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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사와 정치권력

기자명 김형규

“정확한 고증 없이 복원에만 관심”

정치적-경제적 논리 철저히 배제돼야

문화재에 많은 피해를 주는 것은 말없이 흐르는 오랜 세월이다. 아무리 견고하고 튼튼한 문화재도 세월 앞에서는 어느덧 무너지고 파괴되는 것이 자연의 섭리이다. 자연의 섭리는 아름다운, 혹은 소중한 역사가 깃든 문화재라고 해서 봐주는 법이 없다.
그러나 문화재를 파괴하는 것이 세월뿐일까?
역사를 살펴보면 누가 문화재 보존의 가장 큰 적인지 자명하게 드러난다. 문화재를 만들고 가꿔 온 사람. 바로 인류 자신이 문화재를 파괴하는데 가장 앞장을 선 범인임을 역사는 증명하고 있다. 그러나 근세에 들어와 문화재 보호에 대한 인식이 새롭게 싹트면서 세계적으로 문화재 보호 열기가 뜨겁다. 세계인들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위원회를 설립해 귀중한 인류유산들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해 보존하는 노력을 벌이고 있고, 각 나라들은 문화재를 보물이나 국보로 지정해 보호에 열과 성을 다하고 있다. 우리 나라도 이런 문화재 보호 대열에서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문화재 보존과 보호 열기가 너무 지나친 때문일까?
최근 익산시가 백제 최대 사찰인 익산 미륵사를 복원하겠다고 나서 파문이 일고 있다. 이미 용역까지 끝내고 복원도를 완성해, 문화재청에 승인을 요청한 상태. 익산시는 미륵사의 목탑과 석탑, 금당 등 대표적인 건축물들을 복원해 백제 문화를 대표하는 유적지로 가꾸겠다는 계획이다. 물론 복원 위치는 현 미륵사지의 옆 터로, 예상되는 공사비만 893억 원. 문화재청의 심의 과정이 남아있지만, 역대 최대 복원 불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익산시의 미륵사지 복원계획이 문화재 훼손이라며 문화재 전문가들의 집중적인 비판을 받고 있다. 백제 건축에 관한 기록이나 유물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상태에서 백제 시대 사찰인 미륵사를 복원하겠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는 것. 특히 백제계 건물이 남아있는 일본 사찰들을 표본으로 한 추정 복원은 미륵사 복원이 아니라 훼손이며, 후손들에게 잘못된 역사를 가르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이들이 더 큰 문제로 지적하고 있는 것은 미륵사 복원이 김대중 정부의 공약 사업의 하나인 백제종합개발계획의 일환으로 추진됐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표를 의식한 정치적인 논리로 복원이 추진됐다는 이야기다. 또 “미륵사 복원을 통한 관광수입 확대에 적지 않은 기대를 하고 있다”는 익산시 관계자의 말도 시가 미륵사 복원에 매달리는 이유를 잘 시사하고 있다. 물론 익산시 관계자들은 미륵사지 옆에 미륵사를 복원하는 만큼 유적에 대한 훼손이 아니라고 강변하고 있다. 그러나 백제의 한이 절로 묻어나는 것 같은 애잔한 느낌을 주던 미륵사지에 기계로 깍은 동탑이 세워졌을 때의 배신감처럼, 거짓 복원된 미륵사로 인해 폐사지 미륵사지가 우리에게 주었던 많은 진실들이 훼손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사실이다. 우리 후손들은 가짜 미륵사를 보며 백제시대 미륵사를 기억할 것이기 때문이다. 미륵사 복원에 정치논리와 관광수입이라는 손익계산서가 붙는 것은 진정한 문화재 복원이라고 할 수 없다.


김형규 기자
kimh@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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