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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기자명 김준희

세간 혹평에도 흔들리지 않은 평정심의 역작

법률가의 안정된 삶 떨치고 음악 향한 열정으로 새 인생 개척
러시아 음악 완성으로 평가되는 대작도 당시엔 비판 잇따라
성공 못했을 때에도 열정 놓지 않고 자신의 독창성 지켜내

당대 평론계로부터 혹평에 시달리기도 했던 차이콥스키는 고통 속에서도 음악을 향한 열정을 잃지 않으며 장인정신과 독창성을 지켜냈다. 
당대 평론계로부터 혹평에 시달리기도 했던 차이콥스키는 고통 속에서도 음악을 향한 열정을 잃지 않으며 장인정신과 독창성을 지켜냈다. 

러시아의 대표적인 작곡가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의 음악에는 깊은 울림이 있다. 우울함과 고독에 쌓여 평생 동안 어두운 감정을 지닌 작곡가에게서 탄생한 서정적인 멜로디와 빈틈없는 구조적 완벽함은 아이러니한 감동을 주기도 한다. 교향곡, 협주곡, 실내악곡, 발레음악을 비롯해 소품에 이르기까지 전 장르를 통해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선율들이 이어지는 그의 작품들은 감상자들에게 최고의 몰입도를 자랑한다. 

차이콥스키는 러시아의 광산을 관리했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균형 잡힌 가정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법률가로서 평범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상트페테르부르크 법률학교에 입학해 사관생도와도 같은 학창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가져왔던 음악에 대한 열정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에 법무부에서 일하면서도 러시아 음악협회의 강의를 수강하게 된다. 2년여를 고민하던 끝에 그는 1863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콘서바토리의 정식 학생이 됐다. 

그 무렵 차이콥스키는 러시아의 여러 음악가들과 만나면서 음악적 반경을 넓혀갔다. 특히 엑토르 베를리오즈와 만난 이후 관현악 기법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됐다. 또한 ‘러시아 5인조(발라키레프, 무소륵스키, 보로딘, 림스키-코르사코프, 큐이)’와 교류하며 러시아 민속음악과 민족주의 음악에 대한 관심을 이어갔다. 젊은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작품 중 그의 낭만성과 러시아적인 감성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소품은 ‘Romance 바단조, Op.5’이다. 쇼팽의 녹턴이나 멘델스존의 무언가와 비슷한 분위기의 살롱풍의 작품으로 피아노곡이지만 마치 관현악곡을 편곡해 놓은 것과 같은 느낌을 준다. 중간 부분의 발랄한 열정은 다소 동양적인 분위기도 담고 있다. 

차이콥스키의 작품들은 러시아 음악의 완성이라고 평가 받는다. 하지만 그가 활동하던 시기에는 여러 가지 혹평들이 오고갔다. 대표적인 작품이 ‘피아노 협주곡 제 1번 Bb단조, Op.23’이다. 차이콥스키는 다른 여느 작곡가들처럼 피아노를 가장 잘 다루었지만, 피아노가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하는 구성의 작품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1874년 첫 번째 교향곡을 출판하고 음악계에 이름을 알리자, 협주곡이라는 장르에도 호기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는 7개월간의 노력 끝에 피아노 협주곡을 완성하고 니콜라이 루빈슈타인 앞에서 첫 선을 보인다. 당시 최고의 피아니스트였던 루빈슈타인에게 자신의 역작을 들려주고 칭찬을 기대했던 차이콥스키는 심한 혹평을 듣고 절망에 빠졌다. 평소 존경했던 피아니스트에게서 “이 곡은 피아노라는 악기를 이해하지 않은 채 작곡됐고, 따라서 제대로 연주할 수 없고, 독창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여러 부분 수정이 필요하다”는 말을 들은 그는 심한 우울감에 빠졌다. 동시에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고, 그는 후원자에게 ‘이 곡의 단 한음도 고치지 않겠다’는 편지를 쓰기도 했다. 

하지만 심기일전해 피아노 협주곡의 총보를 완성해 또 다른 피아니스트 한스 폰 뷜로를 찾아간다. 이미 차이콥스키의 작품을 몇 차례 연주한 적이 있었던 뷜로는, 그의 피아노 협주곡에 찬사를 보냈다. 1875년 10월, 러시아가 아닌 미국의 보스톤에서 뷜로의 협연으로 초연된 피아노 협주곡은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뷜로는 차이콥스키에게 “공연은 성공적이었다. 마지막 악장을 두 번이나 연주할 만큼 보스톤의 청중들은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라고 전했다.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은 현재 연주되는 피아노 협주곡 중 명작으로 꼽힌다. 가장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작품이기도 하다. 차이콥스키는 이 곡으로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에게 혹평을 받아 극심한 우울감을 느꼈지만 미국에서의 초연으로 오히려 국제적인 명성을 쌓을 기회를 가졌다. 피아노 협주곡의 성공으로 차이콥스키는 새로운 음악시장인 미국에서 이름을 알리게 됐다. 이러한 성공에도 그의 음악은 당대에 여러가지 평가를 받았다. 서유럽에서는 정통성이 부족한 음악이라는 비판을, 러시아에서는 민족적이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대중들이 이해하기 쉽고 깊은 감동을 받는 음악이었지만 평론계에서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던 것이다.  

심한 우울감과 정신적 고독감에 시달렸던 차이콥스키지만 그가 말년에 쓴 작품에 대해 비평가들이 혹평을 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사람들이 곡을 진짜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비평가들이 비방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해 할 것 없다. 처음 있는 일도 아니고. 하지만 나 자신은 지금까지 쓴 작품 중 최고이고 특히 가장 진실한 작품이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내가 낳은 그 어떤 작품보다도 좋아한다.” 차이콥스키에 대한 당시의 평가와 이에 대한 그의 행보는 ‘원각경’의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깨달음을 완성한 보살은 법의 속박을 싫어하지도 않고 진리의 해탈을 구하지도 않는다. 또한 생사를 싫어하지도 않고, 열반을 좋아하지도 않으며 계를 지키는 사람을 특별히 공경하지도 않지만 계를 파한 사람을 싫어하지도 않는다. 또 오랫동안 수행한 사람을 존경하지도 않지만 처음 배우는 이를 가벼이 여기지도 않는다. 모든 것이 원각이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안광(眼光)이 앞의 경계를 비쳐볼 때 그 빛 자체는 원만해도 미움도 사랑도 없다. 광명 자체는 둘이 아니기 때문에 미워할 것도 좋아할 것도 없기 때문이다.(원각경 제3보안보살장)’ 

그는 매서운 혹평을 들은 후 일생동안 깊은 고독감, 타인에 대한 공포, 불안감 등을 느꼈다. 하지만 예술가로서 차이콥스키는 시작부터 끝까지 항상 ‘음악가’로서의 본분을 잃지 않았다. 언제나 성공했던 것은 아니지만, 성공하지 못했던 시기에도 그의 음악에는 열정이 담겨져 있었다. 차이콥스키의 음악에는 완벽한 장인 정신, 강렬한 독창성 그리고 넉넉하고도 위대한 마음가짐이 담겨있다. 

법률가로 시작된 그의 인생은 음악가의 길로 들어서며 굴곡을 겪었지만, 차이콥스키는 자신에게 늘 정직하고 음악 앞에 진지했다. 고통 속에서도 평안을 찾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예술가의 숙명인 것처럼, 그는 작품으로 순수한 매력을 빚어냈다. 근심과 두려움, 장애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원각경 ‘보안보살장’의 내용처럼, 차이콥스키의 작품에는 그가 평생 존경했던 모차르트에게서 느껴지는 음악적 순수함이 격렬하게, 온화하게, 때로는 너그럽게 표현되고 있다.

김준희  피아니스트 pianistjk@naver.com

[1589호 / 2021년 6월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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