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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교구제와 전법도생

인구분포에 따른 인적·물적 자원 재배치 필요

불조 말씀은 목수가 사용하는 먹줄처럼 수행·포교 기준
설법 담당할 스님과 신도들 부족 고려한 거점사찰 필요
전문 수행 거친 주지스님이 설법·수행 지도하도록 해야

교구제를 비롯한 불교 제도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해왔다. 사진은 1922년 각황사에서 불교개혁을 주제로 회의를 진행하고 있는 30본산 주지스님들. 출처 ‘한국불교100년’(민족사)
교구제를 비롯한 불교 제도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해왔다. 사진은 1922년 각황사에서 불교개혁을 주제로 회의를 진행하고 있는 30본산 주지스님들. 출처 ‘한국불교100년’(민족사)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는 육로와 해로를 통해 주변 지역으로 전파되었다. 전통적으로 한국불교는 중국 지역으로부터 수입되었다. 경전도 한문으로 번역된 책을 사용했다. 그리고 각종 제도도 소위 ‘중국화’된 불교였다.

물론 우리가 능동적으로 받아들인 제도이지만, 일제가 이 땅을 식민지하여 ‘일본화’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런데 이제는 새로운 ‘대한민국’ 시대가 열렸으니, 지난 역사 전통에서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수정할 것은 수정해야 할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새로운 제도의 수립도 필요하다. 그 중의 하나가 ‘교구’ 제도 운영이다.

이하에서는 ‘종학적 결단 차원’에서 작금의 ‘교구별 본말사 제도’를 재고해보고자 한다. 특히 재가불자들의 종교생활 측면에서 말이다. 먼저 생긴 유래를 간단하게 공람하여, 이 시대에 필요한 제도를 모색해보고자 한다. 필자가 위에서 ‘종학적 결단 차원’이라고 한정한 이유는, 이미 이 방면의 학문적 연구는 많이 축적되어 있기 때문이다.

중국 지역에서는 고대 봉건 국가가 정착되어감에 따라 유교적 이념을 바탕으로 하는 각종 제도가 사회 곳곳에 퍼졌다. 유교적 이념을 구성하는 ‘천명(天命)’ ‘천하(天下)’ ‘인민(人民)’ ‘왕토(王土)’ ‘종법(宗法)’ ‘가(家)’ 등의 중요 이념들은 불교에도 영향을 미쳤다. 천명을 받은 천자는 인민들에게 ‘토지’를 하사하고, 인민들은 천자에게 ‘충성’을 맹세한다.

출가자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들은 줄곧 ‘방외(方外)의 객(客)’으로 대접받기를 주장했지만, 천자의 권력이 못 미치는 ‘천지사방 밖에 사는 나그네’로 두지 않았다. ‘가(家)’라는 공동체를 벗어나서 ‘사(社)’ ‘관(觀)’ ‘사(寺)’ 등으로 표기되는 수행공동체로 들어가는 것은 천자의 허락이 필요했다. 그 공동체의 대중이 되기 위해서는 천자의 명을 받아 관청에서 발급한 ‘도첩(度牒)’이 있어야 했다. ‘도첩’을 받으면 국법에 따라 토지를 받고, 각종 세금과 부역과 병역을 면제 받았다. 그 도첩에는 본인의 인적 사항과 더불어 소속 ‘종(宗)’과 ‘사(寺)’와 ‘사승(師僧)’을 적고 끝에는 예부판서의 날인을 했다.

옛날 우리나라 상황도 대동소이했다. 조선 개국에서 태종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종’과 그에 소속된 ‘사’가 괄호 안의 숫자만큼 있었다. 이하는 동국대 김영태 교수의 연구 결과이다. 

조계종과 총지종(70), 천태 소자종과 천태 법사종(43), 화엄종과 도문종(43), 자은종(36), 중도종과 신인종(30), 남산종(10), 시흥종(10).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오는 당시의 정황을 짐작할 수 있다. 조선의 최고 법전인 ‘경국대전’에도 이런 정황이 반영되어 도승(度僧), 도첩식(度牒式), 승과(僧科) 관련 법조항이 제정되었다. 그러나 유교를 국시로 하는 조선에서 이 제도는 거의 유명무실했다. 학자들은 이 시대의 불교를 ‘무종산승(無宗山僧)’이라 칭한다.

긴 세월이 흘렀다. 조선의 봉건을 강제로 해산시키고 이 땅을 점령한 일본은 조선총독부를 설치했다. 그렇게 한 다음해인 1911년 6월 ‘사찰령’ 총 7조를, 두 달 뒤에 ‘사찰령시행규칙’ 총 8조를, 차례로 발표한다. ‘사찰령시행규칙’ 제2조에는 당시 행정구역인 ‘도(道)’ 별로 1개 내지 3개에 달하는 큰 사찰 총 29개를 지명하고, 그 절 주지의 임면은 조선총독의 허가 사항임을 명시했다. 나머지 절은 지방장관의 허가 사항임도 명시했다. 소위 ‘본산’ 제도의 시작이었다. 그 후 변화를 거쳐 31에서 33본산으로 늘어났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는 이전 제도를 바탕으로 말사들을 배치했다.

돌이켜보면 대한민국의 행정구역도 여러 번 변동을 거쳐 지금처럼 광역화단체화 되었다. 그렇게 변동하게 된 요인에는 인구 분포가 고려되었다. 또 국토와 지역을 균형 있게 발전시키겠다는 뜻도 들어있다. ‘교구’제가 되었던 혹은 ‘종무원’제가 되었던 인구 변동에 따른 변화가 필요하다.

인구뿐만 아니라 사찰의 기능에도 변화가 생겼다. 과거에는 출가불자의 수행과 삶의 공간이었다. 그런데 현대에는 과거의 그런 기능에 더 보태져 재가불자의 종교생활 공간도 되었다. 이와 더불어 승려들의 역할에도 변화가 생겼다. 본래의 역할이었던 수행에 포교의 요구가 더 보태졌다.

이런 변화의 지점에서 과거를 다시 돌아보자. 지금의 ‘교구’ 제도는 근대 국가의 통치개념을 바탕으로 했지만 식민지 왜곡이 작동했다. ‘본산’ 제도를 더 거슬러 올라가 봉건왕조의 ‘종(宗)’을 보면, 거기에는 왕권과 권문세가들의 ‘권력의 뒷배’가 작동했다. 고려시대 대각국사 의천 스님이 천태종을 세워 왕실에 힘을 실어주고자 했던 것도 그런 사례이다. 조선이 불교를 배척한 근본 이유도 기득권 세력을 흔드는 사대부들의 새 판 짜기였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시민의 종교생활이라는 발상은 들어있지 않았다. 물론 당시는 시민이라는 개념은 없었지만, 출가자가 아닌 다수의 사람들을 위한 종교 생활과 그 생활을 위한 공간으로서의 사찰 기능은 생각도 못했다.

세상은 달라졌다. 재가불자들은 자신들의 종교생활을 위해서 사찰을 찾는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출가불자들에게 요구하는 역할도 달라졌다. 자신의 수행도 해야겠지만 포교도 해야 한다. 포교하는 방법과 장소는 여러 가지이지만, 중심은 법회이다. 그리고 법회의 핵심은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과 부처님과 조사님의 ‘말씀’이다. 재가불자들은 출가불자들에게 재물을 보시하고, 한편 출가불자는 재가불자들에게 불법을 보시하는 그런 만남의 공간이 사찰이다.

이런 현대의 변화에 맞추어 현행 ‘교구’ 제도도 재편되어야 할 것이다. 인구의 분포에 따른 인적 물적 자원의 재배치가 필요하다. 출가수행 공간으로서의 사찰 기능만 생각하면 오히려 깊은 산속이 좋을 것이다. 전통 종단의 교구본사들은 대개 그런 공간에 있다. 수행을 전문으로 하는 승가대학과 선원도 그런 곳에 있다. 그런데 그런 곳에는 일반 사람은 적고, 반면에 수행한 스님들은 많다.

설법을 담당할 스님의 숫자와 또 참석할 신도들의 숫자를 고려할 때에 현실적으로 모든 사찰이 다 법회를 하기는 어렵다. 금년 통계에 의하면 기도회는 많지만 법회는 그렇게 많지 않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첨언해둔다. 필자가 말하는 법회는 일정기간 경전을 익혔거나 참선을 닦은 스님께서 부처님과 조사님들의 말씀을 전하여 중생을 제도하는 즉, ‘전법도생(傳法度生)’을 말한다.

현행 교구 관할 구역과 그곳에 사는 인구를 기준으로 접근성과 수용 건물 등을 고려하여 법회 거점을 세분화할 필요가 있다. 불자들의 기도와 불공은 저마다 인연 있는 절에서 지금처럼 하더라도 법회는 거점 사찰별로 모여서 개최하는 방안이다. 물론 거점 사찰에는 위에서 말한 전문 수행을 거친 스님이 주지로 파견되어야 할 것이다. 불조의 말씀은 목수가 마름질할 때 띠우는 먹줄처럼 수행과 포교의 기준이다.

신규탁 연세대 철학과 교수 ananda@yonsei.ac.kr

[1587호 / 2021년 6월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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