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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존 아담스의 미니멀리즘

기자명 김준희

현대음악은 듣기 난해하다는 고정관념을 깨다

동양 음악·명상적 요소 품은 미니멀리즘 2세대 선두 주자
새로운 조성의 긴장·이완 반복시켜 그만의 음악세계 개척
연에 따르지만 본질과 근원은 변치 않는 ‘수연불변’ 떠올려

존 아담스의 작품들은 미니멀리즘이라는 본질에는 변함이 없으면서도, 상황에 맞게 변화를 주어 만들어졌다.
존 아담스의 작품들은 미니멀리즘이라는 본질에는 변함이 없으면서도, 상황에 맞게 변화를 주어 만들어졌다.

“눈앞의 경계가 마음의 헛된 움직임이라는 것을 알고 그것을 점점 초월하라. 눈앞의 사물은 객관적으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주관적으로, 혹은 자신의 견해대로 만들어 낸 것에 불과한 것이다.” ‘대승기신론’의 내용이다. 고정관념(相)을 깨야 한다는 이야기다. 현대 예술도 어떤 일반적인 편견이나 경향 등이 존재한다. 대부분의 음악 감상자는 현대음악에 대해서 주로 상식을 파괴한 파격성이나 의외성, 또는 추상성을 기대한다.

실제로 2차 세계대전의 종식은 새로운 음악 발전에 있어 진정한 전환점이 되었다. 전쟁으로 인한 엄청난 피해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은 상당한 경제적인 발전을 가져왔고 낙관주의가 팽배해졌다. 1950년대 이후의 미국은 많은 사람들이 수준 높은 문화생활을 누릴 정도로 예술이 번성했고, 특히 음악은 급진적인 실험의 단계로 접어들었다.   

이 시기의 현대 음악은 두 가지의 주류를 형성한다. 하나는 ‘통제’에 의해 체계성을 음렬주의(serialism), 총렬주의(total serialism) 등으로 표현한 것이다. 대표적인 작곡가는 불레즈, 슈톡하우젠, 배빗 등의 작곡가들을 꼽을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완전히 상반된 개념인 ‘자유’에 의한 진지한 실험이다. 새로운 사운드 텍스처에 관한 작업을 주로 했던 펜데레츠키와 ‘완전한 자유’와 ‘우연성’에 기반을 두었던 존 케이지 등의 작곡가를 들 수 있다. 이들의 모더니즘은 확장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청중들에게 현대음악에 대한 기대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20세기는 급격한 변화의 시기였던 만큼, 이러한 경향 역시 20년을 넘기지 못했다. 1960년대 후반의 소위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불리는 또 다른 현대음악의 새로운 주류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 중 미니멀리즘(minimalism)은 대중음악과의 ‘진지한’ 결합을 생각했다. 스티브 라이히와 필립 글래스로 대표되는 1세대 미니멀리즘 작곡가들은 리듬에 중점을 두거나 이국적인 배경 등을 작품에 녹여냈다. 

뉴 에이지 음악과도 그 경계를 함께 하고 있으며 동양 음악의 다소 늘어지는 성격이나 명상적인 요소도 함께 느낄 수 있는 미니멀리즘도 있었다. 2세대 미니멀리즘의 선두 주자라고 할 수 있는 존 아담스(1947~)의 작품들이 그 대표적인 예다. 뉴잉글랜드에서 자란 그는 어린 시절부터 클라리넷 연주에 소질을 보였고, 지역 오케스트라를 지휘할 만큼 음악적 능력이 뛰어났다. 하버드대학교를 졸업한 그는 1971년 현대음악의 메카인 샌프란시스코로 옮겨 활동을 시작했다. 1978년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현대음악 감독(advisor)으로 일하면서 최초의 미니멀리즘 작품을 발표하게 된다. 

피아노 독주곡 ‘프리지안 게이트(Phrygian Gate, 1978)’는 연주시간이 25분가량 되는 작품으로 샌프란시스코에서 피아니스트 맥 맥크레이(1943~)의 연주로 초연되었다. 이 곡은 미니멀리즘 작품 중 솔리스트가 무대에 올리기에도 손색이 없는 레퍼토리로 꼽힌다. 존 아담스의 음악적 양식을 처음으로 보여주는 작품이자 음렬기법과 음향 위주의 음악이 주류를 이루던 현대 음악에 조성음악적인 양식의 복귀를 예고하는 의미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프리지안 게이트’에서 아담스는 규칙적인 리듬 안에 사용된 불규칙적인 엑센트로 전체적인 곡의 진행 방향을 보여주기도 하고, 수직적이고 수평적인 리듬의 연속으로 이루어진 폴리리듬(poly rhythm)으로 독특한 미니멀리즘을 추구했다. 프리지안 선법(mode)의 구성음과 5도의 간격으로 구성된 순환구조의(A-E-B-F#-C#-G#…) 음들, 그리고 조성을 확립해주는 주는 7화음 등을 사용하였다. 또한 재즈의 감성도 담고 있어 현대인들을 위한 맞춤 음악과도 같은 느낌도 구현했다.  

존 아담스는 미니멀리즘에서도 작품 속에서도 특별히 ‘화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작곡했다. 그는 자서전에서 ‘화성은 가만히 한 곳에 있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조성으로 바뀌고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게 하여 듣는 이로 하여금 집중할 수 있는 힘을 준다’고 화성의 중요성을 이야기 했다. 음악에서의 미니멀리즘의 특성으로 최면이나 명상과 같은 효과를 꼽는데, 그의 음악은 이런 점에서 듣는 이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

존 아담스는 다양한 기법으로 소재들을 자신의 기법으로 소화하며 대중과 가장 가까워졌다. 그의 미니멀리즘은 단순히 소리와 리듬의 반복에만 그치지 않았다. 중세의 선법과 바로크 시대의 대위법적 작곡법, 그리고 고전과 낭만시대를 통하는 화성과 인상주의의 묘사적 기법을 비롯하여 재즈 풍의 감성까지 모두 작품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특히 오케스트라 작품 ‘빠른 기계 속에서의 짧은 주행(Short Ride in a Fast Machine, 1986)’에서는 긴장감 넘치는 속도로 표현된 미니멀리즘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화성의 기능이 배제된 음렬주의 기법의 음악들과 리듬 위주의 1세대 미니멀리즘과는 정반대였다. 풍부한 화성으로 청중이 집중하여 감상할 수 있는 존 아담스만의 발전된 미니멀리즘이었다. 존 아담스는 반복과 변형이라는 기본적인 명제를 따르면서도 자신만의 어법으로 ‘현대음악은 듣기 어렵고 난해하다’라는 고정관념을 깨뜨렸다.  

존 아담스의 미니멀리즘 음악을 감상하면 ‘수연불변(隨緣不變)’을 떠올리게 된다. 연(緣)에 따르지만, 본질과 근원은 변하지 않는다는 뜻을 음악에도 적용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그의 작품들은 모두 ‘미니멀리즘’이라는 본질은 변함이 따르고 있고, 동시에 그 상황에 맞게 대응하고 융통성 있게 변화를 주어 만들어진 뛰어난 작품들이다. 

여성 작곡가로는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엘렌 타페 츠빌리히(1939~)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우리 시대의 음악을 잘못 분류해 왔다. 음악에는 여흥만을 위한 음악과 심오하기만 한 음악이 있다. 만약 우리가 예술가로서 충분히 인간적이길 원한다면, 인간의 모든 경험을 관통하여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어쩌면 존 아담스는 작품들은 이러한 화두에 대한 답일지도 모른다. 작품성과 대중성을 모두 가질 수 있었던 그의 작품들은 경전의 내용처럼 현대음악의 고정관념을 깨준 훌륭하고 멋진 작곡가가 아닐까. 

김준희 피아니스트 pianistjk@naver.com

[1584호 / 2021년 5월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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