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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行願

기자명 이종찬
“열심히 수행하겠다”

‘원행’과 같은 뜻


‘行’자는 사람이 걷는 모습을 상징한 글자이다. ‘’(조금 걸을 척)과 ‘’(자축거릴 촉)의 합성이다. 두 글자가 모두 작은 걸음이라는 뜻이다. ‘’은 왼 발의 걸음이고, ‘’은 오른 발의 걸음이다. 그러니까 좌우의 발걸음이 번갈아 가는 것이다. 이 두 자가 독립된 의미로 쓰이면 부자연스러운 걸음을 의미하게 된다. 그래서 “절룩거리고 걸으면 술 취한 이와 같다(而行 如酒醉者)”라 함도 있고, 또 주저 주저하는 모습으로 쓰여 “가려해도 마음이 주저스럽다(欲歸而心)이라는 뜻도 있다. 다닐 ‘行’자의 근본 뜻은 이렇듯 좌우의 발이 옮겨 디디는 회의로 걷는 행위 곧 ‘다니다’이다. 여기에서 파생한 모든 행위를 대표하게 된 글자이다. 그런데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은행(은 銀, 行)이 왜 다니다의 의미인 ‘行’자를 쓸까함에 있어서는 다소의 의아스러움이 없을 수 없다. 이는 고대로부터 ‘점포(가게 店, 펼 鋪)’나 ‘상행(장사 商, 行)’의 의미가 있었으니, 은화나 금화의 상행위를 의미해서 지어진 단어였다. ‘願’자는 ‘原’(언덕 원) 자의 소리 부분과 ‘頁’(머리 혈) 자의 뜻 부분으로 합성된 형성문장이다. 원래는 큰 머리(大頭)라는 뜻이었다. 곧 머리로 생각한다는 의미에서 생각하다. 도는 하고자 하다. 바라다의 뜻으로 변화해 간 것이다.

불교에서 ‘행원’이란 修行(닦을 수, 행)과 誓願(맹세 서, 원)의 두 단어가 합성된 것이니, ‘원행’이라 하더라도 의미의 변화는 없다. 그러니까 이 두 행위의 요소가 함께 이루어져야 가고자 하는 목적지 저 언덕을 오르는 것이다. 만약에 바라는 서원만 있고 실천의 수행이 없으면 마치 강을 건너려는 사람이 타고 건널 배는 준비하지 않은 것과 다를 것이 없다.


이종찬/동국대 명예교수 sosuk0508@hanaf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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