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의 세계에는 모든 사물이 생각을 지니고 있다. 하찮은 물건인 몽당연필이라도 생각을 지닌다. ‘내 할일 다 하고 몽당연필이 됐다. 내가 영희의 공책 세 권에 글씨를 썼지. 영희에게 100점을 두 번이나 맞게 했어.’ 이것이 몽당연필의 생각이다.
밤이 익는 가을이다. 밤송이들이 몸속에 알밤 형제를 키웠다. 이제 밤송이는 사랑으로 키운 알밤 3형제와 헤어져야 한다. 밤송이 엄마 생각을 동시에서 살펴보자.
밤송이 엄마 / 이명희
아들 3형제 잘 키운
밤송이 엄마.
빠꼼히 문을 열었어요.
“너희들 잘 여물었지?”
“예, 비바람 땡볕 견디면서
탱글탱글 영글었어요.”
“이제 세상에 나가도 되겠구나.”
맏형이 먼저 툭!
둘째도 막내도
툭! 툭!
집 떠난 자식 생각에
밤낮으로 문 활짝 열어 놓은
밤송이 엄마.
서리 맞아 몸이 푸석거려도
집 떠난 자식 위해
문 닫지 않고 기도해요.
이명희 동시집 ‘웃는 샘물’(2019)에서
밤송이가 벌어지고 있다. 알밤 3형제를 잘 키운 밤송이 엄마가 문을 열었다고 했다. 빠꼼히 밤송이문을 연 것이다. 그 표현이 재미있다. “너희들 단단히 여물었지?”하고 밤송이 엄마가 묻는다.
“예, 탱글탱글 잘 영글었어요.” 비바람 땡볕을 견디며 단단히 여물었단다. 밤송이 엄마는 잘 여물었다는 알밤 3형제의 말에 맘이 놓인다. “이제 세상에 내보내도 되겠구나”하고 밤송이 엄마는 마음을 놓는다. 뛰어내려도 된다는 밤송이 엄마의 허락이 났다.
“엄마 잘 계세요!”하고 맏형 알밤이 먼저 뛰어내렸다. 톡, 하고 소리가 났다. “엄마 나도 뛰어내려요!”하고 둘째가 뛰어내렸다. 톡, 소리가 났다. “우리 없으면 엄마 심심하겠어요.” 막내 알밤이 엄마 걱정을 하며 뛰어내렸다. 톡, 하고 소리가 났다.
다음은, 알밤 3형제를 키워 땅으로 내려 보내고 홀로 껍질만 남은 밤송이 엄마 마음을 생각해야 한다. 밤송이의 일을 인간 세상에 옮겨보자. 아들 딸 여러 남매를 키워서 도시로 내보내고, 시골에 남은 할머니, 할아버지 생각이 난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그래도 쉬지 않고 들을 가꾸고 텃밭을 가꾼다. 아들·딸·손자·손녀를 생각하며 쉬지를 않는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자라는 무·배추를 보고, “손자 손녀들 갖다 줘야지” 한다. 열린 오이를 보면 “꼬마들 주면 잘 먹을 텐데” 한다. 참외가 익으면 “아이들 입맛에 맞춰 달게 익었다” 한다.
수박이 익으면 “이 수박은 맏손자에게 한 아름이 되겠다”하며 따서 들고 먼 찻길을 나선다. 명절에 고향을 찾아온 자녀‧손주에게는 온 들판에서 가꾼 것을 모두 차려놓는다.
밤송이 엄마도 그와 같다. 엄마 품을 떠난 알밤 3형제 생각에 밤낮으로 가시 달린 밤송이문을 열어 놓는다. 3형제가 탈이 없도록 기도를 한다. 열린 문을 밤낮 닫지 않고 있으면서 몸이 푸석푸석해지다가, 눈 내리는 어느 날 땅으로 떨어져 밤나무 곁에서 흙이 된다. 이것이 밤송이 엄마의 마지막이다.
우리는 시골에 계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무엇으로 기쁘게 해 드려야 할까?
시의 작자 이명희(李明姬) 시인은 휴전선이 그어져 있는 강원도 양구 출신이다. 월간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했으며, 동시집으로 ‘노래 연습 꼬끼오!’ 등을 내었다. 사직골 동시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신현득 아동문학가·시인 shinhd7028@hanmail.net
[1602호 / 2021년 9월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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