거나 너무 길어서 잘 이해하지 못하는 제자들은 가전연에게 그 뜻을 물었고, 그는 비유를 통하여 쉽게, 혹은 자세하게 풀어내어 다시 설명해주었다. 가전연의 설명을 듣고 그 내용을 부처님께 빠짐없이 전한 비구들에게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가전연은 총명하고 말솜씨(辯才)가 뛰어나구나. 그대들에게 그 뜻을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설령 그대들이 내게 찾아와 물었더라도 나 또한 가전연과 똑같이 답변했을 것이다.”

‘증일아함’ 35권, 40 ‘칠일품’의 내용이다.

스카를라티의 소나타 A장조 K.322를 들으면 생기 넘치는 리듬과 우아한 선율, 그리고 다양한 테크닉을 짧고 간결한 논리로 담아내어 누구나 쉽게 듣고 즐길 수 있는 작품들을 500여곡이나 만들어낸 스카를라티의 능력에 새삼 감탄하게 된다. 언어를 분석하여 해설하는데 뛰어났던 가전연처럼 그 역시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의 색채를 이탈리아 건반 소나타 안에 잘 녹여내었다. 스카를라티의 소나타를 들으며 논리와 분석을 통해 간결한 설법으로 불법을 쉽게 풀어 전달했던 최고의 포교 전법사(傳法師) 논의제일 마하가전연을 떠올려본다.

김준희 피아니스트 pianistjk@naver.com

 

[1574호 / 2021년 2월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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