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4. 통도사에 핀 지장매

기자명 최명숙

자기 마음 속 중심 세우고 사는 일

아이와 엄마의 대화듣고 든 상념
같은 생명인데 고통 차이 있으랴
역경에도 매화같은 꿋꿋함 필요

한 겨울 매서운 추위를 견디고 피어난 통도사 지장매.
한 겨울 매서운 추위를 견디고 피어난 통도사 지장매.

통도사 산문에 들어 쭉 뻗은 아름드리 노송이 춤추듯 구불거리는 무풍한송길을 걷노라면 푸른 기운이 감돈다. 길 가에 사열하듯 서 있는 소나무 길 위에는 소나무 호위 아래 추위를 견디고  숨은 듯 나지막이 들꽃들도 피어나고 있다. 절에서 나오는 사람들은 매화가 너무 예쁘다고 하면서 지나갔다.

 대여섯 살이 되어 보이는 아이와 엄마가 앞서 걸어가고 있었다. 엄마는 아이에게 “조금만 더 들어가면 활짝 핀 예쁜 꽃을 볼 수 있어”라고 말하기도 하고 “절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으며 그 안에는 국보로 지정된 대웅전과 금강계단도 있고, 보물로 지정된 대광명전과 삼층석탑 등 문화재가 많다”고도 설명했다. 그 말이 내 귀에 얼핏얼핏 들렸다. 앞에서 한 스님이 걸어오자 아이가 엄마에게 “스님은 왜 고기를 안 먹어요?” 라고 물었다. 아이 엄마는 생명을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기 때문이라고 답을 하였다.

그랬더니 아이는 “엄마 엄마 식물도 소중한 생명이잖아요”라고 말했다.

아이 엄마는 “식물도 생명을 갖고 있지만, 동물보다 고통을 덜 느낀단다. 안 먹으면 죽으니까 어쩔 수 없이 먹는 거란다”라며 말했다.  

이들이 발걸음을 재촉했기에 아이와 아이 엄마의 대화는 더 이상 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세상은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같은 생명인데 동물이라 고통을 더 느끼고, 식물이라서 고통을 덜 느낀다니. 아이에게 조금 다르게 설명할 수 없었을까하는 상념이 들기 시작했다. 

아이에게 “나라면”이라고 하면서 좋은 답을 주고 싶었으나 나의 얕은 불심과 지식으로는 아이 엄마가 내놓은 답보다 더 좋은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아이에게 미소를 지어 인사하는 것으로 묻지도 않은 답을 대신했다. 

송강 스님의 백문백답에 보면 부처님은 초기 경전에서 깨끗한 마음으로 준 음식은 모두 청정하다고 말씀했다. 이 말씀을 하신 뜻은 음식으로 일어나는 여러 시비를 없애고 음식에 대한 집착을 끊는 것에 있으며, 수행자에게 음식은 수행 생활을 지속할 수 있도록 건강을 지켜주는 약이라는 내용이 있다.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고 내 덕행으로 받기가 부끄럽네. 마음에 들어있는 온갖 욕심 버리고 육신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 깨달음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 

이 공양계를 떠올리며 바른 공부와 실천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자기반성에 이르렀다. 식물이든 동물이든 세상의 모든 생명을 존중하는 맘으로 감사해야 할 것이다. 아이와 아이 엄마의 대화를 듣게 된 데서 일어났던 상념은 노송들 사이로 아득히 내려오는 빛줄기를 올려다보는 것으로 끝이 났다.

매화꽃이 피어 봄은 오고 있다고 해도 아직 옷깃 사이로 스미는 무풍한송길의 바람이 싸하니 차다. 바람 부는 흙길을 걸어들어 가자니 석등이 참 많다. 등이 켜진 밤길을 걸어보고도 싶어졌다. 초행길에 등대 같은 역할을 해주는 이정표를 따라 통도사 경내를 들어서 천왕문을 지나니 그 유명한 매화나무 지장매가 보인다. 수많은 사람들의 카메라 셔터 소리가 전주곡처럼 먼저 들려오고 활짝 핀 매화가 환하게 서 있다.

한겨울 매서운 추위를 견디고 난 후 피어서 맑은 향기를 내는 매화처럼 어느 순간 역경을 만나면 신념을 꿋꿋하게 지킬 수 있을까 하는 물음표를 던진다. 살아가는 가운데 중요한 것은 남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 마음속에 중심을 세우고 사는 일, 겨울의 시린 고비를 넘기고 핀 매화를 닮을 일이다. 

오래된 절집에 나이 든 매화나무는 나의 물음표에 스스로 답을 찾으라는 듯 제 빛깔을 드러내려고 하니 꽃이나 그 꽃을 대하는 객이나 향기 속에 소란스럽다. 온 도량에 붉은 매화 향기가 가득 번지니 경봉 스님께서 “향기에도 소리가 있다”라고 설하신 말씀이 화두처럼 다가왔다.

최명숙 보리수아래 대표 cmsook1009@naver.com

[1575호 / 2021년 3월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