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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형목·경목 제도

‘기독교 국가’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이례적 특혜

1945년 불교·천도교 배제한 채 목사만 형무소 교무과장 임명
형목 제도는 폐쇄적인 형무소서 개신교 선교 독점에 효과적
‘소망교도소’ 등 현대 들어서도 기독교의 교도소 선교는 지속

미 군정청 인사행정처장으로 형목 제도 도입을 결정한 정일형 목사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파리 유엔총회 대표단으로 파견됐을 때 모습, 뒷줄 맨 왼쪽이 정일형.
미 군정청 인사행정처장으로 형목 제도 도입을 결정한 정일형 목사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파리 유엔총회 대표단으로 파견됐을 때 모습, 뒷줄 맨 왼쪽이 정일형.
2010년 개원한 경기도 여주시 북내면 소재 소망교도소(출처: 소망교도소 홈페이지).
2010년 개원한 경기도 여주시 북내면 소재 소망교도소(출처: 소망교도소 홈페이지).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던 1951년 초에 개신교와 가톨릭, 범(凡)기독교계에만 군종제도 시행을 하면서 10여년 사이에 전체 인구, 특히 젊은 층 사이에서 기독교 인구 비중이 빠르게 높아졌던 사실은 여러 차례 지적하였다. 그런데 전국의 형무소와 경찰서 유치장 등의 진입은 민족 해방의 기쁨이 다 가라앉기도 전인 1945년 12월부터 가톨릭도 배제한 채 현직 목사에게 전국의 형무소와 소년원의 ‘교무과장’ 직책을 독점하게 해주는 방식으로 오직 개신교에게만 허락하였다. 그리고 법무부 안에 이 형목 제도를 지원하는 ‘형정과(刑政課)’를 설치하기도 하였다. 이런 식으로 당시 기독교에 비하여 신도가 훨씬 많았던 불교와 천도교를 비롯한 여러 비(非)기독교 종교들의 참여를 제도적으로 원천 봉쇄했다는 점에서 그 자체가 ‘기독교 국가’에서나 가능할 법한 이례적인 특혜였다. 군종장교와 형목(刑牧)은 기독교 성직자를 현직 국가공무원으로 임용하여 상시 고용체제로 운영하였으므로, 교회의 구성원들이 공무원 신분을 얻어 핵심 국가기구 안으로 직접 편입되어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강인철 ‘종속과 자율: 대한민국의 형성과 종교정치’)

처음 형목 제도가 도입되던 과정은 아주 간단했다. “1945년 11월에 열린 ‘조선기독교남부대회’에서 정부에 형목 제도를 요구하기로 결정하고, 바로 다음 달인 12월 당시 군정청 인사행정처장이던 정일형 목사(4‧19 혁명 뒤 장면 정권에서 외무부장관을 역임하고 8선 의원을 지냄)가 이를 수용해서 제도화되었다. 중요한 점은 형무소 목사가 정식 공무원으로 임명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4‧19 이후 이 제도가 폐지될 때까지 개신교가 이를 독점하였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 같은 제도가 정교분리 원칙에 위배된다고 생각한 개신교 신자는 없었다. 형목 제도 창설에 따라 전국 18개 형무소의 교무과장 직에 일제히 목사들이 임명되었는데, 이 중 장로교 목사가 13명, 감리교 목사가 5명이었다. 또 이를 위해 설치된 법무부 형정과의 초대 과장엔 장로교의 김창덕 목사가 취임했다.”(김양선, ‘한국기독교 해방 10년사’)

외부와 단절된 폐쇄조직인 군대와 함께 형무소에서도, 배타적으로 진입한 개신교의 ‘선교 효과’가 빠르게 나타나는 것은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1949년 8월 ‘서울신문’ 보도에 따르면, 당시 어려웠던 사회·경제상황 때문일 것으로 추정하지만 전국 19개 형무소에 수용 정원의 40~50%를 초과하여 남녀 죄수 1만4000명이 수감되어 있었다. “어느 형무소에서나 지금 일주일에 한 번씩 강당에 죄수를 모아 놓고 전임(伝任) 목사가 [기독교] 성서 구절을 인용하며 인간 철학을 강의하고 있는데 이것은 각 형무소마다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고” 있었다. 물론 목사들의 전도 활동이 너무 형식적이고 때로는 죄수를 만날 때마다 ‘예수를 믿으라’고 강요하여 역효과를 내는 경우도 있었지만, “형기 3분의 1 이상을 경과한 사람에게는 그가 가출옥 할 수 있도록 주선해주는[원문에는 구신(具申)하는] 막강한 권한이 형목에게 주어져 있었으므로 형무소 선교의 효과는 높을 수밖에 없었다.(‘서울신문’ 1949년 8월12일) 수감된 죄수들에게는 자신의 가출옥을 도와줄 수 있는 큰 권력을 가지고 있는 형목들이 ‘생사여탈권(生死与奪権)을 지닌 전지전능한 신(神)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그러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형목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은혜를 베풀어주기를 바라지 않는 수감자들이 없었을 것이다. 설사 무신론자일지라도 그들을 거부하고 ‘예수를 못 믿겠다, 기독교가 싫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웠을 터다.

한편 경찰공무원과 경찰서 안의 구치소 수감자들을 대상으로 선교를 할 수 있는 경목(警牧) 제도의 경우에는 이승만 정권 시절에 공식 도입되지 않았다. 그러나 1954년 1월부터 경기도 경찰국에서는 경무과장 조재용 총경의 적극 후원으로 이미 개신교의 경찰 전도가 시작되어 매주 한 번씩 예배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모든 경찰 간부들이 교육을 받게 되는 부평 소재 국립경찰학교에서는 1956년 9월부터 대강당에서 수백 명이 참석하여 매주 일요일 예배를 진행하였으며 경찰학교 학감 이강희 경무관이 “매주 일요일 목사 초청 예배를 보고, 치안국장에게 경목제도 도입을 건의하겠다”고 밝히기도 하였다. 결국 이런 움직임들이 이어져 1960년대에 정식 경목제도 도입 분위기를 조성하였던 것이다.

이제는 교도소와 경찰서에 법당이 개설되어 스님들을 법사로 초청해 정기 법회를 진행하기도 하고, 전국교정인불자연합회가 조직되어 수백 명이 넘는 불자들이 형무소와 구치소에서 적극적으로 전법 활동에 나서고 있으며 조계종 포교사단에서도 교화활동을 적극 펼치고 있다. 그리고 전국의 지방경찰청과 경찰서마다 경승이 위촉되어 경찰공무원과 구치감 수감자 등을 위한 포교와 상담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여러 차례 거론한 군종제도와 전쟁 포로수용소에서의 배타적 진입 허용 등 기독교에만 특혜를 주고 불교를 비롯한 다른 종교계에는 접근 자체를 원천 봉쇄했던 정부의 탄압과 차별 정책 시행은 이제 더 이상 펼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2010년에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교도소’로 개원한 ‘아가페기독교소망교도소’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교정교화 시설에서 기독교, 그 중에서도 개신교에만 특혜를 주는 정부 정책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다만 소망교도소의 경우 2010년 개원된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이명박 정권의 편향 사례로 여기고 있지만, 김대중 정권 시절에 이미 ‘행형법(行刑法)’을 개정하고 ‘민영교도소 등의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을 제정·공포하여 민영교도소를 설립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였으며 수탁선정심사위원회 심사를 거쳐 2002년 3월 재단법인 아가페를 수탁운영대상자로 결정·발표하는 등 형식상 ‘다른 종교계를 포함하여 민간 부문에 문호를 개방하고 있다’는 제스처를 쓰는 방식으로 예전에 비하여 그 차별 정책을 좀 더 세련되게 다듬었을 뿐이다.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beneditto@hanmail.net

[1591호 / 2021년 6월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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