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여년 만에 가장 빨리 개화한 벚꽃이 주말을 지나면서 적잖이 떨어졌다. 그래서 마곡사 가는 길도 기대하지 않았다.
경내로 들어가는 입구의 길에는 경계를 나누지 않은 넓은 공간이 있어 강요하지 않아 편안하다. 해탈문 옆에 핀 벚꽃이 바람이 불 때마다 꽃비가 되어 내린다. 꽃비를 맞으며 한참 서있다가 극락에서 세상으로 돌아가듯 다시 해탈문과 천왕문을 통과해 극락교를 건넜다. 해탈문을 지나 희지천을 건넜으니 사바세계를 벗어나 극락세계에 들어온 것일까? 연등에 둘러싸인 5층 석탑, 석탑 뒤 대광보전, 대광보전 뒤로 올라 대웅보전, 극락교를 건너와 만난 마곡사 경내에서도 내게 길을 강요하지 않는 자유로움이 가득하다.
대광보전의 비로자나부처님은 여전히 보일듯 말듯한 미소를 지으며 할 얘기가 있느냐고 묻는듯 하지만 나는 할 말이 없다. 어느 절 어느 부처님이든 마찬가지이지만 살면서 때때로 “당신이 있어 다행입니다”라고 하게 된다.
대광보전에는 앉은뱅이 설화가 있다. 인근에 살던 앉은뱅이가 마곡사를 찾아와 100일 기도를 드리며 삿자리를 짰다고 한다. 그는 삿자리를 짜며 다음 생에 걸을 수만 있다면, 세세생생 보시하는 삶을 살겠노라고 서원했다. 간절한 기도를 하다보니 서원은 사라지고 자신이 살아있음에 감사하게 됐다. 100일이 흘러 마침내 삿자리를 완성했다. 삿자리를 부처님께 바치고 법당을 나오는데 자신도 모르게 걷게 됐다.
기도를 마치며 깨달은 진정한 참회와 지금 자신이 살아 있음에 감사하게 되었던 그 마음에 공감이 간다.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병을 낫고자 하는 사람들이 삿자리를 조금씩 잘라가는 바람에 삿자리 위에 다른 천을 덧댔다는 말도 있다. 지금은 대광보전 마루에 깔려 있는 카펫 밑에 삿자리가 있다고 하는 참배객의 대화도 들을 수 있었다.

사람들은 대광보전의 삿자리 이야길 들으며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장애가 없어도 무엇을 못하겠다는 사람이 있는 반면 장애가 있어도 이뤄내는 사람이 있다. 장애는 걷지 못하는 몸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장애로 받아들인 마음에 있는 것이다. 장애는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라 할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대광보전 삿자리를 구해 병을 낫고자 하는 사람은 많아도 정성을 들여 삿자리를 만들어 보시하려는 사람은 드물 것’이라는 생각을 할 지도 모른다.
나는 자연스럽게 장애시인들을 떠올렸다. 장애시인들이 자신의 삶을 진솔하게 시로 써내려 간 마음이 앉은뱅이가 삿자리를 정성스럽게 짜던 마음과 닮아 보였다. 어려운 가운데도 이들의 시집을 내주고자 하는 것도 시 한편 한편이 삿자리와 같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리고 삿자리를 짜는 심정으로 장애인 인식개선 자료집 ‘우리 만나면 이렇게 해요(알아두면 좋은 장애인에 대한 에티켓)’를 인쇄 중이며, 전국사찰에 보낼 계획이다.
며칠 있으면 4월20일 장애인의 날이다. 장애인의 날을 앞두고 찾은 마곡사에서 불교와 장애인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을 해본다. 불교에서 장애인관의 걸림돌이 되어온 것은 전생의 업 사상이다. 요새 사찰에서는 장애인에게 전생의 업을 말하는 스님과 불자는 거의 없다. 긍정적 변화가 나타나 장애인 인식개선을 논할 때도 다양한 접근을 해야 한다.
경전에 있는 단어 사용, 해석 등에서 인식의 변화를 넘어 장애인들이 불교 곳곳에서 활동할 기회를 많이 줘야한다. 불교현장에서 만남과 소통을 통해 자연스러운 인식개선이 되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현재 장애인복지의 이슈는 자신이 사는 지역사회로의 통합이다. 장애인들의 신행생활도 자신이 사는 지역사회 사찰에서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체·뇌병변장애인은 편의시설 설치가, 청각장애인은 수어통역이, 시각장애인은 점자 안내가 필요하다. 더불어 편의시설 설치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고 수어와 점자 전문 지식을 갖춘 스님과 불자들이 늘어나야 한다. 전문기관에서 수어 통역사 교육을 받고 국가공인 자격을 갖추고 점자 전문 지식을 갖춘 스님과 불자가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올해 장애인의 날을 맞으며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장애인의 날, 장애와 비장애, 차별, 인식개선 등 이런 말들을 쓰지 않아도 되는 날을 맞는 것이다.
최명숙 보리수아래 대표 cmsook1009@naver.com
[1581호 / 2021년 4월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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