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수행  ①
31. 수행  ①
  • 박희택
  • 승인 2021.04.06 10:04
  • 호수 158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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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없는 신행으론 깨달을 수 없어

자기완성을 위한 수행은
사랑으로 회향돼야 완전
대비실천을 본지로 해야
수행의 의미가 완전해져

우리 사는 이 시대에 수행의 의미를 사색해본다. 수행은 불교의 신행체계인 신(信)-해(解)-행(行)-증(證)의 ‘행’에 해당한다. 신해행증은 사법(四法)이라 칭해지는 교(敎)-리(理)-행(行)-과(果)와 상응한다. 우리의 믿음[信]은 붓다의 가르침[敎]에 대한 믿음이고, 우리의 이해[解]는 붓다의 가르침의 진리성[理]에 대한 이해이다.

이와 같은 신해와 교리가 이루어진 연후에는 실천[行]으로 나아가는 것을 수행이라 하며, 이 실천수행을 통하여 인과[果, 연기]를 증득[證]함으로써 온전한 신행을 확립하게 된다. 기실 깨달음은 온전한 신행의 여과(餘果)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깨달음을 지향한다는 것은 온전한 신행을 한다는 것과 동의어가 되어야 한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중대한 하나의 함의를 확인할 수 있다. 실천수행 없는 미진한 신행으로는 인과를 증득할 수 없고 깨달음을 얻기도 무망하다는 사실이다. 이 점은 과거세나 현대세나 미래세에도 동일하게 통용된다. 

다만 그 시대가 포지하는 상황에 따라 실천수행의 방향과 방식은 달라질 수 있다는 방법론적 자각만 따라주면 될 것이다.

수행은 어느 시대나 중생을 위한 대비의 실천을 본지로 한다. 사랑의 실천이야말로 수행의 본지인 것이다. 자기완성을 위한 수행은 그 자체에도 의미가 있겠지만, 중생을 위한 사랑의 실천으로 회향됨으로써 그 의미가 완전해지게 된다. “중생으로 인하여 대비심을 일으키고, 대비심으로 인하여 보리심을 발하며, 보리심으로 인하여 깨달음을 이룬다”는 ‘화엄경’ 보현행원품의 말씀을 다시 한번 상기해도 좋을 것이다.

깨달음을 얻지 못하였기에 대비의 실천에 나서기를 주저한다는 것은 치우친 생각이다. 오히려 대비의 실천을 깨달음의 길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부처가 되고 나서 중생제도에 나서는 것은 지극히 합당하나, 그 부처되는 길은 중생제도에 있다는 것이 붓다의 가르침이다. ‘능엄경’ 제6권에서 아난의 언어를 통해 붓다가 말씀하신 실천수행의 대의를 만날 수 있다.

“저(아난)는 항상 여래로부터 ‘자신은 아직 해탈하지 못했으나 남을 먼저 해탈시키려는 것은 보살이 발심함이며(自未得度 先度人者 菩薩發心), 자신이 이미 원만하게 깨달아서 능히 남을 깨닫게 하는 것은 여래가 세상에 부응함이다(自覺已圓 能覺他者 如來應世)’는 말씀을 들어왔습니다. 제가 비록 아직 해탈하지 못했으나, 말겁의 일체중생을 제도하고 싶습니다.”

종단이 지향하는 ‘깨달음의 사회화’의 대의가 ‘수능엄경’의 이 말씀에 들어 있다고 하겠다. 또한 ‘사회의 깨달음화’를 위한 불교의 역할을 제고(提高)함에 있어서 수행자(보살)의 대비 실천, 사랑의 실천이 어찌하여 관건이 되는지도 알 수 있다. 

이타적·사회적 실천이 수행의 귀결점이 되는 것이다. 자리적·개아적 실천은 그 출발점으로서 의미를 띤다. ‘금강경’ 정심행선분의 말씀을 청해 듣기로 한다.

“또한 수보리여! 이 법은 평등하여 높고 낮은 것이 없으니, 이것을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이라 말한다. 자아도 없고, 개아도 없고, 중생도 없고, 영혼도 없이 온갖 선법을 닦음으로써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을 얻게 된다.”

‘온갖 선법을 닦음으로써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을 얻게 된다(修一切善法 則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는 말씀을 주목하게 된다. 아상과 인상과 중생상과 수자상의 사상(四相)을 여의고서 일체선법을 닦아서 깨달음을 성취하게 되는데, 사상을 여읨은 자리적·개아적 실천에 머물지 않고 이타적·사회적 실천으로 나아갔음을 교설한 것이라 하겠다.

호흡과 관법을 말하고, 지(止)와 관(觀)을 말하고, 마음챙김(mindfulness)과 알아차림(awareness)을 말하더라도, “보살이 선도를 실천하는 것은 중생들을 위해서이며 이것이야말로 진실이다(菩薩行善道 爲一切衆生 此是實義). 이와는 다르게 자리(自利)이면서 중생을 이익 되게 한다는 말은 범부들을 위한 하나의 방편설에 지나지 않는다(대지도론95)”는 실천수행의 대의를 놓쳐서는 아니 될 것이다.

박희택 열린행복아카데미 원장 yebak26@naver.com

[1580호 / 2021년 4월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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