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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김용희의 ‘경운기’

들 일하는 소‧외양간 사라진 시골
할아버지‧할머니 돕는 경운기 묘사

소 대신 들여온 농기계 경운기
이른 봄날부터 들에 나가 일해
할아버지‧할머니 따라 늙었어도
할아버지 다정한 손길에 힘 내

시골에 가서 보면 느끼는 일이다. 고향을 지키는 이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다. 시골에는 젊은이가 줄고 있다. 시골에는 소가 없다. 집집마다 엄마소가 송아지에게 젖을 먹이던 외양간이 있었다. 오늘의 시골에는 소와 외양간이 없어졌다. 소가 하던 논밭갈이는 경운기가 맡고 있다.  “툴툴툴툴….” 경운기 소리가 송아지 울음을 대신하고 있다.  

나이가 젊은 아버지 어머니들은 도시로 나가 공장을 차리거나 공장주를 도와서 기계를 돌리고 있다. 아니면 다른 건설업에 땀을 흘린다. 젊은이가 없으니, 시골에는 어린이가 없다. 아빠 엄마를 따라서 도시로 간 것이다. 어린이가 없으니 몇 백 명씩 모이던 시골 학교가 문을 닫은 폐교가 된다. 아니면 전교생 몇 십 명의 작은 학교가 된다. 이것이 오늘의 시골, 오늘의 농촌 현실이다. 그래도 농촌에는 들판 가득 농작물이 자라고 있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도와서 경운기가 들판을 가꾸고 있는 것이다. 경운기의 수고를 동시에서 읽어보자.   

 

경운기 / 김용희

황소 대신 들여와서
손발 맞춘 경운기.

할아버지 따라
그새 나이를 먹더니 

털털털
힘겨운 숨소리
내리막도 소걸음.

“아직 멈춰 서지 않고
힘쓰는 것이 어디여!”.
 
등을 쓰다듬는 
할아버지 손길에

툴툴툴
기쁜 숨 몰아쉬며
오르막도 거뜬히.  

동시모음 ‘별밭’(2020) 도서출판 고향.

 
경운기는 할아버지가 황소 대신에 들여온 농기계이다. 그러나 황소의 일만하는 게 아니다. 괭이‧삽‧호미가 하던 일까지 맡아서 한다. 경운기는 얼음이 녹는 이른 봄부터 할아버지와 들에 나가서 일을 한다. 씨앗을 심을 때는 할머니도 거든다. 도시에 나가서 사는 손자 손녀를 생각하며 씨앗을 가꾼다. 

“귀여운 고것들이 오면 볶아줄 콩이다”하며 콩을 심는다. “옥수수도 쪄 줘야지”하며 옥수수를 심는다. “감자를 삶아줘야지”하며 감자를 심는다. “얘들이 수박을 좋아하는데”하며 수박을 가꾼다. 할머니‧할아버지‧경운기가 짓는 농사는 모두 손자 손녀를 위한 것이다. 벼농사도 그렇다. 집안을 지키고 있은 감나무가 익히는 감이나, 뒷산 밤나무에서 익는 밤이나, 밭둑가 호두나무에서 크는 호두가, 모두 손자 손녀를 위해서 있는 것 같아서 할아버지 할머니는 일을 하면서 기쁘다.

그런데 경운기가 할아버지 따라서 일하다가 지치고 말았다. 힘겹다는 경운기의 목소리는 “털털털”이다. 이것은 경운기의 말이기도 하다. 할아버지를 따라서 경운기도 나이를 먹었기 때문이다. 이제 ‘늙은 경운기’가 됐으니 힘겹다는 것이다. 빨리 달릴 수가 없다. 내리막도 소걸음이다. 그러한 경운기를 할아버지가 칭찬을 한다. 

“아직 멈춰 서지 않고 힘쓰는 것이 어디여!” 하는 칭찬이다. 같이 일해 왔기 때문에 할아버지는 경운기를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그러한 칭찬의 말이 나온 것이다. 할아버지는 경운기의 등을 쓰다듬어준다. 그러자 경운기는 힘이 생겼다.

“툴툴 툴툴….” 이것은 힘을 얻은 경운기의 목소리다. 할아버지 칭찬에 힘이 생긴 것이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오르막도 거뜬히 오른다. 감정을 가지고, 사유를 할 줄 아는 경운기다. 온갖 물건이 생각하고 말하는 세계가 동시의 나라이다.

시의 작자 김용희(金容熙) 시인은 경북 상주 출신이며, ‘아동문학평론’지를 통해 등단(1982)한 아동문학 평론가이며 시인이다. 동시조집 ‘실눈을 살짝 뜨고’ 등과 아동문학 평론집 ‘동시의 숲에서 길 찾기’ ‘디지털 시대의 아동문학’ 등이 있다. 경희대 교수로 있으면서 ‘아동문학평론’지 주간을 맡고 있다. 방정환 문학상, 이재철 아동문학평론상 등을 수상하였다.

신현득 아동문학가·시인 shinhd7028@hanmail.net

[1590호 / 2021년 6월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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