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모차르트의 피아노 5중주
7. 모차르트의 피아노 5중주
  • 김준희
  • 승인 2021.04.06 09:59
  • 호수 158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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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인 탄생엔 훌륭한 아버지와 스승들 있었다

실내악곡과 협주곡 영역 자유롭게 넘나든 능력의 결과물
직장 그만두며 아들의 음악적 견문 높인 아버지도 한 몫
아들 라훌라에게 훌륭한 스승 이어준 부처님 모습과 비슷
레오폴드 모차르트와 그의 자녀, 볼프강과 마리아 (Louis Carrogis Carmontelle 그림, 1777).
레오폴드 모차르트와 그의 자녀, 볼프강과 마리아 (Louis Carrogis Carmontelle 그림, 1777).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는 1784년 3월 다른 작곡가에게서는 찾을 수 없는 특이한 편성의 실내악곡을 작곡했다. 피아노와 오보에, 클라리넷, 바순, 호른을 위한 5중주 Eb장조, K.452이다. 이 독자적인 악기 구성은 단순히 관악 앙상블에 피아노를 추가한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관악기들의 음색들을 한데 모으기도 하고 동시에 각 악기가 개별적으로 돋보일 수 있도록 피아노를 중심으로 유기적인 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피아노가 관악기들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며 실내악적인 음색들의 악기들에게 오케스트라의 역할을 부여하기도 하고, 각각의 악기의 개성이 뚜렷하게 나타나도록 조율하기도 한다. 마치 피아니스트가 관악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분위기를 연출하다가 때로는 주 선율을 맡은 악기들을 뒷받침 해주기도 한다. 음악학자 알프레트 아인슈타인은 이 곡에 대해 “협주곡의 경계와 맞닿아 있으면서도 그 선을 넘지 않는 감정의 섬세함은 정말 놀라운 것으로, 어떤 작품도 이를 능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실내악곡과 협주곡의 영역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모차르트의 뛰어난 능력이 만들어낸 결과다.

모두 세 악장 구조를 가진 이 곡의 첫 악장은 느린 서주로 시작한다. 피아노가 이끌어가는 관악기의 선율들은 조화롭게 화성감을 유지하며, 알레그로(Allegro)로 넘어가면서 우아한 문답이 오고 간다. 악기들 간의 멜로디의 교차는 생동감을 더해주고 분위기가 고조될수록 피아노 협주곡의 인상이 강해진다. 두 번째 악장은 오보에의 주선율로 시작되며 아리아 형식으로 유려한 멜로디의 조합과 피아노의 균형이 돋보인다. 전반적으로 피아노의 견고한 반주 위에 오보에, 클라리넷, 바순, 호른이 각각 평온하게 등장한다. 차분한 느낌의 2악장은 섬세하면서도 진중한 분위기를 유지한다.

마지막 악장은 론도 형식으로 활기찬 분위기의 악장이다. 어느 피아노 협주곡 못지않게 훌륭한 마지막 악장은 모차르트의 천재성이 집약되어있다. 특히 에피소드 사이에 위치한 카덴차(Cadenza in tempo)는 다른 실내악곡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구조로 대위법적 형태의 피아노와 관악기의 절묘한 대화가 인상적이다. 시작 부분의 모티브를 사용하여 빠르게 전개되는 코다로 끝맺는다. 

모차르트는 1784년 4월1일, 자신의 피아노 연주로 이 곡을 초연했다. 그는 4월 10일에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곡이 자신이 쓴 가장 훌륭한 작품이라고 말하며 “아버지가 이 곡을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얼마나 아름다운 연주였는지 모릅니다”라고 했다. 연주를 마치고 엄청난 박수세례를 받으며 그는 아버지를 떠올렸다.

다섯 살 무렵부터 작곡을 시작하고 연주활동을 했던 모차르트는 언제나 아버지 레오폴드와 함께했다. 잘츠부르크 궁정의 부악장을 지내며 바이올린 교본을 집필할 정도로 교육자적인 자질을 가진 바이올리니스트였던 레오폴드는 아들의 ‘천부적인 재능’이 너무도 반가웠다. 그는 아들을 위해 직장을 그만두고 가족들을 데리고 유럽의 도시들로 ‘연주여행’을 계획하게 된다. 

아들의 음악적인 견문을 높여 주고자 하는 아버지의 추진력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모차르트는 누나 난네르와 함께 연주를 하고 작품을 쓰며 유럽의 도시들에서 환대를 받았다. 또한 틈틈이 각 도시에서 활동하던 음악인들에게 교습을 받을 기회를 가졌고, 모차르트는 그대로 그것들을 흡수하여 예술가로서의 기틀을 다질 수 있었다. 모차르트의 사회적, 재정적 성공을 바라보는 아버지 레오폴드의 마음은 복잡했다. 아들의 재능에 대한 기쁨과 우려가 한 번에 밀려왔다.

20년 가까이 묶여있던 부자지간의 애정의 끈은 아들의 독립으로 인해 더 이상 지속되지 못했다. 아들의 스승이자 매니저였고, 친구이기도 했던 레오폴드는 이미 작곡가와 명연주자로서 강한 자부심으로 가득 찬 성인이 된 아들 곁에 머무르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모차르트는 수많은 편지로 멀리 있는 아버지께 자신의 안부와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전했다. 

필자는 부처님의 상수제자로 수많은 업적을 남겼던 사리불과 목건련을 서양 고전음악의 기틀이 된 바로크 음악에 대입하며, 다른 작곡가들을 부처님의 제자들에 비유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성실하고 진중한 작곡가 브람스는 가섭 존자가, 뛰어난 음악적 어휘력으로 대중성과 예술성을 모두 갖춘 베토벤은 부루나 존자가 적합했다. 논리적이고 명료한 설법을 펼친 가전연 존자는 간결한 작품속에 다채로움을 담아낸 스카를라티와 비슷했다. 많은 이들에게 부처님의 말씀을 전한 단정하고 깨끗한 외모를 가진 아난 존자는 낭만주의 시대의 슈퍼스타 리스트와 어울렸다.

소년 모차르트의 천진난만한 모습과 천재임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공부하고 노력하는 모습, 그리고 아버지와의 음악적인 관계를 생각해보면 그를 밀행제일(密行第一) 라훌라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라훌라는 “사람들은 나를 ‘행복한 라훌라’라고 불렀다. 나는 두 가지 행운을 가졌다. 내가 부처님의 아들이라는 것과 모든 법안(法眼)을 얻었다는 것이다”(테라가타 장로의경 295)라고 했다. 라훌라의 노년의 회상은 자신이 부처님의 친아들이면서 동시에 제자이고, 그래서 운명적인 연결고리 속에서 더욱 험한 수행을 해야 했지만 사리불이나 목건련 같은 훌륭한 스승 곁에서 가르침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마치 모차르트가 천부적인 재능을 지녔지만 누구보다 더 뛰어난 악상을 작품에 녹여내기 위해 당대의 음악가들에게 지도를 받으며 남모르는 노력을 한 것에 비유해 본다.

모차르트가 영원한 천재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짧은 생애동안 남겼던 작품들의 일관성 때문이다. 그의 작품들은 유년시절의 짧은 곡들이나 청년시절의 큰 규모의 곡들까지 모두 ‘완성형의 경지’를 보여준다. 또한 후반기의 작품들은 내용과 형식의 조화가 균형을 이루는 가운데 항상 음악적인 풍부함을 담고 있었고, 그 종류의 다양성도 남달랐으며 작품성 역시 뛰어났다. 아버지와 훌륭한 스승들의 가르침, 그리고 그 가르침을 고스란히 자신의 삶 속에 녹여낸 라훌라를, 음악으로 ‘모든 도리를 꿰뚫어 보는 눈’을 가진 모차르트에 비유해 보면 어떨까.

김준희 피아니스트 pianistjk@naver.com

[1580호 / 2021년 4월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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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도사 2021-04-07 02:55:39
k452와 모차르트-라훌라와 연결시키신 것은 님다운 놀라운 착상이라 생각됩니다. k452가 그처럼 놀라운 곡인지 저는 깊은 이해는 안갑니다만 들어보니 <실내악곡과 협주곡의 영역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모차르트의 뛰어난 능력이 만들어낸 결과다> 님의 평가는 공감이 갑니다. 자주 들어보며 공감의 폭을 넓히고자 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