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운 스님 지도 큰 도움 화엄 대중화 초석 되길
‘창작보다 어려운 것이 번역’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정확한 번역을 위해서는 해당 언어에 대한 실력은 물론 주변 지식에 대한 철저한 이해를 갖추어야 한다. 또 주변 지식이 부족하면 참고서적을 사서 공부해야 하는 것은 물론 주석까지 덧붙이려면 뚫고 지나가야 할 관문이 하나둘이 아니다. 하물며 까다롭기 소문난 주석서를, 그것도 전혀 번역되지 않은 천수백 년 전의 책을 오늘날 언어로 옳기는 데 있어서야 두말할 나위 없다.5년간 노력 끝에 첫 완역
봉선사 능엄학림 학감 반산 스님이 5년간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번역한 『화엄경청량소(華嚴經淸凉疏)』 『십지품(十地品)』(동국역경원)의 완역은 학계는 물론 불자들의 찬탄을 받기에 충분하다. 『십지품』은 방대한 화엄경 중에서 십바라밀 사상 등을 비롯해 대소승의 교리가 묘하게 어우러진 최고의 법문으로 한글로 처음 번역된 까닭이다. 화엄의 수행체계라고도 불리는 『십지품』은 그 난해함으로 인해 현수법장 스님 등 여러 사람들에 의해 주석이 붙여졌으며 이중 가장 유명한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당(唐) 청량국사 징관(738~839)이 쓴 『화엄경소초』다.
“청량소 전체를 번역하겠다는 것을 일생의 원으로 세웠지만 별로 자신이 없었습니다. 지난 99년 펴낸 『세주묘엄품(世主妙嚴品)』에 이어 가장 난해하다는 십지품을 번역하기로 한 것도 어쩌면 이 일이 내가 가야할 수행의 길이라는 확신을 다지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릅니다.”
반산 스님이 청량소를 완역하기로 서원을 세운 것은 지난 89년 화엄경을 본격적으로 공부하면서부터다. 청량국사의 해설이 화엄경을 이해하는데 필수적임에도 아직 한글로 번역되지 않았다는 안타까움 때문이었다. 스님은 해인사 강원과 중앙승가대를 마친 뒤 강원 강사생활을 하다가 96년 은해사 승가대학원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인 번역작업에 착수했다. 스님은 먼저 한문으로 된 청량소의 내용을 모두 컴퓨터에 입력시키는 일부터 시작했다. 하루에 10시간씩 꼬박 1년 반을 컴퓨터에 매달려 씨름해야 했다. 입력해 놓은 분량만 8.5M에 이를 정도로 어마어마했다.
이후 스님은 주변의 강사요청을 모두 뿌리치고 창녕의 한 암자에서 혼자 역주작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엄청난 사상과 수행체계를 담고 있는 십지품을 혼자의 힘으로 완역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더욱이 『십지품』의 정확한 번역을 위해서는 구사8년·유식 3년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난해한 구사론과 유식의 훈련과정을 통과해야 했다. 결국 한계를 느껴 찾은 곳이 화엄연찬도량인 봉선사 능엄학림. 대강백 월운 스님의 지도를 받기 시작하면서 혼자 애쓰던 어려움이 봄눈 녹듯 사라지고 번역 작업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대·소승 교리 아우른 대법문
“그동안의 시간은 마치 복잡한 미로를 거쳐 나온 느낌입니다. 큰스님의 지도가 있었지만 저 유명한 궐자권(闕字券)과 현전지(現前地)에 이르러서는 갈피를 잡을 수 없었습니다.”
봉선사 연밭의 청초한 연꽃과 연구실의 작설차만을 벗 삼아 번역에 매진하고 또 매진했다. 그렇게 조금씩 진척시킨 일들이 주자권(珠字券)에 이르러 마침내 앞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갈수록 번역이 순풍에 돛단 듯 순조롭게 진행돼 나갔다.
한글세대 위해 쉽게 해설
“지난해 11월 1차 번역을 마치고 인도네시아 보로부드르 사원으로 잠시 여행을 갔을 때였습니다. 호텔 풀장에서 2m가 넘는 줄 모르고 겁 없이 풍덩 뛰어들었다가 허우적댄 일이 있었습니다. 마치 학문의 얕음을 돌아보지 않고 『십지품』 작업에 뛰어들 듯 말입니다. 그 때 무슨 생각을 한 줄 압니까. ‘나는 가더라도 책을 내고 가야 할텐데’라는 일념뿐이었습니다.”
청량국사의 소(疏)를 빌어 방대한 화엄경의 수행론을 이 시대에 봉찬한 반산 스님. 스님은 이제 『십지품』에 이어 『여래출현품』 『십회향품』 등을 번역할 계획이다. 조계종교육원장 무비 스님이 격려사에서 밝히고 있듯 이 책은 불교를 깊이 공부하려는 불자들의 필독서로, 수행의 지침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