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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브룩 노엘‧패멀라 D 블레어의 ‘우리는 저마다의 속도로 슬픔을 통과한다’

기자명 박사

어떻게 애도하고, 애도를 도울 것인가 

갑자기 가까운 이 잃은 두 저자
슬픔 터널 지나 고통 극복 찾아
아홉 개 커다란 배움과 더불어
헤쳐 나갈 구체적 방법도 제시

잃어버리는 것은 우리의 운명이다. 물건을 잃어버리고, 시간을 잃어버리고, 기억을 잃어버리고, 사랑하는 고양이를 잃어버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다.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죽기 마련. 생겨난 것은 언젠가 사라지기 마련.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잃는 것에 단련되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잃는 고통이 단련한다고 쉽게 사라질 수 있는 것이던가. 부처님의 신신당부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늘 새롭게 고통스럽고 새롭게 슬프다.

이 책을 쓴 브룩 노엘과 패멀라 D 블레어는 둘 다 아주 가까운 이를 급작스럽게 잃은 경험이 있다. 그들은 기나긴 슬픔의 터널을 지나면서 극심한 고통을 극복하는 방법을 더듬더듬 찾아나간다. 이 책은 그 결과물이다. 고통을 겪는 자신과 그를 지켜보는 주변인 모두에게 필요한, 깊고 긴 터널을 통과하는 지도다. 그들은 고통을 건너면서 배운 것의 목록을 펼쳐 보여준다. 아홉 개의 목록에는 부처님의 목소리가 묻어있다. 그들이 부처님께 직접 배운 것은 아니지만 고통에 깊이 침잠해본 사람들이 결국 발견하는 숨 쉬는 법은 서로 닮을 수밖에 없으니.

몇 가지 목록에 눈이 머문다. 첫줄은 다음과 같다. “나는 때로 ‘모른다는 것’이 내가 유일하게 아는 것임을 배웠다.” 우리는 부처님의 말씀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귀 기울이지만, 결국 궁극적으로 알게 되는 것은 ‘오직 모른다’는 것뿐이다. 해외포교에 힘썼던 숭산 큰스님은 입적하실 때 “나에 대해 걱정하지 말라. 몸에 의지하지 말라. 우리 모두 모르는 곳에서 왔다가 모르는 곳으로 간다. 오직 모를 뿐이다”라는 말씀을 남기셨다. 크나큰 상실의 순간에 우리는 우리가 안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이 뒤집히는 것을 경험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남을까. 오직 모를 뿐.

목록의 네 번째는 다음과 같다. “나는 우리가 밖에서 찾으려던 대답을 때로는 오직 우리 내면에서만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부처님이 “자등명 법등명”을 말씀하셨을 때, 부처님의 손가락이 분명하게 가리켰던 것은 달이 아니라 우리 각자의 내면이었다. 네 번째 목록은 여덟 번째 목록과 통한다. “나는 그날이 무엇을 가져다 줄 지 결코 미리 알 수 없지만, 그날이 다가왔을 때 그것을 아는 일은 오직 나 자신에게 달려 있다는 것을 배웠다.” 그날이 언제이건 이 진리는 어긋나는 법이 없다.

이 목록은 여러 차례 ‘지금’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목록의 여섯 번째는 이렇다. “나는 무가치해 보이는 순간이라도, 바로 ‘지금’처럼 소중한 때는 없다는 것을 배웠다.” 과거는 지나간 것, 미래는 오지 않은 것. 우리는 지금이 아닌 어느 곳으로도 갈 수가 없다. 그러나 마음은 늘상 이곳이 아닌 곳을 떠돈다. 특히 사랑하는 이를 잃은 이라면 어제에서 벗어나기가 더욱 어려울 것이다. 마음이 과거에 강하게 붙잡혀 있을수록, 슬픔을 통과해 나아갈 도리가 없다.

그러니 더더욱 오늘, 바로 지금으로 돌아와야 한다. 목록의 일곱 번째는 “나는 내일 ‘더 열심히’ ‘더 많이’ ‘더 건강하게’ ‘더 많은 시간을 함께’ 살거나 일한다고 해서 오늘을 보상받을 수 없다는 것을 배웠다”이고, 마지막 아홉 번째는 “나는 매 순간의 가치를 다시 배웠다”이다. 사랑하는 이를 잃으면 그와 함께 하리라 생각했던 미래도 사라진다. 지금을 희생한다고 해서 내일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오직 가치 있는 것은 지금 뿐. 지금 최선을 다해 사랑하는 것 밖에는 아무 것도 없다.

저자들은 아홉 개의 커다란 ‘배움’뿐 아니라, 헤쳐 나갈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준다. 첫 몇 주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크나큰 상실감에 사로잡힌 이를 어떻게 도울 것인가. 감정적, 신체적으로는 어떤 반응이 일어나는가. 명절이나 기념일은 어떻게 보내야 하는가. 어떻게 서로 돕고 회복할 것인가. 우리는 ‘저마다의’ 속도로 슬픔을 통과할 수밖에 없지만, 서로 이해하고 도울 수는 있다. 우리의 고통이 서로 닮았기 때문에. 우리의 사랑이 그 모든 것을 덮을 수 있을 만큼 크기 때문에.

박사 북칼럼니스트 catwings@gmail.com

[1600호 / 2021년 9월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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