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유·도가사상의 발원지 濟南
③ 유·도가사상의 발원지 濟南
  • 이재형
  • 승인 2004.08.10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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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산 가로질러 춘추전국의 무대에 서다
드디어 어둠오고 지상의 길 끊겼네
까마아득 하늘길로 그대에게 가리라

스러진 해와 달 넘어 바람은 불어가리니
육신을 벗는다고 네가 그립지 않으랴

북한강 둑 풀섶에 망초꽃이 지는 날
이승의 노을에 잠시 고단한 몸 눕힌 것뿐

흙비가 내리면 흙비의 세례 받고
만년설산 골짜기에 시린 등을 비비며
언제나 떠나왔기에 돌아갈 곳 있으리

(김일연의 『서역 가는 길』)






눈을 떴다. 시계는 오전 6시30분을 가리키고 있다. 창밖으로 그림처럼 펼쳐져 있는 웨이하이의 풍경에 시선이 머문다. 멀리 희뿌옇게 솟은 두 개의 섬, 그 사이로 새벽바다를 가르는 고깃배 몇 척. 마치 오래된 산수화 속에 들어온 듯한 감흥을 일으킨다.

서둘러 짐을 챙기고 식당으로 내려갔다. 뷔페로 안내하는 어여쁜 중국 아가씨의 맑은 미소가 아침햇살보다 보드랍다. 어제 일행에 합류한 중국인 까오린(高林) 씨와 조선족 청년 오승걸·리철남 씨도 보인다. 음식은 대부분 기름진 중국식이지만 된장국과 김치도 있다. 중국에선 이곳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머리 속 생각과 달리 손길은 이미 익숙한 한국 음식들로 향한다. 맛깔스런 김치 맛이 웬만한 한국식당 못지않다. 낯선 음식에 대한 걱정이 공연한 기우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설핏 스쳐간다.

<사진설명>UFO? 전망대? 중국식의 독특한 전조등이다.

우리가 출발한 것은 8시가 다 돼서다. 첫 목적지는 시내 맞은 편 외곽에 있는 ‘업무대청(業務大廳)’. 운전면허부터 주차관리까지 자동차와 관련된 모든 것을 관할하는 기관이다. 실크로드를 달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면허증인 만큼 이곳에서 반드시 운전시험에 통과해야 한다. 다섯 대로 나눠 탑승한 일행들은 도시를 가로지르기로 했다. 교통신호가 엉성하거나 혹은 없는데도 그 많은 차들이 사거리를 헤쳐가는 것이 용하다. 그 와중에 무단 횡단하는 사람들의 용기 혹은 무감각은 혀를 내두를 정도다. 무리하게 끼어드는 밉살맞은 운전자가 서울에만 있는 건 아니었다. 우리는 차량들이 한 일행임을 알 수 있도록 붉은 신호봉을 꺼내 들었다. 다른 차가 끼어 들지 못하도록 차량 간격도 최대한 좁혀 줄지어 나아갔다.

<사진설명>확일화 된 주택들. 60~70년대 윌나라 새마을운동을 연상케 한다.


중국 현지에서 운전면허 취득

출발한 지 20분 정도 지났을까. 교통경찰이 갑자기 길을 막아섰다. 무리 지어 가는 우리를 폭주족쯤으로 판단했나 보다. 사정을 얘기하고 관련 서류를 보여줘도 통 막무가내다. 스텝 중 한 사람이 어디에 전화했는지 곧 흰색 번호판을 단 군 관계자가 등장했다. 그에게 잠시 정황설명을 하고 있는 동안 그토록 깐깐하게 굴던 경찰이 슬며시 꼬리를 내리고 어느새 보이지 않는다. 이곳 중국에서 인민해방군의 파워에 도전할 사람은 없다는 게 조선족 청년의 설명이다. ‘콴시(關係)’, 소위 빽 없이 아무 것도 되는 것이 없고 출세도 할 수 없다는 그의 자조 섞인 뒷말이 우리를 더 씁쓸하게 한다.

잠깐 동안의 해프닝이 끝난 뒤 우리는 해방군의 화려한 호위(?)를 받으며 업무대청에 들어섰다. 축구장 크기는 됨직한 곳 여기저기에 운전연습이 한창이다. 멋을 잔뜩 낸 아줌마나 아가씨들도 간간이 띈다. 자동차가 사치품 차원을 넘어 이미 중국 도시인들의 생활 깊숙이 자리 잡고 있음이 새삼 실감난다. 우리 일행들이 면허시험을 본 것은 도착한지 30분 가량 기다린 후다. 시험은 의외로 간단했다. 차를 몰고 근처 도로에서 직진, 좌회전, 우회전 한번 씩 해보는 게전부다. 적성검사도 키, 몸무게, 혈압 등을 모두 체크했지만 시력검사는 대표자만 하는 것으로 끝이다. 말 그대로 요식행위다. 내국인에게는 꽤나 까다롭지만 외국인에 대한 중국 측의 특별한 배려라는 게 까오린 씨 설명이다. 한국에서 달고 왔던 녹색 번호판 대신 새로 발급 받은 흰색을 달았다. 번호판이 바뀌니 차가 달라 보인다. 일행들은 이국 땅에서 면허를 받은 색다른 체험 탓인지 즐거워들 하는 표정들이다. 단체 외국인에게 임시 면허증을 주는 흔치 않은 광경에 이 지역 신문, 방송사의 취재열기도 뜨겁다.


사람과 차 얽혀 극심한 교통난

실크로드 대장정 준비 완료. 우리는 힘찬 환호성으로 그 기쁨을 표현했다. 오늘의 최종 목적지인 지난(濟南). 538km의 만만찮은 거리다. 선두 1호차가 엑설레이터를 힘차게 밟는다. 이에 뒤질세라 나머지 차들도 앞차를 힘차게 쫓는다. 속도가 오를수록 유선형의 차는 땅을 향해 납작 엎드린다. 창틈 사이로 바람이 소용돌이치며 거친 파열음을 쏟아낸다. 논과 밭을 끌어안은 넉넉한 산들도 제법 빠르게 뒷걸음친다.

1시간쯤 달렸을 무렵 멀리 태산(泰山) 줄기가 보인다. ‘하늘이 높다하되 태산아래 뫼이로다’ ‘티끌 모아 태산’ ‘걱정이 태산 같다’ 등 한국인에게도 중국의 태산은 대단히 익숙하다. 그것도 거대함의 대명사로. 그 태산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

사실 알고 보면 태산은 해발 1532m로 우리나라 1915m인 지리산보다 훨씬 낮다. 4000~5000m가 넘는 산이 숱한 중국에서 하필 공자가 이곳에 올라 왜 천하가 작다고 했는지 선뜻 와 닿지는 않는다. 어쨌든 이 산이 진시황 이래 중국 역대 황제들이 천지를 받는 봉선의식을 해왔고 도교와 유교의 발상지였다는 점을 떠올리면 중국인들이 가장 성스럽게 여기는 산인 것만은 분명하다. 2600여 년 전, 극도로 혼란한 시대에 세상을 구하고자 천하를 떠돌았던 늙고 지친 공자의 모습이 눈에 어른거린다. 왜 공자는 ‘초상집 개 같다’는 야유를 받으면서까지 정치를 하려 했을까? 아마 정치(政)란 세상을 바로잡는(正) 일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태산산맥을 옆에 끼고 세차게 나아갔다. 점심시간을 한창 넘겨서야 휴게소가 보인다. 입구에는 약 20m의 가늘고 긴 기둥 위로 UFO를 얹고 있는 듯한 특이한 모습의 조형물이 서있다. 뭘까. UFO가 걸려 있는 것은 아닐 듯하고, 전망대 같지만 올라갈 수 없으니 그것도 아닌 듯 싶고…. 나중에 알고 보니 전조등이다. 산둥성 지역의 휴게소나 광장 등에는 전조등 대부분이 이런 형태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형태다.

허기를 달랠 수 있으리라는 마음으로 들른 휴게소에 음식이 다 떨어졌단다. 앞으로 수십 키로는 더 가야 다른 휴게소가 있을 것이라는 말에 스님들은 컵라면이라도 먹자며 준비해 온 보따리를 풀었다. 휴게소 한켠에 모여 우리는 라면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시장기가 반찬인지 웬만한 음식보다 훨씬 낫다.

우리는 다시 먼길을 재촉했다. 도로상태가 양호하지만 여기저기 곳곳에서 공사가 끊이질 않는다. 분리대에 심어 놓은 사철나무의 푸른빛이 곱다. 고속도로 옆으론 붉은 지붕으로 획일화된 집들이 끊임없이 다가왔다 사라져 간다. 60~70년대 우리나라 새마을 운동을 연상케 한다. 지난에 가까워질수록 방직·제철 공장들이 불쑥불쑥 나타난다. 웨이하이의 맑은 하늘은 간데없고 스모그에 공기까지 탁하다. 무거운 바람에 물기가 묻어나는 듯 하더니 해가 질 무렵에는 빗방울이 차창을 두드려 댄다. 그러잖아도 공장지대에 들어서 꾸무럭한 분위기에 굵은 비까지 내리니 마음까지 흐려진다. 춘추전국시대의 중심무대 지난은 그렇게 다가왔다.

<사진설명>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안마사들. 이 사람은 27년 경력의 고수다.

시내는 혼란 그 자체다. 여기저기 끊임없이 울려대는 경적, 함정처럼 움푹움푹 패인 물구덩이, 무단 횡단자들. 이곳이 정말 제나라 노나라의 도읍이었고, 공자와 맹자의 활동무대일까. 어렵게 도시를 질러 숙소에 닿았다. 미리 예약한 음식점에서 식사를 마치니 그제야 여유로움도 생겼다. 우리는 가까운 추안청(泉城)공원으로 향했다. 물이 흔한 곳이라는 게 지명에서도 느껴진다. 지금도 박돌천·흑돌천 등 샘에서는 마치 물이 보글보글 끊듯 솟아오른다고 한다.


거리 예술가도 실력은 수준급

10여 분 걸어가니 멀리 화려하게 솟아오른 추안피아오탑(泉標塔)이 빛을 뿜어내며 웅장하게 서있다. 산책을 나온 가족들이 많았으며 꼭 껴안고 앉아있는 연인들도 보인다. 공원 정면 전시실에 순임금, 관중, 공자, 묵자, 제갈공명, 왕희지 등 산둥성 출신의 위인들 조각상이 과거 정치·문화의 중심지였음을 대변이라도 하듯 서있다. 거리의 묵객들이 현란한 서체로 공원 바닥에 시를 쓰는 모습도 보인다. 먹물 대신 물로 쓰는 것이어서 곧 마르고 말지만 한 획 한 획에 정성을 다하는 모습이 문화의 고장답다. 한국에서 왔다는 말에 날마다 이곳에 나와 글을 쓴다는 50대 남자가 즉석에서 시 한 수를 휘갈긴다. ‘明月松間照 淸泉石上流(소나무 사이로 밝은 달 비추고, 돌 위로는 맑은 샘 솟아 오르네)’.

<사진설명>공원의 묵객. 그는 매일 이곳을 찾아 물을 먹 삼아 바닥을 종이 삼아 글을 쓴다.

흥이 난 거리예술가는 잇따라 글을 써 내려간다. 이번에는 초서다. 평소에 공부를 해 둘걸…. 알아보지 못하는 짧은 한문 실력이 못내 안타깝다.

숙소 앞에는 어느새 안마사들이 진을 치고 있다. 15분에 10위옌. 우리나라 돈으로 3000원이다. 한 번 받아보라는 권유에 밀려 그 의원에게 몸을 맡겼다. 27년째 안마를 하고 있다는 이 맹인 의원은 양손으로 사람들의 몸을 꿰뚫어 보는 듯 하다. 긴장이 풀리고 몸이 나른해온다.

내일 달려야 할 1036km를 생각하니 안마사의 손길이 그리 편안하게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글·사진=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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