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7. 안동 봉정사 단상

기자명 최명숙

고풍스러운 산사에서 느낀 경건함

조선 건축 양식 고스란히 담겨 있어
문화재 보는 눈 없어도 절로 경건
‘마음의 길’  있는 암자 향하는 설렘 
가보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감정

봉정사 대웅전과 화엄강단.
봉정사 대웅전과 화엄강단.

가을의 초입에서 안동 봉정사를 다녀왔다. 안동 대원사 주지 도륜 스님께 보리수아래 수계법회 전계사로 청하고자 갔던 길에 들린 것이다. 조계종 장애인전법단장을 맡고 계신 스님과 점점 좋아지고 있는 사찰의 장애인 환경에 관한 이야기도 나눈 후, 대원사에서 나와 봉정사로 향했다. 참으로 오랜만이다.

시간이 어중간해 택시를 탔다. 억센 안동 사투리를 쓰시는 운전기사는 봉정사에서 나오는 길에 버스 시간이며 만약 택시를 탈 경우 기차역까지 어느 길로 가면 거리가 빠르고 요금이 적게 나오는 것까지 자세히 설명해줬다. 봉정사에 도착해서도 직접 매표소에서 표를 끊어 주시고 대웅전 입구까지 태워주셨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니 버스를 놓치면 연락하라는 인사를 건네고 운전기사는 절을 내려갔다. 

금잔화가 가득 핀 경내는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이 없었다. 바람도 없고 새소리만 들리는 그림 같은 산사의 평화로운 풍경 그대로다. 지고 있는 봉숭아나 간혹 보이는 상사화, 햇살이 비치는 전각에도 가을빛이 돌고 있었다.

조선시대 초기의 건축 양식을 잘 보여주는 대웅전과 현존하는 우리나라의 목조건축 중 가장 오래된 건물인 극락전 참배를 마치고 나왔다. 국보인 두 곳을 참배하고 나오니 전각 주위에 서너 사람이 사진을 찍는 등 여러 작업을 하고 있었다. 절 입구에 배너로 세워졌던 디지털 콘텐츠화 작업을 하는 듯했다.

대웅전 옆 동향으로 서 있는 화엄강당은 온돌방 구조를 갖춘 건물로 스님들이 교학을 공부하던 곳이라 하고 극락전 옆에 고금당도 조용히 서 있다. 이 두 건물은 같은 시기에 같은 목수에 의해 건축된 조선 중기 건축 양식으로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불교문화재를 보는 눈이 없어도 가지런히 배치된 봉정사 구조는 잠시 둘러만 봐도 아기자기하면서도 단정하고 고풍스러운 산사의 모습을 볼 수 있고 경건함을 느끼게 한다.

극락전 앞 삼층석탑은 고려시대의 오랜 세월만 담은 듯 조촐히 서 있다. 그리고 1999년 봄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극락전을 돌아본 뒤 삼층석탑 앞에서 기왓조각으로 돌탑을 쌓고 축원했던 장소라는 안내가 있는 표지판에는 작은 돌들이 쌓인 커다란 돌탑이 있었다. 여왕이 다녀간 후 그 자리를 오간 사람들이 쌓은 작은 돌무더기들의 모임처럼 보였다. 

고금당 뒤 산길을 조금 오르면 산신, 칠성, 독성을 함께 모신 삼성각이 있었다. 삼성각을 오르는 길에는 보호색을 띤 개구리가 눈을 멀뚱거리며 앉아 있다. 삼성각 참배를 내려오는 길에 보니 개구리가 있던 자리에서 한쪽 문이 열린 대웅전이 멀리 보였다. 대웅전 안에는 한 사람이 열심히 절을 하고 있었다. 무엇을 기도하는지 모르지만 원하는 바 이루길 바라는 나의 마음을 실어보냈다. 

봉정사에서 동쪽으로 약 1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산내 암자 영산암이 있다.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과 ‘나랏말싸미’의 촬영장소로 유명하다. 우화루의 낮은 누하문을 들어서면 우리나라 10대 정원인 영산암 정원이 나오고 ‘ㅁ’자로 배치된 응진전, 염화실, 송암당, 삼성각 관심당이 있다.

잠시 응진전 앞 툇마루에 앉아 있자니 사람들은 불자가 아니어도 이래서 암자를 찾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나 역시 그곳에 영산암이 있어 간 것이지 그곳에 혹시 암자가 있을까 하면서 그곳을 찾아가지 않을 테니까. 지금 앉아 있는 이 공간에 영산암이 없었다면 얼마나 적막했을까! 마음의 길이 나 있는 암자로 가는 설렘을 가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영산암으로 오르는 계단은 많은 사람들에게 사진찍기 좋은 명소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나도 한 컷 카메라에 담으려 하니 초가을 햇살이 오래된 우화루에 부딪쳤다가 영축산에서 부처님이 법화경을 설할 때 내린 꽃비처럼 계단 위로 쏟아져 내렸다.  

최명숙 보리수아래 대표 cmsook1009@naver.com

[1603호 / 2021년 10월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