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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제76칙 숭복관확(崇福寬廓)

말하지 않아도 알게 되는 유마의 침묵과 달마의 묵언

확 트인 말씀 그 자체로 정법안장
의기투합 없다면 동문서답 될 뿐
숭복지 화상은 ‘혀 없는 사람’임을 
승에게 바로 그 자리서 직접 보여

승이 익주의 숭복지 화상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걸림이 없이 확 트인 말씀입니까.” 숭복지 화상이 말했다. “혀가 없는 사람이 하는 말이다.”

숭복지 선사는 숭복원지(崇福院志)로서 익주(益州)의 숭복원(崇福院)의 연교지(演敎志)를 가리킨다. 그 법계는 약산유엄-선자덕성–협산선회-반룡가문–숭복원지이다.

본 문답에서 언급하고 있는 말씀이란 언설로 성취되어 있지만 일체를 포함하고 있는 법어를 가리킨다. 본래 선수행에서 언설이란 불립문자로 일종의 수단과 방편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그러나 언설이 그처럼 단순한 기능만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에 선문답에서는 수단이나 방편의 언설일지라도 수단과 방편의 의미를 초월하여 언설 자체가 지니고 있는 이상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따라서 문답이 어중이떠중이들의 문답이라면 가담항설에 불과하지만 그것이 진정 선문답으로 작용하고 있는 경우에는 언설로 이루어진 문답 자체가 하나의 깨침의 기능을 담보하게 된다. 그것이 본 문답의 주제이기도 한 걸림이 없이 확 트인 말씀[寬廓之言]이다.

확 트인 말씀은 허공처럼 걸림이 없기 때문에 어디에서나 누구에게나 어떤 경우에나 언제나 격외의 이치로 작용한다. 이에 고요하여 속이 없고 확 트였으되 밖이 없는 말씀을 가리킨다. 이쯤 되고 보면 승이 질문한 걸림이 없이 탁 트인 말씀은 그 자체로 정법안장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 정법안장은 부처님의 깨침을 가리킨 말로서 삼세제불과 역대조사가 심심상인(心心相印)의 방식으로 전승하고 전수하는 거시기이다.

과연 그와 같은 말씀은 어떤 것이냐고 승은 질문한다. 숭복지 화상은 단순명쾌하게 응대한다. 다름이 아니라 혀가 없는 사람이 하는 말씀이야말로 어떤 장애도 없는 자유로운 언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혀가 없는 사람이 하는 말이란 정법안장 자체에 대하여 미주알고주알 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가리킨다. 그것은 탁 트인 말씀을 언설이 지니고 있는 형이하학적인 기능으로 끌어내려버리고 만 꼴이 되기 때문이다. 혀가 없는 사람은 분별심이 없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하는 말이란 통방정안(通方正眼)의 납자가 아니면 당최 이해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문답을 하고 있는 두 사람이 서로 의기투합되지 않고서는 십만팔천 리나 동떨어진 동문서답이 될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혀가 없는 사람이 하는 말은 무슨 말을 해도 정법안장의 소식이고, 누구에게 말을 해도 소통이 가능하다. 그런 경우라면 소리를 듣고 깨침을 터득하고 색상을 보고 마음을 해명하는 것처럼 일체의 대상이 열려 있는 관계에 놓여 있기 때문에 눈으로 소리를 듣고 귀로 색을 보는 자유로운 안목이 형성된다. 탁 트인 말씀을 이해하고 있는 경우라면 꽉 막힌 것일지라도 말하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되는 법이다.

이런 경지에 이르러서는 혀가 없는 사람은 유마의 침묵이고 달마의 묵언이 된다. 유마는 당시에 비야리성에서 불제자들과 법담을 나눌 정도로 뛰어난 달변을 지니고 있었기에 침묵을 지킬 수가 있었고, 달마는 인도에서 여섯 종파의 수장들과 법론을 통해서 죄다 굴복시켰을 만큼 언변이 자유자재한 연설가였기에 소림사에서는 판치(板齒)에 곰팡이가 필 정도로 묵언으로 일관할 수가 있었다. 이들은 이미 언설의 무궁무진한 작용과 기능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언설로 연설할 수 있는 때와 상황도 아울러 살필 수 있는 안목을 지니고 있었다. 이런 점에서 탁 트인 말씀을 추구하고 있는 승에게 숭복지 화상은 자신의 언변을 은근하게 노출시켜놓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혀가 없는 사람은 숭복지 자신이고, 혀가 있는 사람은 승이 된다. 다만 걸림이 없이 탁 트인 말씀을 숭복지 화상에게서 추구하고 있는 그 자체가 이미 암암리에 숭복지 화상을 혀가 없는 사람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리고 숭복지 화상은 자신이 혀가 없는 사람임을 직접 그 자리에서 연출해보이고 있다.

김호귀 동국대 불교학술원 HK교수 kimhogui@hanmail.net

[1598호 / 2021년 8월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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