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벗이여, 예를 들어 시장이나 대장간에서 가져온 청동 그릇이 깨끗하고 광채가 나더라도 그 안에 뱀이나 개나 인간의 사체를 담아 다른 청동 그릇을 덮어 다시 시장으로 내간다면, 뭔가 귀중한 음식이 담겨있다고 여겨 궁금해하던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는 혐오감을 느끼고 불쾌해지고 메스꺼워져서 배가 부른 사람은 물론이고 배가 고팠던 사람들조차 식욕이 달아날 것입니다.(중략) 예를 들어 시장이나 대장간에서 가져온 청동 그릇이 깨끗하고 광채가 나는데 그 안에 맛있는 흰 쌀죽과 여러 가지 국과 반찬을 담아 다른 청동 그릇을 덮어 다시 시장으로 내간다고 합시다. 궁금해 하던 사람들에게 그가 청동 그릇을 열어 그 안의 내용물을 보여준다면 배가 고팠던 사람은 물론이고 배가 부른 사람들조차 먹고 싶은 마음이 들 것입니다.(‘맛지마니까야’의 ‘더러움 없음의 경’ 35번 중에서)”
사리풋타와 목갈라나의 문답 중 사리풋타가 말 한 부분이다. 이 경전의 내용은 “해로운 욕망을 가진 수행자는 아무리 분소의를 입고 탁발을 하며, 나무 밑에 살아간다고 하더라도 진실한 수행자로부터 존경과 공양을 받지 못할 것이다. 반대로 악한 욕망을 버린 수행자는 비록 좋은 가사를 보시받아 입고, 좋은 음식을 공양 받아 먹으며, 마을 근처에 머문다고 하더라도 수행자로부터 존경과 공양을 받을 것이다”라는 사리풋타의 설명이 더해진다. 그릇된 수행자는 더러운 것들을 담은 청동그릇에, 올바른 수행자를 맛깔난 음식을 담은 청동그릇에 비유한 것이다.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BWV 988(1741년 작곡)’은 그의 건반악기(그 당시에는 하프시코드)를 위한 작품 중 가장 길이가 긴 곡이다. 바흐가 만든 최후의 건반악기 작품이며 바흐가 만들어 낼 수 있는 모든 작곡법이 총망라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바흐는 ‘평균율 곡집’을 비롯하여 ‘프랑스모음곡’, ‘영국모음곡’, ‘파르티타’등 상당한 작품들이 있지만, 단일 작품으로 ‘골드베르크 변주곡’ 만큼 그 규모가 큰 곡은 찾기 어렵다.
이 작품은 ‘주제와 변주곡’ 이라는 당시의 건반악기 음악의 새롭고 참신한 형식이었고, 주제(아리아)-30개의 변주–주제(아리아)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30개의 변주는 단순히 임의의 순서대로 나열 된 것이 아니라, 상당히 치밀한 논리적인 구성으로 되어있다. 가장 큰 구조적 특징은 첫 주제가 마지막에 다시 등장하는 수미쌍관을 이룬다는 것이다. 1725년 바흐가 작곡한 ‘안나 막달레나 바흐(바흐의 아내)를 위한 클라비어 소곡집’의 2권에서 빌려온 3/4박자의 느린 아리아는 스페인의 춤곡인 사라방드(sarabande)풍이다.

이 작품이 ‘골드베르크’라는 이름을 갖게 된 데에는 한가지 에피소드가 전해진다. 바흐가 드레스덴을 여행하고 있을 때, 카이저링크 백작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불면증으로 고생하고 있었던 백작은 바흐에게 잠자리에서 들을 수 있는 긴 작품을 작곡해 달라고 부탁했다. 바흐는 백작의 요청대로 긴 하프시코드 변주곡을 작곡했고, 카이저링크 백작은 그의 전속 하프시코드 연주자 골드베르크에게 이 곡을 자주 연주하게 했고 그의 불면증 증세는 사라지게 되었다고 한다. 카이저링크 백작은 이 곡을 상당히 흡족해했고, 바흐에게 거액의 사례비를 지급했다고 전해지지만, 이 이야기는 바흐가 라이프치히의 성 토마스 성당에서 일할 때 백작과의 친분을 암시하는 일화일 뿐이다,
일종의 ‘수면제’의 역할로 작곡되어 졌다는 다소 엉뚱한 에피소드와는 반대로, 이 작품의 의의는 상당하다. 균형잡힌 2개의 부분으로 이루어진 사라방드풍 아리아 주제는 왼손의 선율을 중심으로 변주되어 발전된다. 이어지는 변주곡들은 세 곡 단위로 묶여져 있고, 각 묶음의 첫곡은 캐논(canon, 돌림노래의 일종) 형식으로 되어있는데, 각각의 캐논들은 1도(한음정)씩 증가하는 규칙으로 배열되어 있다.
캐논으로 되어있지 않은 변주들은 인벤션, 푸게타, 프랑스 서곡 등등의 다양한 형식들을 구사하고 있으며 하프시코드의 두 단의 건반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연주자의 기교를 나타낼 수 있는 곡(bravura)들도 등장한다. 바흐는 간결하고 단순해 보이는 아리아 주제를 다양하고 다채로운 방식으로 변형하고 확장하는 기법을 보여주며 음악적 아름다움과 동시에 정교한 논리성을 담았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통해 바흐가 보여준 음악에 대한 체계적이고 포괄적인 접근 방법은 바흐의 다른 많은 작품 속에서도 드러난다. 하지만 길고 장대한 작품을 관통하고 있는 그의 음악에 대한 진정성은 ‘바흐의 모든 작품을 다 없애고 한 곡만 남긴다면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선택해야 한다’고 할 정도이다. 바흐는 이 작품 안에서 장르와 기법, 아이디어가 갖는 모든 가능성을 탐구하려 노력했고 체계적인 작곡 방법을 모두 질서있게 표현하고자 했다.
또한 마지막 변주는 당시 유행하던 민요의 멜로디를 인용하였는데 그 노래의 가사가 ‘나는 오랫동안 그대에게서 멀어져 있었네. 돌아와 주시오. 나에게 다시 돌아와 주오’이다. 마치 마지막 변주가 끝나고 처음과 같은 아리아의 주제가 반복되는 것을 암시하는 것 같은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 같고, 동시에 대칭의 균형미를 보여준다. 필자는 이 부분이 바흐의 음악에 대한, 그리고 인생에 대한 진정성을 담고 있다고 느껴진다. 음악가로서 음악가적인 삶 이외에도 한 생활인으로서, 가장으로서, 신앙인으로서 훌륭한 삶을 보였던 바흐의 모든 것이 담겨 있는 것 같다. 음악학자 카를 가이링거는 바흐가 이 곡에서 건반악기의 모든 것을 총망라한 노력을 “이 거대한 작품은 작곡자의 끝없는 상상력과 최고의 기술적 수완이 발휘된 작품으로서, 18세기의 건반악기 변주곡 중 이와 견줄만한 것은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높이 평가했다.
반짝반짝하게 잘 닦인 청동그릇은 보기에도 좋다. 그 안에 담긴 음식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한다. 더불어 청동그릇에 음식을 담아 놓으면 항균 및 살균 작용을 하기 때문에 쉽게 상하지 않는다. ‘맛지마니까야’에서는 부처님께 올릴 공양물을 담는 청동그릇을 수행자의 모습에 비유했다. 겉모습보다 내면의 아름다움에 대한 가르침이다.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들어보자. 정갈하고 맛있는 음식을 담은 잘 닦여진 청동그릇 같은 진정성 가득한, 내면과 외면이 모두 아름다운 음악이 느껴진다. 누군가는 잠 안오는 밤에 들었을 이 곡을, 초가을 아침에 들으며 올바른 수행자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어떨까.
김준희 피아니스트 pianistjk@naver.com
[1601호 / 2021년 9월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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