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에 백장회해 선사와 스승 마조선사의 일화를 소개하면서 언어 속에 감추어진 뜻을 깨달아야한다고 언급하였다. 기왕 백장선사의 이야기가 나온 김에 일화 하나를 더 소개하고자 한다.
어느 날 백장선사가 밤에 잠을 자다가 목이 말라 잠을 깼다. 백장선사는 시자를 깨워 물을 떠오라고 시킬까 잠깐 망설이다가 그냥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잠시 후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백장선사는 의아스러워 “누구냐”고 물었다. 문을 두드린 사람은 다름 아닌 시자였다. 백장선사는 “네가 이 밤중에 무슨 일로 문을 두드리느냐”고 물었다. 이에 시자는 “예! 큰스님 좀 전에 어떤 사람을 시켜 제게 물을 떠오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러면서 시자는 물그릇을 백장선사에게 드리는 것이었다. 그러자 백장선사는 무릎을 치면서 이렇게 탄식하였다. “아차! 그만 내가 헛수행을 하였구나. 그만 한 생각 단속하지 못하여 도량신에까지 들켜버렸구나”라고 하였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에는 겉말과 속말이 있다. 겉말은 나와 남의 귀에 들리지만 속말은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보다 신통능력을 갖춘 신들은 사실여부를 떠나 사람의 마음까지 속속들이 읽는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고 하지만 속말은 귀신들이 듣는 것이다. 보통사람들 생각으로는 도량신이 시자를 깨워 물까지 떠다 바치게 할 정도면 백장선사의 도력에 감탄할 일임에도 정작 백장선사는 오히려 허물로 여기고 깊이 탄식하였다. 누구나 일으킬 수 있는 순간적 망설임조차도 용납하지 않고 자신을 경책하는 백장선사의 수행정신에 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부처님께서는 중생의 마음을 육창일원(六窓一猿)에 비유한다. 육창일원은 여섯 개 창문이 달린 우리 속의 한 마리 원숭이와 같다는 말이다. 원숭이는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동물이다. 그런 원숭이를 잡아 창문이 여섯 개 달린 우리 속에 가두어 두면 어떨까? 창문 밖이 궁금하여 이 창문, 저 창문으로 뛰어다니면서 매달릴 것이다.
중생의 마음도 이와 같다는 것이다. 원숭이가 갇혀있는 우리는 중생의 몸이고, 여섯 개의 창문은 여섯 종류의 인식기관인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 육근(六根)이다. 중생의 마음은 육근이라는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육경(六境)을 따라 끊임없이 움직인다. 이때 움직이는 방향은 감각적 쾌락이다. 불교에서는 이렇게 중생들의 마음이 감각적 쾌락을 추구하는 작용을 갈애(渴愛)라고 한다. 이러한 갈애는 아라한이 되거나 부처가 되면 자연스레 사라진다. 불교교리 용어인 12연기 중에 애(愛)가 바로 갈애를 말한다. 불교의 궁극적 목표인 열반은 이와 같은 갈애가 소멸한 것을 일컫는다.
백장선사가 무심코 물 생각을 하면서 망설인 일도 수행의 측면에서 본다면 갈애를 일으킨 것이 된다. 백장선사의 장탄식은 이 때문에 나온 것이다. 도인들에 대한 지나친 환상에서 나온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으나 도인들의 마음은 허공과 같아 그 누구도 엿볼 수 없다고 한다. 심지어는 모든 신들의 왕인 제석천도 훔쳐볼 수 없는 것이 도인의 마음이란다.
믿어야 할지 말지는 각자의 몫이지만 신통능력이 탁월한 귀신들 중에는 사람들이 겉으로 내뱉지 않은 속말을 알아듣는다는 것이다. 타심통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입으로 내뱉지 않은 속의 중얼거림을 듣는다고 한다. 이렇게 본다면 중생들은 하루 종일 생각하면서 사니까 하루 종일 중얼거리며 사는 셈이 된다. 겉으로 소리를 내지 않을 뿐이지 쉬지 알고 떠드는 꼴이다.
중생들의 언어는 속말이 겉으로 나온 것이다. 중생들은 자신의 속말을 단속은커녕 어떻게든 밖으로 발산하려고 애쓴다. 중생들이 떠드는 소리들은 결국 자기를 알아달라는 소리들이다. 백장선사는 자신의 마음을 감추지 못한 것을 두고 탄식했던 것이 아니다. 일으키지 않아도 될 마음을 일으켜 도량신에게 전달되게 한 것을 탄식한 것이다. 중생이 마음을 일으켜 속말을 안 내고는 살 수가 없다. 속말은 자연발생적이고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심리작용이다. 그러나 가끔이라도 백장선사의 장탄식을 상기해보아야 한다.
이제열 법림선원 지도법사 yoomalee@hanmail.net
[1596호 / 2021년 8월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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