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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움베르토 에코의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

기자명 박사
  • 박사의 서재
  • 입력 2021.03.02 17:36
  • 수정 2021.03.02 17:37
  • 호수 1575
  • 댓글 0

‘상’으로 가득한 세상을 건너가는 법

유동사회라 이름 붙인 사회상
살펴보며 툴툴거린 칼럼 모음
‘상’ 넘어 있는 그대로 현실에
가 닿은 것 중요성 깨닫게 해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

움베르토 에코는 해박함과 명철함, 그리고 유머감각을 지닌 기호학자이자 소설가다. “백과사전적 지식과 풍부한 상상력의 결합”이라는 평을 듣는 첫소설 [장미의 이름]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고, 이후 활발하게 소설을 비롯하여 다양한 분야에 대한 책을 내놓았다. 이 책은 그가 “유동사회”라고 이름붙인 현재의 사회상을 펼쳐놓고 툴툴거린 칼럼을 모아놓은 책이다. 그렇다. 그는 위트있고 굳건하게, 그리고 쉬지않고 툴툴거린다. 중심을 잃어버리고 표류하는 이 미친 세상을 향해. 

명민한 그가 꿰뚫어본 이 사회의 문제점은 부처님의 말씀을 떠올리게 한다. 온통 ‘상’을 세우고 ‘상’에 갇히고 ‘상’에 휘둘리는 사람들의 세상이다. 온갖 SNS와 대중매체에 얼굴을 내밀며 유명해지고 싶어 안달복달인 사람들. 남의 불행을 목격해도 핸드폰사진으로 박제하며 대상화하는 사람들. 편견과 선입견에 사로잡혀 남을 재단하고 자신의 이익에만 몰두하는 사람들. 자신만이 옳고 남들은 모두 어리석다고 믿어 의심치 않으며 세상의 이면을 의심하는 사람들.  

‘상’이 확고해지면 세상은 그에 맞추어 재조립된다. 저자는 뉴욕 쌍둥이 빌딩 테러와 관련한 음모론을 소개한다. [뉴욕시New York City]의 알파벳은 열한 개, [아프가니스탄Afghanistan]도 열한 자, 테러의 배후로 지목된 인물인 [람진 유수프Ramsin Yuseb]도 열한 자, [조지 W. 부시George W.Bush]도 열한 자, 쌍둥이 빌딩은 숫자 11 모양, 뉴욕은 미국의 열한 번째 주, 빌딩에 충돌한 첫번째 비행기는 항공 11편이고, 승객 수 92명을 9+2로 합치면 11, 이 숫자는 미국의 긴급 전화번호 911과 같고, 9+1+1 또한 11이라는 식이다. 덧붙여 빌딩에 부딪힌 세 비행기의 희생자 수는 254명인데, 각각 합하면 11, 그리고 9월 11일은 1년 중 254번째 날이라고. 

거대한 음모가 있었다는 가정 하에 현실을 꿰어맞추다보면 점점 의혹은 신념이 된다. 그러한 신념 앞에 아프가니스탄은 열한 자이기는 하지만 테러리스트들은 그곳 출신이 아니라거나, 승객도 65명이 아닌 59명이었다거나, 희생자 전체 수도 254명이 아니라 265명이라는 사실은 사소한 것으로 치부된다. 저자는 음모론이 왜 매력적이지만 터무니없는지, 음모론은 어떤 이에게 이득을 가져다주는지 살펴본다. 음모론에 반대하는 그의 세계관은 이렇다. “나는 우리 세계가 우연으로 생성되었다고 믿기에, 트로이 전쟁부터 오늘날까지 수천 년 동안 인류를 괴롭혀 온 대부분의 사건이 예나 지금이나 우연 아니면 다른 터무니없는 짓거리들의 동시적 조합으로 발생했다고 생각한다.”거친 정의의기는 하지만, 부처님이 말씀하신 “연기”와 다른 듯 닮은 세계관이다. 

인터넷과 핸드폰에 대해 말할 때, 그는 현대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깐깐한 노인이 된다. 옛날과 같은 방식으로 인터넷과 핸드폰을 본다면 못마땅한 점이 한둘이 아닐 것이나 이 또한 옛 사람의 ‘상’아닐까. 그러나 그는 한걸음 더 깊이 들여다본다. 열한 살 때 화물차와 마차의 끔찍한 추돌사고를 목격한 기억을 떠올리며 그는 그때 카메라가 장착된 핸드폰을 갖고 있었다면 어땠을지 상상한다. “어쩌면 나는 사고 현장에 내가 있었다는 걸 친구들에게 보여 주려고 그 장면을 찍었을 것이고, 그 다음에는 남의 불행을 나의 행복으로 아는 사람들을 위해 그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을지 모른다. 그다음에도 그런 짓을 계속해 나가다가 또 다른 사고 장면들을 찍고, 그래서 타인의 고통에 무덤덤한 인간으로 변해 갔을지 모른다.”

그 대신 그는 그 장면을 기억 속에 저장했다. “70년이 지난 뒤에도 이 기억 속의 영상은 나를 따라다니면서 타인의 고통에 냉담한 인간이 되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의 기억은 우리에게도 ‘상’을 넘어 있는 그대로의 현실에 가 닿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하게 한다. 그랬을 때, 우리는 비로소 고통 너머를 보게 된다. 여실지견의 힘이다.

박사 북칼럼니스트 catwings@gmail.com

 

[1575호 / 2021년 3월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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