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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종단의 각종 제도 정비

‘전통고수’ ‘외부수용’…종단 선택 최선이었을까

과거 100년은 잇따라 큰 판 무너지고 들어서는 ‘대지평침’ 시대
한국불교, 격동 세월 거치며 각종 제도정비·문서공표 성과 이뤄
‘선원청규’는 종학 차원서 모범…율장 모순·7정례 등 여전히 과제

조계종 전국선원수좌회 선원청규편찬위원회는 2010년 11월 펴낸 ‘선원청규’는 옛 전통을 이어 오늘에 활용할 수 있게 만든 모범 사례로 꼽힌다. 사진은 조계사 대웅전에서 열린 선원청규 봉정식 모습.
조계종 전국선원수좌회 선원청규편찬위원회는 2010년 11월 펴낸 ‘선원청규’는 옛 전통을 이어 오늘에 활용할 수 있게 만든 모범 사례로 꼽힌다. 사진은 조계사 대웅전에서 열린 선원청규 봉정식 모습.

우리는 지난 100년의 세월 속에서 ‘큰 판’이 무너지고 새로 세워짐을 두 번이나 겪어야 했다. 긴 세월 전제왕권이 이 땅을 지배했다. 체제의 교학인 성리학과, 그 학문으로 무장된 사대부들의 세상이었다. 그런데 그런 ‘큰 판’이 흔들렸고 끝내 무너졌다. 일제는 식민지를 경영했고 이 세상을 봉건에서 근대로 개화시키겠다고 자임했다. 호구조사를 하고 땅을 측량하여 지번을 부여하는 등 근대적 각종 제도를 도입했다. 이렇게 ‘큰 판’이 한 번 흔들렸다.

세계열강들의 식민지 전쟁도 원자폭탄 두 방에 끝이 났다. 1945년 8월6일 히로시마, 9일 나가사키. 8월15일 쇼와 임금[昭和天皇] 무조건 항복 선언. 맨 땅에 38선을 끗고 일본군 무장 해제를 시작하더니만 이쪽저쪽에 이념을 달리하는 두 정권이 들어섰다. 이렇게 ‘큰 판’이 또 한 번 흔들려, 현대로 들어와졌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지난 ‘봉건’과 ‘근대’가 뒤섞여 ‘지금’을 살고 있다.

땅이 통째로 가라앉는다는 선어록의 ‘대지평침(大地平沈)’이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인 듯하다. ‘큰 판’이 흔들리니 그 속에 있는 모든 것들이 따라서 흔들린다. 일제 말기에 수많은 재산을 조선총독부가 몰수하더니만 일제를 무찌른 미군군정청이 통으로 그것을 접수한다. 다시 그걸 대한민국 정부가 물려받더니 원 소유권자에게 돌려주는 과정에서 이승만 정권은 ‘제 입맛’대로 했다.

한 번 생각을 해 보자. 경주 토함산 자락 석굴암에 천년이 넘도록 깊은 선정에 들어계시는 부처님. 그 부처님 앉아 계시는 땅 주인이 ‘큰 판’ 속에서 달라졌다. 관계 법령이, 예종 원년(1469)에 완성된 경국대전, 1902년의 국내사찰현행세칙, 1911년의 사찰령 및 그 시행세칙, 1936년의 사원규칙, 1962년의 불교재산관리법, 1987년의 전통사찰보존법, 2010년의 전통사찰의 보존 및 지원에 관한 법률로 바뀐다.

이렇게 ‘대지평침’에 비유되는 세월 속에서 이승만 정권의 종교편향은 노골적이었다. 그런 ‘판’ 위에서 촉발된 ‘교단의 분열사태’를 우리 불교계가 과연 잘 대처한 것인지? 그 평가도 제대로 내리지 못한 채 경제부흥과 민주화의 도도한 흐름 속에서 1994년 ‘개혁종단’이 다시 출범한다. ‘개혁종단’은 여러 부분에서 성과를 냈지만 종학을 연구하는 필자가 주목하는 부분은 각종 제도를 정비하고 그 결과를 문서적으로 공표한 대목이다. 법요집 간행을 기획하여 상용의례와 전문의례를 통일 정비했고, 승려 교육기관과 교과과정을 정비하여 교재를 발간했고, 수계제도 및 승가고시제도를 비롯한 포살제도를 정비했고, 재가불자들의 교육과 포교에 관한 각종 제도를 정비하여 신도법을 제정 운영했고, 종립학교법을 손보아 교단에서 세운 각종 학교를 총체적으로 운영했고, 최근에는 불교 안팎에서 누구나 한 권으로 읽을 수 있는 불교성전을 발간했다.

이런 일련의 불사에 물론 빛과 그림자가 있을 수 있다. 특히 소위 각종 선거 등 세속의 규칙들이 승가공동체의 논의 구조 속으로 들어오는 현상에 대해서는 대안 있는 현실적 점토가 필요하다. 이때에 세상이 달라진 점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옛 승가의 전통만을 고수할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또 제도의 정착에는 세월이 필요하다는 점을 고려해 비난은 삼가야 할 것이다. 아무리 건전한 비판이라도 애종(愛宗)과 호교(護敎)의 배려가 겸해야 할 것이다.

사실, 가정집에서도 예전에는 동성 형제들이 어린 시절 한 방에서 생활했지만, 지금은 각 방을 쓰고 있다. 절 집도 이제 큰방[大房] 생활이 사라져가고 있다. 승속을 막론하고 스마트폰, 자동차, 컴퓨터, 캐시카드 등이 일상화되었다. 이런 속에서 불·법·승 3보의 자산을 지키고, 제도를 정비하고, 안으로 양질의 승려를 배출하고, 밖으로 세상을 교화하는 일이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아무리 방향을 제대로 잡아 잘 대처한다고 해도 그것이 정착되기 위해서는 연륜도 필요하다.

종학(宗學)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1994년 이후 ‘개혁종단’에 참여하여 각종 제도를 정비했던 당사자들은 더욱 절감했을 것이다. 불교의 교학이나 철학 일반 이론에 대해서는 국내외의 연구 축적을 활용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성과들을 현실 교단 속에서 활용할 경우에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그 선택의 과정에는 대한불교조계종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확인해야 했다. 

첫째, 법요집 만들 경우를 보자. 한 사례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조석 예불 의식만 해도 다양했다. 1954년 범어사에서 월운 스님에 의해 소위 ‘7정례’가 시작되어 현재 널리 퍼졌다. 월운 스님께서는 교주의 역사성과 실재성을 강조하기 위해 ‘석가모니불’ 예경을 첫머리에 넣으셨다. 이런 ‘7정례’가 지금에 정착되었지만 우리 전통은 법·보·화 3신의 ‘3불원융 10신무애’ 전통이 있다. ‘개혁종단’ 출범 후 첫 법요집에서 월운 스님은 이 점을 고려하여 ‘향수해례’ ‘사성례’ ‘소예참’ ‘대예참’ 등을 편입했다. 조계종의 종학에서는 그래야 했다.

둘째, 수계제도를 정비할 경우를 보자. 현존하는 율장은 빨리어 1종, 한역 5종, 티베트역 1종, 이렇게 모두 7종이다. 한역 5종은 5분율(화지부 소속), 4분율(법장부 소식), 마하승지율(대중부 소속), 10송율(설일체유부 소속), 유부신율(근본설일체유부)이다. 이 모두 그럴만한 역사적 전통과 근거가 있다.

자, 조계종에서 어느 율장을 택할 것인가? 이 문제는 철학적으로 문헌학적으로 아무리 논의해도 한계가 있다. 결국은 교단의 역사 전통과 가치관에 입각해서 수행자 공동체가 ‘선택’해야 한다. 종학이 개입되어야 해결된다. 현재는 ‘4분율’과 ‘범망경’을 겸수(兼受)하고 있는데, 계율 조문 사이에 상충 모순점이 부분적으로 있다. 이 모순점에 대해서는 종학의 입장에서 설명해야 할 향후의 과제이다. 또 ‘범망경’만으로 포살하는 것도 그렇다.

마지막으로 최근 조계종에서 편찬한 불교성전의 경우를 보자. 경장과 율장과 논장에 성문승단의 전승과 보살승단의 전승이 다르다. 순서를 어떻게 배열할 것인가? 해인사 소장 팔만대장경은 대승 경전을 앞에 배열하고 소승 경전을 뒤에 미뤘다. 대승 경전 중에서도 전통적으로 ‘반야부’를 첫머리에 둔다. 우리의 전통에는 ‘반야부’가 ‘불모(佛母)’라 하여 ‘모든 부처의 어미’라는 의식이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는 ‘아함부; 니카야’가 우선이다. 이런 고민들을 종학에서 하는 것이다. 이런 고민을 종합해서 내놓은 모범 사례의 하나로 필자는 2010년 종단에서 펴낸 ‘선원청규’를 들겠다. 이 책은 조계종 ‘전국선원수좌회’의 공의(公議)를 거치고, 또 중앙 종단과 유기적 관계를 맺으면서 만들었다. 선원에서 수행승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해, 옛 전통을 이어 오늘에 활용할 수 있게 만들었다. 저 멀리는 종조(宗祖) 문제에서, 가까이는 환경과 인권과 복지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신규탁 연세대 철학과 교수 ananda@yonsei.ac.kr

[1578호 / 2021년 3월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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