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를 하다 보면, 종종 ‘엉망인 자막을 왜 다느냐? 차라리 자막을 달지 말라’는 댓글을 다는 분을 만나곤 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 영상이 자막이 없는 영상이었다는 점이다. 세상에 이런 불가사의한 일이?
유튜브 편집에서 가장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 중 하나가 자막 작업이다. 또 자막에는 필연적으로 오타가 발생하게 마련이다. 팔만대장경에도 오타가 있는데, 어찌 자막이 완벽하겠는가!
해서 자막을 빼고 올리는 경우도 많다. ‘노가다’ 대비 효율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막도 없는 영상에 ‘자막 때문에 짜증 나니, 빼라’는 댓글이 달리는 것이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유튜브 프로그램 안에 있는 ‘자동자막’ 설정 때문이다. 즉 내가 자막을 넣은 것이 아니라, 시청자가 자동 자막을 켜고 있다는 말이다.
자동자막은 인공지능이 발달했어도 아직까지는 오류 범위가 크다. 아나운서가 아닌 다음에야 발음에 차이가 있는 것은 당연하고, 인공지능 역시 이를 완벽하게 뽑아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스스로 자동자막을 끄면 된다. 그런데도 이런 댓글이 달리는 것이다. 이는 자동자막의 기능과, 이것이 어떻게 설정되는지를 알지 못한다는 의미다. 즉 어찌어찌하다 보니, 구석에 있는 자동자막 버튼이 눌려서 생기는 해프닝인 셈이다.
이런 일은 또 있다. 하루는 학교 앞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한 노년의 신사분이 오셔서 ‘유튜브 잘 보고 있다’고 인사를 건넨다. 내가 감사하다고 대답하자, 그 어른은 전혀 예상치 못한 주문을 하셨다.
‘영상을 띄엄띄엄 올려서 순서대로 보기 어려우니, 제발 순서대로 올려달라’는 것이다. 영상 제목에 넘버까지 표기하며 순차로 올리고 있는데, 이게 대체 무슨 말인가? 이유인즉슨, 채널 안에 들어가서 채널목록을 클릭해서 보는 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나 싶겠지만, 의외로 연세 드신 분 중에는 유튜브의 구독 자체를 못 누르는 분도 많다.
유튜브뿐만 아니라, 새로운 전자기기나 프로그램은 어른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문화다. 젊은 분들이 인터넷에서 시작한 세대라면, 어른들은 주판을 쓰던 시대에서 어느 순간 인터넷 안으로 던져진 세대다. 이는 당연하게도 대처가 미흡할 수밖에 없게 한다.
여기에 어른들은 자녀를 대부분 출가시킨 경우가 많다. 이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물어볼 주변인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주변 모두가 불모지인 셈이다.
어린 시절 동네에서 바둑 두는 어른들을 보면, 선지식 한 명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동네에서 최고수가 5급이면 동네 전체가 5급 정도에서 박 터진다. 그러다가 1단이 이사 오면, 1년 안에 동네 바둑이 1단으로 상향된다. 즉 선지식 1명에 의해, 전체의 흐름이 바뀌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어른들에게는 이러한 젊은 선지식이 없다. 때문에 사소하게 수정할 수 있는 문제가 반복되는 것이다. 또 어른들은 문제를 명확하게 인지하지 못하므로, 그것이 불편하다는 인식도 별로 없다. 이로 인해 불필요한 불편함에 내몰리는 것이다.
평균수명이 짧은 시대라면, 이런 불편이 존재해도 큰 문제는 안 된다. 그러나 노년이 수십 년이 된 오늘날에는, 노년의 만족도를 위해서라도 주체적인 노력과 주변의 관심이 절실하다.
주변에 물어보는 것은 전혀 창피한 일이 아니다. 50대 이후 분들은 컴퓨터도 없었던 세월을 사셨으니, 어찌 보면 모르는 것이 당연한 일 아닌가? 그러므로 보다 적극적으로 물어보며, 행복을 쟁취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젊은 분들 역시 사소한 부분에도 관심을 가져줄 필요가 있다. 붓다의 말씀마따나, 우리의 삶터는 ‘관계망으로 구성된 연기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자현 스님 중앙승가대 교수 kumarajiva@hanmail.net
[1597호 / 2021년 8월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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